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이게 국가인가(평화신문, 2014. 11. 2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7:00
조회
382

[시사진단] 이게 국가인가


-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2014. 11. 23발행 [1291호] 


일 년 동안 발생한 범죄 건수가 처음으로 200만 건을 넘었다. 대검찰청이 ‘2014 범죄분석’이란 자료를 통해서 밝혔다. 정확하게는 200만 682건. 검거된 범죄자는 214만 7205명이었다. 4인 가족 기준이라면, 매년 8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범죄자 또는 그 가족이 된다. 범죄 피해자 쪽도 역시 그만큼이다. 불과 6~7년이면 전 국민이 범죄자 가족이나 피해자 가족이 된다니 섬뜩하다. 966건의 살인 범죄, 29만 841건의 절도 범죄, 그리고, 2만 6919건의 성폭력 범죄가 지난해 일어났다. 끔찍한 범죄 공화국이다. 


그렇지만, 이는 검찰의 보도 자료를 베낀 언론 보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끔찍함이다. 검찰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면, 곳곳에서 과장과 왜곡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살인 범죄 966건 중에서 진짜 살인 사건은 354건에 불과하다. 36.6%만이 진짜다. 살인 범죄라지만, 416건은 상해만 입었고, 생명은 물론 아무런 상해조차 입지 않은 사건도 196건이나 된다. 비결은 간단하다. 예비, 음모, 미수 등 ‘살인’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범죄를 모두 합한 것이다. 한국의 피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0.69명으로, 일본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낮다. 미국은 5명쯤 되고, 치안이 안정되었다는 서유럽도 2명쯤이다. 살인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지만 통계에 약간의 기법만 섞으면, 세 배쯤 위험한 나라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 


강도 범죄는 2013건이지만, 피해 금액 100만 원 이하의 경미 범죄가 685건으로 37.8%였고, 313건은 아예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역시 예비, 음모, 미수를 다 합한 까닭이다. 지난해 2만 6000여 건이 일어났다는 성폭력 범죄도 같은 셈법으로 계산한 거다. 전체 200만 건의 범죄 중에서 자동차, 교통과 관련된 범죄만도 80만 건이 넘는다. 위험이 과장되었다. 


진짜 살인 사건이 36%에 불과하고,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도 해도, 300명이 넘는 아까운 인명이 희생되었다면, 당연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엄중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가 들여다볼 죽음의 행렬은 다른 곳에도 얼마든지 있다. 장사가 안된다는 엉뚱한 핑계로 이제 그만 잊어야 한다는 세월호 참사는 매년 살인 사건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을 단번에 희생시켰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은 3233명이었고, 자살한 사람은 1만 4427명이었다. 피살된 사람의 40배가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에 40명이다. 


국가는 힘이 세다. 군대와 경찰을 거느리고 세금을 거두며, 생살여탈의 막강한 권한도 오로지 국가만이 갖고 있다.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늘 많은 비용이 드는 이 시스템을 만든 까닭은 뭘까? 우리를 지켜달라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국가의 최소한을 야경국가라고 한다. 현대 국가는 인권 보장을 위한 의무를 지고 있지만, 국가가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다 해도, 꼭 놓쳐서 안 될 마지막이 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거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며 70만 명의 군대, 13만 명의 경찰, 3만 명의 법무ㆍ검찰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예산도 엄청나다. 2015년 예산안을 보면, 국방비는 37조 6천억 원, 경찰ㆍ소방 등이 쓰는 안전 예산은 15조 원이나 된다. 오로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은 인력과 예산을 쏟아 붓는 거다. 


그러나 교통사고 사망이나 자살처럼, 훨씬 더 일상적인 많은 죽음에는 이렇게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는 일은 별로 없다. 자살 예방 예산은 고작 20억 원이 전부다. 자살률이 훨씬 낮은 일본만 해도 3000억 원이 넘는다. 범죄를 한껏 과장하여 권력기관은 더 많은 인력, 예산, 권한을 챙기기에 바쁘다. 막대한 비용과 엄청난 권한을 대주면서도 우리의 목숨을 지키는 건 버겁다. 그래서 묻는다. 이게 국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