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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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참사와 대선 주자 박원순 (경향신문, 2016.06.0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5 12:44
조회
492

2016년 5월28일 토요일 오후 5시57분. 우리는 앞으로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열아홉 살 노동자 김군이 구의역 9-4 승강장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다 역으로 들어오는 전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목숨을 빼앗겼다.


남들은 다 쉬는 토요일 저녁, 평일이어도 보통의 직장인들은 6시 퇴근을 위해 일손을 멈췄을 시간이다. 비정규 노동자 김군은 쉴 수 없었다. 언젠가 짬이 나면 먹으려고 가방 속에 넣어둔 컵라면이 알려주듯, 끼니를 챙길 짬도 없이 작업 지시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지시를 따라 곳곳의 현장에 투입되었다. 토요일 저녁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아직 군대조차 다녀오지 않은 젊은이였다. 그가 목숨을 잃었다. 물론, 단순한 사고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허망하고도 원통한 죽음이다. 역 구내로 진입하는 전동차는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방식으로 들어온다. 승강장의 승객들도 구내방송으로 전동차 진입이 임박했다는 걸 얼마든지 알 수 있는데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2인1조 근무원칙도 지켜지지 않았고 스크린도어 너머의 위험한 작업을 누구도 살피지 않았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청년이 이렇게 죽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온갖 비리와 전횡이 권력의 크기에 따라 작동했다. 권력은 서울시-서울메트로-퇴직자들의 하청회사-하청회사의 비정규직 순으로 작동했다. 권력은 그 힘의 작용에 따라 맨 밑바닥의 힘없는 청년 노동자에게 모든 위험을 떠넘겨 버렸다. 나이도 어리고, 정해진 직급조차 없는 비정규직이 가장 만만했던 거다. 그래서 참사의 책임은 권력의 맨 꼭대기에 있는 서울시장 박원순에게 있다.


일부에선 이명박, 오세훈 등 전임 시장의 책임을 거론한다. 그들의 책임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박원순에 우호적인 사람들의 입 부조에 불과하다. 박원순이 서울시장에 취임한 건 2011년 10월이었다. 곧 5년이 된다. 거의 대통령 임기에 맞먹는 시간을 서울시장으로 있었다. 2013년 성수역, 2015년 강남역에 이어 똑같은 죽음만 벌써 세 번째다. 모두 박원순이 시장으로 있을 때 빚어진 참사들이다. 세월호처럼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구의역 참사 직후 박원순이 보인 행태는 또 어떤가. 실시간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하며 여러 현안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던 사람이 이번엔 달랐다. 어찌된 영문인지 사흘 동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참사 직후부터 언론보도가 쏟아졌고, 지체 없이 보고를 받았다는데도 그랬다. 참사 다음날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축구시합을 관람했다. 경기 시작 전에는 시축도 했다. 열아홉의 잔혹한 죽음을 생각하면 한가한 행보였다. 이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과 닮았다. 저편이 아니라, 이편이라 다르다는 거 말고, 진짜 다른 게 뭔지 모르겠다. 다르다면 박근혜는 7시간, 박원순은 사흘이라는 것뿐이다. 구의역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제 일처럼 아파하는 시민들이 없었다면, 그 사흘은 지금껏 이어졌을 게다.박원순은 안일하고 무책임했다. 엊그제 열린 기자회견에선 스크린도어나 메피아 문제를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저는 자세히 몰랐다”고 답했다. 몰랐다는 것도 알았다는 것도 아닌 묘한 말이다. 5년 내내 시장이었던 사람이 똑같은 죽음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는데도 이런 말을 한다.서울메트로 간부 180명의 사표를 받았다며 비상한 각오로 사태 수습을 할 것처럼 호기를 부렸지만, 결국 2명의 사표만 수리했다. 5명을 직위해제했다지만, 그건 징계도 뭣도 아니다. 그저 이번 사태를 책임지는 사람이 2명이 아니라 7명이라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많이 잘라야 수습을 잘한다는 게 아니다. 대응이 늦었더라도 진정성을 갖고 제대로 해야지, 이런 꼼수에 기대선 안된다.


박원순은 유력 대권 주자이다. 얼마 전 광주에선 대선 주자로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역사의 대열에 앞장서겠다, 서울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근혜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세월호, 메르스, 위안부 협약, 개성공단 폐쇄, 가습기 사태 등을 일일이 언급하며 박근혜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판했다. 메르스 사태를 두고는 “국민 안전에는 ‘1% 가능성이 100%였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 말을 그대로 박원순에게 돌려주고 싶다.


박원순의 행보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대통령 다음이라는 서울시장 자리를 5년이나 했으니, 이젠 더 큰 권력 욕심을 내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권력 욕심이 아니라, 일 욕심이라 해도 좋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서울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다음에 국민의 선택으로 주어지는 자리이지, 광주 찍고 충북, 경북 식으로 돌아다닌다고 꿰찰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서울시청 뒤편에선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한 달 넘게 농성을 하고 있다. 매일처럼 엄마들이 삭발을 하며 시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자식들 건사하느라 아플 겨를도 없는 부모들이다. 이들을 만나지 못할 까닭이 뭔가. 무릎을 맞대고 시장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제발, 시장 업무부터 제대로 챙겨라. 그래서 여태 숱하게 봤던 그렇고 그런 ‘대통령병’ 환자들처럼 추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럴 만큼 서울시 형편이 녹록한 것도 아니다.


오늘 김군 장례식이 열린다. 하지만 이는 그저 주검을 수습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는 장례 이후다. 박원순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김군 죽음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의미 없는 희생이 되지 않도록 다부지게 챙겨야 할 가장 막중한 책임이 바로 박원순에게 있다.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