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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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등대(평화신문, 2015. 5. 3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7:30
조회
386

아시아의 등대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이주민의 삶은 늘 곤란하다. 누구나 집 나가면 고생이다. 게다가 저소득 국가 출신으로 고소득 국가에서 살아야 한다면, 때론 무시와 경멸까지 각오해야 한다. 살면서 겪는 불편이나 불이익도 한둘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를 그저 외국인노동자라고 부르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엔 손님노동자라 부르기도 한다. 손님, 그렇다, 손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준다. 그래서 교회가 이주민 사목을 통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건 고마운 일이다. 


이주민 사목은 좋은 일이지만, 좋은 일이라고 늘 호응을 얻는 건 아니다. 이주민 사목의 여건은 늘 척박하다. 당장 우리도 먹고살기 힘든데 남까지 도와야 하는 힐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좋은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언젠가 이주민 사목을 하는 신부님을 만나러 이주민센터를 찾은 적이 있다. 센터는 성당 지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성당도 공간이 부족할 텐데, 기꺼이 공간을 내준 성당 신부님과 신자들이 고마웠다. 신설 교구라 당장 번듯한 건물을 갖출 형편을 못 될 터, 초기엔 이렇게 더부살이도 하면서 차츰 역할과 살림을 늘려 가면 될 듯싶었다. 그렇지만 이주민센터가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지하에 있다는 건 마음에 걸렸다. 이주민센터는 이주민들이 찾아와 억울한 사정을 털어놓기도 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기도 하는 곳이다. 대개 좋지 않은 일로 찾아올 이주민들에게 따뜻한 햇볕 한 줌 내어주지 못하는 우리의 궁핍과 무관심이 아쉬웠다. 


이 아쉬운 마음을 단박에 날려버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아시아의 등대’란 이름의 프로젝트다. 바다도 없는 도시 한복판, 기껏해야 앞엔 작은 개천이 흐를 뿐인데 등대를 짓겠단다. 의정부교구 파주 엑소더스(이주민센터)가 파주 봉일천에 이주민센터를 짓겠다며 내건 이름이 ‘아시아의 등대’다. 등대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주민센터가 파주 지역 이주민들과 아시아 전체를 향한 등대 역할을 하겠다는 거다. 교회가 심혈을 기울여 센터를 짓지만, 온전히 이주민들을 위해 내어 놓는 건물이다. 이를테면 손님들을 위한 건물인 셈이다. 제대로 짓고, 제대로 운영해서 이곳을 이용하는 이주민들이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설계도 그래서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맡겼다. 설계를 맡은 조민석 작가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다.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가 돈과 명성이 함께 보장되는 대형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방 소도시의 3층짜리 이주민센터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은 아름답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비용마저 세계적인 수준은 아니다. 그저 재능 기부에 가까운 실비만으로 조민석 작가는 작품을 만들었다. 파주 이주민센터가 완공되면, 곳곳에서 이 멋진 건물을 구경하러 올 거다. 이건 우리 사회가 새로운 역전의 기회를 마련하는 거다. 집 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시편의 노래처럼 말이다. 


건물만 근사하게 짓는 건 아니다. 아시아의 등대에 담는 내용도 새롭다. 그동안의 다문화정책은 이주민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한국 사람도 입지 않는 한복을 입히고, 한국 음식 만드는 걸 가르치는 수준에서 맴돌았다. 그렇지만, 아시아의 등대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을 만들겠단다. 서로 다른 문화의 우열을 따지지 않고, 진정으로 함께 어우러지는 곳, 이주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될 거란다. 반가운 일이다. 이제 설계도가 나왔으니, 곧 착공을 시작한다. 늦어도 내년 초면 아시아의 등대가 완공될 거다. 아름다운 일, 여럿이 함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