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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늠름하게 우리 길을 가자(평화신문, 2015.1.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7:08
조회
378

늠름하게 우리 길을 가자


-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평화신문, 2015. 01. 01발행 [1296호] 


지록위마(指鹿爲馬)란다. 하긴 일 년 내내 그랬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아픈 일이 끊이지 않았다. 가슴을 후벼 파는 일도 많았고, 잔혹한 날도 많았다. 국가는 무능했고 또 무기력했으며, 국가 지도자들은 편 가르기에만 골몰했다. 세밑 통합진보당의 해산 결정이 결정판이었다. 관용과 배려는 없고, 격앙된 격문만 나부꼈다. 선거 운동 과정이 불쾌했다면, 10년 넘어 국민의 심판을 받았던 정당마저 간단히 해체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 너무 끔찍하다. 통합진보당이 좋은 정당이든 나쁜 정당이든, 그 당의 진퇴는 유권자의 몫이다. 선출되지 않은 직업 법관들의 몫이 아니다. 


책임은 없고,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는 셈법만 있었다. 세월호 같은 참극마저 진보-보수의 문제로 간단히 갈라쳐 버렸다. 300여 명의 억울한 죽음을 두고도 그랬으니, 다른 사안이야 볼 것도 없다. 나라는 찢어졌고, 국가는 무서워졌다. 그리고 내내 대통령은 존재감이 없었다. 달을 보라면 손가락을 두고 시비를 걸었고, 사슴인데도 말이라 우기면 그만인 듯 보였다. 


한국형 자본주의는 천박하다는 표현마저 아깝다. ‘존경받는 기업인’은 여전히 44년 전 작고한 유일한 박사의 몫이다. 세습 경영인 투성이니, ‘존경받는’이란 형용사를 붙여줄 기업인을 찾긴 정말 힘들다. 대신 ‘지탄받는’ 기업인은 많다. 대한항공 조현아씨는 그저 두드러진 푼수에 지나지 않는다. 직원들을 사노비처럼 아무렇게나 대하는 재벌 피붙이가 어디 그뿐이랴. 돈이 많으면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해도 된다는 그들의 행태가 끔찍하다. 이런 식의 신세 한탄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어둠이 깊다. 


그러다 문득 새해를 맞았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와 다른 새해를 만들지 못했다. 무능과 무기력을 넘어 새로운 활력을 만들지도 못했고, 원칙이 살아 있는 공동체를 만들지도 못했다. 그런데 새해가 왔다. 그러니 새해는 선물이다. 이 선물은 우리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그저 받았으니, 우리도 뭔가 내놓아야 한다. 특히 교회 구성원들은 더 그렇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내내 과한 선물을 받았다. 우리의 노력을 훌쩍 뛰어넘는 큰 선물이었다. 교종(교황)의 방한은 말할 것도 없고,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 염수정 서울대교구장의 추기경 서임, 새로운 주교들의 탄생 등 경사가 겹쳤다. 교회 밖은 복잡하고 어두웠지만, 교회에는 유독 좋은 일이 많았다. 그러니 우리의 짐은 그 간극만큼이나 무겁다. 


당장 챙겨야 할 것도 많다. 교종 방한의 뜻을 살리는 일이 우선 급하다. 몇 개의 새로운 행사를 배치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교회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유경촌 주교가 109명의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는 케이블 방송업체 ‘씨앤엠’ 노동자들을 찾아간 게 그런 일이다.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부르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게 핵심이다. 


최근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에 함께했다가,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20~30대 젊은 분들이 성당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전교구 목동성당 출신들로 ‘본심’이란 이름의 책읽기 모임 회원들이었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나눈단다. 교구의 미사나 특강이 있으면 함께 참석하며 구체적인 실천도 한단다. 요즘은 탈핵 문제에 열심이란다. 아, 바로 이거다! 함께 모여 공부하고 기도하고, 또 실천하는 모임. 이게 바로 교회다. ‘본심’은 곧 ‘초심’이다. 초대 교회 선조들, 그리고 우리 겨레의 신앙의 선조들이 그랬다. 함께 모였고 공부했고, 또 실천했다. 그게 교회였다. 


세상이 어지럽지만, 함께 모여 공부하고 기도하고, 또 실천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새해에는 가슴을 펴고 늠름하게 우리 길을 가자. ‘본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