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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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순경의 죽음 (경향신문, 2016.08.10)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5 12:49
조회
864

격무와 박봉, 게다가 위험하다는데도 경찰관이 되려는 젊은이들은 넘쳐난다. 경찰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만 100개쯤 된다. 경찰관 중 가장 낮은 계급, 순경은 원래 고졸 일자리였다. 하지만, 요즘 순경이 되려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노량진쯤에서 2~3년 정도는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합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순경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도 요즘엔 자연스럽다.


최혜성이란 젊은 여성도 그렇게 순경이 되었다. 몇 년 동안 그저 공부만 했고,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어 경찰관이 되었다. 2014년 12월 경찰관 생활을 시작했고, 올 1월부터는 경기도 동두천경찰서 관내 지구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안정된 일자리를 얻은 건 좋은 일이었지만, 불행은 느닷없이 닥쳤다.


6월21일, 자정을 막 넘긴 시간, 최혜성 순경은 차를 몰다 가로등을 들이박는 사고를 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사고였다. 누가 다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최 순경이 속한 조직, 경찰은 민감했다. 같은 경찰관이라고 사정을 봐주기는커녕, 일단 최 순경의 음주운전부터 의심했다. 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29%였다. 소주 한 잔 마신 것보다 적은 혈중 알코올 농도였다. 음주운전 기준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다. 기준치 이하니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니 아무 일도 없어야 했다. 0.029% 정도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액체 소화제, 피로해소제나 구강청결제, 심지어 사탕이나 빵을 먹어도 나올 수 있는 수치다. 그래서 기준이 중요하다. 정해진 기준을 넘어서면 면허정지나 형사처벌을 받고, 이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범죄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이다. 최 순경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법률은 물론, 경찰 내부의 다른 어떤 규정으로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수치였다.


그러나 경찰의 감찰조직은 많이 달랐다. 사고 몇 시간 뒤인 오전 7시부터 동두천경찰서 감찰팀은 성화했다. 일곱 차례나 전화와 문자를 보내 출석을 강요했다. 감찰조사를 위한 소환통보는 적어도 이틀 전까지는 해야 한다는 규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뭔가 트집을 잡아내겠다는 식으로 들쫓듯 감찰조사를 벌였다. 결코 감찰 대상이 아닌데도 그랬다. 막무가내였다.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가기 위해 휴가를 낸 날이었지만, 감찰팀의 닦달에 여행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마구잡이 감찰이었지만, 순경 계급의 새내기 경찰관 처지는 곤궁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감찰조사는 매우 강압적이었다. 당최 자신을 방어할 수가 없었다. 음주운전이 건수가 안된다는 것을 아는 감찰팀은 사생활부터 다양한 신상털기를 시도하며 압박했다. 최 순경은 공포에 질렸다. 진술서를 작성하며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같은 기본 사항조차 잘못 써서 여러 차례 고쳐 쓸 정도였다. 참기 어려운 모멸감과 두려움을 이길 수 없었다. 최 순경은 감찰조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감찰조사가 사람을 죽인 것이다.


동두천경찰서 감찰팀의 무리한 감찰은 ‘자체 인지 처분 실적’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징계할 만한 사안들을 발굴하고, 그게 실제 징계로 이어지면 성과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제도다. 자기 평가 점수를 챙기려고 죄 없는 사람을 일단 털어보자며 몰아세운 것이다.


최 순경의 죽음을 확인한 동두천경찰서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이례적으로 경찰서장이 직접 사망 현장을 찾고, 감찰과 형사팀이 분주하게 뭔가를 찾아 나섰다. 유족들은 이 과정에서 최 순경의 유서와 유류품이 빼돌려졌다고 의심하고 있다.


평가 점수만 높일 수 있다면, 동료 경찰관의 운명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의 감찰조사와 징계가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음주운전자와 함께 술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를 한다. 올해에만 5명의 경찰관이 이런 까닭으로 징계처분을 받았다.


그렇지만, 전혀 다른 사례도 많다. 올해 총경으로 승진한 경찰관은 두 번이나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람이었다. 경정 때 혈중 알코올 농도 0.109%의 만취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멀쩡하게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까지 올랐다. 까닭을 모르겠다.


19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도 음주운전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이다.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9%였다. 이철성 후보자는 음주운전 처벌 이력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를 거듭해 경찰청장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그보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3분의 1로, 법적 기준치 이하였던 최혜성 순경은 스스로 생명을 포기할 만큼 강도 높은 감찰조사를 받았다. 공평치 못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철성 후보자는 논문 표절,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자녀 취업 의혹에다 집회·시위 강경진압 논란까지 제기되고 있다. 감찰을 통해 진작 걸러졌어야 할 사람이다.


감찰은 고위직 간부들 앞에서는 직무유기를 일삼았고, 배경도 없는 일반 순경에게만 가혹했다. 그래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걸까. 힘없는 사람만 감찰조사의 치욕을 감내해야만 했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가장 모욕적인 평가는 약자에겐 군림하면서, 강자에겐 비굴하다는 것이 아닐까. 지금의 감찰조직이 꼭 그렇다.


최소한의 공정성도 갖추지 못한 감찰, 기껏 한다는 일이 높은 사람들 비위나 맞추고, 자기들 승진할 건수 찾기에만 골몰하는 감찰 때문에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비단 최 순경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달 29일엔 화성 동부경찰서의 한 경찰관이 “억울하게 감찰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유서를 쓰고 자살했다. 56세의 남성이었다.


경찰에게는 공정한 감찰을 진행할 능력과 자질, 의지도 없으니 방법은 하나뿐이다. 경찰 조직에서 감찰을 떼어내 외부에 독립기관으로 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