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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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쪼개기, 검찰개혁의 핵심 (경향신문, 2016.07.2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5 12:48
조회
519

한없이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란다. 국민 신뢰를 조속히 회복하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단다. 법무부 장관 김현웅의 말이다. 그 ‘각고의 노력’이란 인사검증과 감찰 시스템을 강화하고, 검사의 사명감과 윤리의식을 확고히 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단다. 수치심마저 들었다는 검찰총장 김수남도 비슷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제시한 해법은 주식정보와 관련된 사람은 주식투자를 금지하겠다는 거다. 내부 제보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검찰의 재산등록도 심층 감찰하겠단다. 참담, 수치심 등 말만 거창했지, 내부에서 좀 챙겨보겠다는 게 전부다. 결국 장관과 총장의 사과는 시의적절한 물타기였다.


진경준의 놀라운 재산 증식은 처음부터 뇌물이었고, 홍만표는 ‘전관’이란 권력으로 돈을 긁어모았다. 다들 추잡한 전횡과 비리를 일삼았다. 현직은 물론 전직까지 돈을 긁어모으는 이 신통한 재주는 검찰의 막강한 힘에서 나온 것이다.


검찰은 막강한 권력이다. 국가정보원, 경찰, 군대, 재벌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국회보다 세며, 때론 대통령의 권력을 능가할 정도다. 검찰보다 센 조직은 없고, 검사보다 힘센 사람도 없다. 박근혜가 김기춘, 정홍원, 황교안 등 검찰 출신들에게 힘 있는 자리를 맡긴 것도 검찰의 힘과 무관하지 않다. 어떤 나라에도 없는 막강한 절대 권력,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검찰의 막강한 권력은 검찰만이 틀어쥐고 있는 수사권, 기소권, 형집행권에서 나온 것이다. 형사사법과 관련한 일체의 권한이 검찰에 집중돼 있다.


죄가 있으면 당연히 수사를 하고, 죄가 없으면 수사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거꾸로 할 수도 있다. 범죄자를 봐줄 수도,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다. 미네르바 사건, MBC <pd수첩>사건,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등 애꿎은 사람을 괴롭히고 인생을 망치려 한 사례는 끝도 없이 댈 수 있다. 범죄자에게 죄를 묻지 않는 사례도 차고 넘친다. 진경준, 홍만표는 언론보도가 없었다면, 지금껏 권력을 탐닉하고 있었을 거다.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중태에 빠트린 사건은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수사도 하지 않았다.


국가는 최고의 슈퍼파워지만, 실제로 국가가 개인에 대해 쓸 수 있는 무기는 국가형벌권이 유일하다. 잡아다 벌을 주는 것밖에 없다. 국가의 유일한 무기를 검찰만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건 사실상 국가 전체의 힘과 맞먹을 정도의 엄청난 권력이다. 경찰도 수사를 하지만, 그건 검찰의 지휘와 통제 속에서만 가능하다. 일종의 머슴 역할에 불과하다. 기소권도 검찰만의 독점 권한이다. 악질 범죄자도 기소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고, 죄가 없어도 기소당하면 몇 년씩 재판을 받으며 치도곤을 당해야 한다.


재판도 법원이 아니라 검찰이 주도한다. 재판이 열려도 검찰이 공소를 취소하면 그날로 재판은 없던 일이 된다. 법원이 범죄자를 단죄해도 형을 집행하는 건 검찰의 몫이다. 형집행을 정지시키면 대우그룹 김우중 또는 영남제분 ‘사모님’처럼 교도소가 아닌 자기 집이나 병원에서 편히 지낼 수도 있다.


물이 고이면 썩듯, 권력도 집중되면 썩는다. 진경준 등속은 검찰이 얼마나 썩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라는 건, 검찰청사에 붙은 ‘검사선서’에나 나오는 고상한 말이다. 더러 묵묵히 일하는 검사들도 있다지만, 김홍영 검사 자살에서 보듯, 묵묵히 일하는 것조차 참담한 굴욕을 감수하는 일이 되곤 한다.


권력을 한곳에 집중시켜 놓고도 부패하지 않기를 바랄 수는 없다. 내부의 자정 노력 따위로 바로잡을 수 없다. 권력의 집중이 핵심이니, 해법은 권력을 쪼개는 데 있다. 가장 확실한 재발방지책은 검찰권력의 해체에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수사권은 경찰에 넘기고, 검찰은 기소권으로 경찰의 파쇼화를 견제하면 된다. 검찰의 기소권은 미국식 기소배심이나 일본식 검찰심사회를 통해 민주적·시민적 통제를 받게 해야 한다.


검찰 내부 개혁도 필요하다. 쓸모라곤 그저 검찰 폼 잡는 것이 전부인 고등검찰청과 대검찰청도 꼭 필요한 기능만 남겨두고 폐지해야 한다.


지방검찰청장은 교육감처럼 시민이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개혁 방안은 전혀 급진적이지 않은 평범한 방안일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미국, 영국, 독일 등 어떤 나라도 좋으니 그 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옮겨와 검찰제도를 새로 마련하는 것도 좋다. 어떤 나라 제도를 옮겨와도 지금보다는 훨씬 낫다.


하지만 검찰권력과 공생을 즐기는 여당은 그렇다 쳐도, 야당마저 검찰개혁에 미온적이다. 야당의 원내대표들이 합의했다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만드는 정도로 검찰은 개혁되지 않는다. 검찰권력에서 독립된 별개의 조직이라면 일부 비리를 적발할 수는 있겠지만, 부패, 비리, 전횡을 없애지는 못한다. 그러니 논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회에 검사 출신 아닌 사람들로 검찰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제대로 된 논의부터 시작해보자.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바꿔보자. 자신의 약점 때문에 검찰이 두려운 국회의원들이 개혁 시늉만 내거나, 국면만 바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검찰개혁을 언급조차 않는 상태로 돌아가선 안된다. 악순환은 이제 끊어버려야 한다.</pd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