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교도소는 만원이다 (경향신문, 2017.03.10)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5 12:59
조회
909

교도소는 단순히 죗값만 치르는 곳은 아니다. 왜냐면 거의 모든 교도소 수용자들은 언젠가 사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범죄자라고 가족과 생이별을 시키고 신체의 자유와 생계수단까지 빼앗는 잔인한 고통을 주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런 형벌만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겨우 건질 게 있다면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교훈이겠지만, 이마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현실 앞에선 무색해지고 만다. 결국 남는 것은 범죄자에 대한 보복뿐이다.


보복도 정의를 위한 한 수단일 수도 있겠지만, 교도소에서 보복만 당한 수용자는 대개 반성은커녕 앙갚음을 곱씹는다. 교도소가 범죄학교가 되고, 동료 수용자가 공범이 되며, 출소자는 더 위험한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전형적인 악순환이다. 그래서 교도소의 목적은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교정·교화에 있다.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언젠가 사회로 돌아올 테니 사회 복귀를 잘 준비하도록 돕자는 거다. 이게 모든 문명국가들이 채택한 현대의 교정 이념이다. 수용자 인권 차원에서는 물론, 범죄 예방과 억제라는 실용적 차원에서도 교정·교화를 제대로 하는 게 훨씬 낫다는 거다. 수용자도 중등, 대학 등 정규 교육과정을 밟을 수 있고 각종 자격증을 따거나 직업교육이나 인성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교도소는 무엇보다 배움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교도소는 중대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평소에도 시설이나 인력이 부족해 힘들었지만,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안되는 메가톤급 위기가 닥쳤다. 바로 과밀수용이다. 수용자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모든 게 박근혜 탓은 아니겠지만, 이건 진짜 박근혜 탓이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수용자 숫자는 급증했다. 정권 초기 4만7924명에서 5만7669명으로 늘었다. 불과 4년 만에 20% 넘게 늘었다. 교도소 정원이 4만6600명이니 수용률은 123.8%나 된다. 수용자가 갑자기 늘면서 교도소가 몸살을 앓고 있다. 좁은 수용실에서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자야 하고, 운동이나 접견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것도 심각하지만, 진짜 중요한 문제는 교정·교화라는 본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교정·교화 없는 구금은 일제시대의 감옥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사회가 있는 한 범죄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가의 역할은 그 범죄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대처하느냐에 있다. 지금처럼 대책도 없이 잡아 가두기만 하는 일제시대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한국의 교도소 정원은 혼거수용실의 경우 1인당 차지하는 면적을 2.58㎡(0.78평)로 잡은 기준이다. 독일의 기준은 7㎡이니, 기준을 독일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면, 수용 정원은 1만7037명으로 줄고, 수용률은 338%로 늘어나게 된다. 교도소 수용자는 이제 일본의 수용자 숫자를 넘어섰다. 치안 여건이 비슷한, 그러나 2.6배나 인구가 많은 일본보다 수용자 숫자가 많다는 것은 한국의 형사사법이 실패했다는 가장 확실한 근거다.


교도소 유입인구가 늘어난 건 그만큼 범죄가 늘어난 건데, 그게 왜 박근혜 탓이냐고? 가장 큰 잘못은 서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한 거다. 교도소엔 생계형 경제사범이 부쩍 늘었다. 2011년 말엔 사기·횡령범이 7113명이었는데, 2016년 말엔 1만3551명으로 늘었다. 5년 만에 무려 90.5%가 늘었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하거나(채무불이행), 음식 값을 내지 않아도(무전취식) 사기죄로 처벌받는 법집행 현실을 고려할 때, 사기죄 수용자가 늘어난 것은 그만큼 살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뜻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같은 이유로 수용자가 급증했다.


박근혜 정권이 집착했던 ‘4대악’ 관련 수용자도 크게 늘었다. 성폭력은 34.9%, 폭력은 26.4% 늘었다. 반면 살인·강도·절도 범죄 수용자는 모두 줄었다. 지난 5년 동안 살인 4.4%, 강도 33.3%, 절도 19.1%가 줄었다.


정권의 뜻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호들갑을 떠는 경찰이 수용자 급증을 불러왔다. 지난 4년 동안 경찰관 1만2000명이 증원되었지만, 그만큼 치안 서비스가 좋아진 게 아니라, 단속과 검거가 늘었다. 교도소 수용자 숫자는 실제 범죄가 아니라, 경제적 형편이나 정권의 태도 따위에 따라 얼마든지 오락가락한다.


이건 교도소를 더 짓는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건설비용도 문제지만, 기피시설 취급을 받는 교도소를 세울 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 수용인원 500명 규모의 교도소를 세운다면, 당장 22개를 새로 지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의 한국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다. 교정행정을 책임지는 장관은 넉 달이 다 되도록 공석이고, 잘못을 바로잡을 지도력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장관이 멀쩡할 때도 별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실무부서가 중요하다. 법무부 교정본부는 이럴 때 교과서처럼 움직여야 한다. 교도소 정원을 초과할 때는 강제적 가석방 조치를 취하는 등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어야 한다. 검찰과 법원에는 불구속 수사 원칙을 촉구하여 미결구금자의 숫자를 줄이고, 자유형 선고가 능사가 아님을 법원에도 일깨워줘야 한다. 법원이 경찰과 검찰의 수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범죄와 형벌이 범죄자와 그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나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제대로 살피도록 촉구해야 한다.


당장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 있다. 하지만, 중국과 야당, 다수 시민의 반대와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는 저토록 서두르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정부가 왜 이런 기초적인 일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국무총리, 직전 법무장관이니 과밀수용의 책임도 무거운 사람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마침 오늘은 역사적인 탄핵 선고일이다. 박근혜에 대한 파면 여부를 넘어 국가가 무엇인지를 묻는 날이기도 하다. 국가의 기본인 교정정책마저 무너진 상황을 빨리 일으켜 세워야겠다. 그야말로 국가적 과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3092113005&code=990100#csidxa1e316363cdd432bf1e81047c73ce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