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전두환의 부활 '보호수용법'(경향신문, 2015. 5. 5)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7:28
조회
378

전두환의 부활 ‘보호수용법’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박근혜 정권이 이미 10년 전 용도 폐기된 사회보호법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3월31일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니, 국회 통과도 멀지 않았다. 정작 살려야 할 것은 외면한 채, 독재의 유물을 되살리는 데 골몰하는 꼴이 엉뚱하다. 사회보호법은 전두환의 삼청교육대를 뒷받침하기 위해 1980년에 만든 법이다. 삼청교육대에 끌고 간 사람들을 가두기 위해 만들었다. 재범의 우려를 핑계로 이미 형기를 다 채운 사람들을 7년까지 다시 가둘 수 있게 했다. 사회보호법은 독재정권에만 쓸모가 있던 반인권 악법이었다. 당연히 사회보호법 폐지 목소리가 높았다. 도대체 고쳐서 쓸 수 있는 법이 아니었다. 밥그릇이 걸린 법무부가 세게 반발했지만, 여야 합의로 2005년 전면 폐지되었다. 나중에 해양수산부 장관을 한 이주영 의원이 특히 열심이었다.


사회보호법에서 보호수용법으로 이름은 살짝 바꿨지만, 형기를 마친 사람을 재범의 우려가 있다며 7년을 더 가두겠다는 핵심은 그대로다. 법무부가 전두환의 사회보호법을 다시 만들겠다는 건, 연쇄살인 등 흉악범죄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그렇지만 연쇄살인범이 다시 흉악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현실에선 전혀 없다. 연쇄살인범은 법이 허용하는 가장 무거운 형벌을 받을 테니, 교도소에서 생을 마치게 될 거다. 재범의 우려를 그토록 걱정하는 법무부가 사면이나 가석방을 해줄 리도 없으니 걱정할 일도 없다. 아동성폭력범들 역시 예외 없이 중형을 선고받으니,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법무부는 조두순이 2020년에 석방되면 어쩔 거냐고 겁박하지만, 여론의 주목을 받는 69세 노인이 예전과 같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범죄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누구도 측량할 수 없다. 미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2020년 여름에 몇 차례나 태풍이 닥칠지를 맞히는 게 훨씬 현실적일 게다. 알 수 없는 비현실적인 위험 때문에, 죗값을 치른 사람을 다시 처벌할 수는 없다.


법무부는 보호수용이 사회보호법의 보호감호와는 전혀 다른 제도라고 강변하고 있다. 대상자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수용된 사람들이 면회와 전화를 맘대로 할 수 있는 등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에 인권침해도 아니란다. 단지 자유를 제한하는 것 말고는 다른 불편은 없다는 거다. 그런데 징역이나 금고 등 자유형(自由刑)의 본질이 바로 자유를 제한하는 거다. 


사람을 한 곳에 가둬두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형벌이 될 수 있기에 근대 사법은 자유형을 가장 대표적인 형벌로 규정하고 있다. 면회와 전화의 횟수가 아무리 늘어도 갇혀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갇혀 있으면, 그곳이 곧 구금시설이다. 구금시설에 갇힌 사람은 그저 재소자일 뿐이다. 


대상자를 엄격하게 제한한다는 것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마다 법무부가 늘 하는 소리다. 흉악범죄에 대한 시민의 두려움을 이용해, 일단 제도를 시작하려는 꼼수다. 연쇄살인, 아동성폭력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라고, 전자발찌나 유전자 강제 채집 등을 내놓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시민의 관심이 떨어지면, 곧바로 그 대상을 확대해버렸다. 새로 만드는 게 어렵지, 이미 만들어진 법과 제도에서 그 대상을 좀 더 넓히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바로 미끄럼틀 원리다. 


그래도 법무부는 2013년 한 해 동안 살인범죄가 966건이나 벌어지는 상황이니, 뭔가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2013년에 벌어졌다는 살인범죄 966건은 예비, 음모, 미수 등 ‘살인’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범죄를 모두 합한 것이다. ‘진짜’ 살인사건은 354건이었다. 위험을 세 배나 과장한 거다. 이렇게 위험을 과장하고, 공포를 동원하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이 뭘까? 더 많은 인력과 예산, 그리고 권한을 챙기는 것 말고, 떠오르는 게 없다. 결국은 또 밥그릇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