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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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강제주의(경향신문, 2015. 3. 2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7:20
조회
409

‘변호사 강제주의’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민사소송을 하려면, 무조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법률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른바 변호사 강제주의다. 모든 민사소송은 아니고, 일단 대법원의 상고심부터다. 하지만 무릇 제도란 처음이 어렵지, 시작만 하면 미끄럼틀 원리에 따라 확장되는 건 쉬운 일이다. 게다가 법조인들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법률안은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실세 여당의원의 시도가 심상치 않다. 


당장 변호사와 법무사의 다툼이 첨예해졌다. 변호사들에게 밥그릇을 빼앗길 거라며 법무사들은 궐기라도 할 참이다. 법무사들이 반발하자, 윤 의원은 직역 간의 ‘상생’을 강조하고 있다. 이 문제가 변호사와 법무사만의 문제일까, 해서 2000만원 이하의 소액 사건은 법무사가, 그 이상은 변호사가 맡는 나눠 먹기식 ‘상생’으로 풀 문제인가. 


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하겠다는 명분은 간단하다. 일반인은 법률전문성과 소송기술이 부족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또한 기본도 모르고 무리하게 소송을 진행해 민사 상고심이 너무 많아져, 대법원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거다. 그리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답이 틀렸다. 


일상이 법률행위처럼 여겨질 정도로, 법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소송도 마찬가지다. 흔한 채권채무 관계도 민사소송에 부쳐지거나, 심지어 사기죄 등으로 형사소송으로 연결되는 일은 너무 흔하다. 그렇지만 법률적 해결과 소송은 늘 소수 법조인들만의 전유물로 머물고 있다. 괜히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법학 공부 맨 첫머리에서 배웠던, 법이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기본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법률적 전문성이란 게 고작해야 일본어 옛말과 번역투 문장의 나열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말을 괜히 어색하게 쓰면서 시민들만 전문성이 없다고 탓하는 꼴이다. 소송은 지금보다 훨씬 더 쉬워져야 하고, 더 친절해져야 한다. 그래서 이른바 ‘전문성’이 없는 일반 시민들도 얼마든지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한 말과 복잡한 절차를 고집하는 게 소송기술이라면, 이건 민주주의 차원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여하튼 핵심은 민사소송을 하려면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하라는 거다. 변호사 선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몇백만원의 선임료를 내야만 가능하다. 시민의 재판받을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데, 앞으로는 많은 돈을 내야만 이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건 대한민국을 일정 액수 이상의 세금을 내야만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던 대혁명 직후의 프랑스 수준으로 추락시키는 헌법 파괴 행위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단 한 푼의 비용도 없이 참정권을 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판받을 권리도 국민 누구나에게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겨우 로스쿨 도입 이후 늘어난 변호사들의 밥그릇이나 챙기자고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면 안된다. 누군가는 변호사가 많아져서 선임료가 예전보다 낮아졌다지만, 이건 원칙의 문제다. 몇백만원이 아니라, 다만 몇만원이라도 수용할 수 없는 일이다. 


변호사 강제주의의 보완책으로 국선변호사 제도를 만들겠다지만, 그건 변호사 강제주의와 상관없이 당장 도입하면 된다. 국선변호사도 변호사 고용창출을 위한 꼼수이긴 하지만, 시민 입장에서는 무료로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변호사는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지만, 그건 ‘변호사법’에서만 볼 수 있는 좋은 말에 불과하고, 결국은 자기 밥벌이를 하는 자영업자일 뿐이다. 가뜩이나 살림살이도 어려운데, 왜 보통의 시민들보다 훨씬 잘사는 변호사들의 밥그릇과 고용창출에 골몰하며 서민의 부담만 가중시키려는지, 변호사 출신도 아닌 윤상현 의원의 속내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