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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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와 민주노총 그리고 ‘연좌제’ (경향신문, 2016.04.28)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5 12:42
조회
527

한 사립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장애 학생을 가르치는 특수학교여서 충격도 파장도 컸다. 언론은 이를 ‘○○판 도가니 사건’이라 부르기도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는 수사를 받았고 재판에 넘겨졌다. 이런 일은 철저하게 시비를 가려야 한다. 하지만 그 교사는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이런 경우 하나의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낳기 마련이다. 이 일과 관련해 두 명의 교사가 파면된 것이다. 엉뚱한 사람을 가해자로 모함하고, 학교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였다. 꼭 교사가 아니라도 노동자에 대한 파면은 가급적 피해야 할 가장 무거운 징계다. 해고가 곧 가정 파괴, 또는 살인으로까지 여겨지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해고라는 결과는 같아도 파면은 해임하고는 다르다. 해임은 3년 동안 임용이 제한되지만 퇴직금은 받을 수 있는 반면, 파면은 5년 동안 임용될 수 없고 퇴직금도 반으로 깎인다. 무서운 징계다. 파면된 두 교사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이었고, 전교조는 부당해고라고 반발했다. 문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거다.


전교조는 이 학교 교장이 하종강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의 부인이라며,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통해 산하 조직에 하종강에게 강의를 요청하는 걸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하종강은 전국을 돌며 강연과 상담활동을 했던 노동운동가다. 지속적으로 민주노동운동의 역할을 강조했고, 전교조의 듬직한 우군이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전교조 조합원들이 부당해고를 당하는 걸 그냥 두고 봤느냐는 거다.


교장이 징계위원은 아니었지만, 교사 징계는 교장의 징계 요청에서 시작되는 만큼, 부당해고의 책임에서 교장도 자유롭지 않다는 게 전교조의 주장이다. 게다가 아내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서 부당해고가 있었는데도, 노동운동가인 하종강이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게 심각한 문제라는 거다. 하종강이 부당해고를 옹호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근거 없는 모함일 뿐이었다. 핵심은 부당해고를 규탄하지 않았고, 얼마든지 교장인 아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거다. 또한 하종강이 부당해고를 옹호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건 중요하지 않고, 전교조 조합원을 부당해고한 학교 교장의 남편이 전교조에서 강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거다. 전교조의 이런 방침은 상급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으로도 이어졌다. 민주노총도 중앙집행위원회를 통해 같은 결정을 했다.


어떤 논리를 펴든 이건 명백한 연좌제다. 연좌제는 개인이 존재하지 않던 봉건 시절의 악행이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형사상 연좌제는 없어졌고, 1980년 제5공화국 헌법 개정으로 일체의 연좌제가 폐지되었다. 헌법 개정 직전인 1980년 8월1일, 전두환은 연좌제 폐지를 공식 천명하기도 했다. 왕 고종과 대통령 전두환에 의해 폐지된 연좌제가 다시 부활했다. 놀랍게도 한국 민주주의와 진보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그 주인공이다. 봉건 임금과 민간인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한 희대의 독재자가 없애버린 구시대의 악행이 21세기에, 그것도 진보적 노동조합에 의해 부활했다.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지만, 이건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해야 한다는 뜻이지, 한쪽이 다른 한쪽에 속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남편과 아내가 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그들의 일은 각각 개별적인 것이다. 남편이 좀 유명하다고 아내가 그 남편에 속하는 것은 아니고, 그 역도 성립할 수 없다. 남편이 유명한 노동운동가인데, 어떻게 그의 아내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서 전교조 조합원을 파면할 수 있느냐는 비난은 그래서 말이 안된다.


전교조 조합원 파면 사태에 교장인 아내에게 책임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하지만, 설령 책임이 있다고 해도,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파면 사태가 있었다고 남편에게 그 책임을 묻고 뭐든 불이익을 주려는 것은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한두 사람이 홧김에 그런 주장을 했다면 모르지만, 중앙집행위원회라는 공식 기구를 통해 이런 결정을 하고, 거기에 민주노총까지 끌어들인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전교조와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에서 결정하고, 이제 그 결정에 따라 산하 노조들이 앞으로는 하종강을 부르지 않으면 되는 걸까. 하종강도 이런 상황에선 전교조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 대한 강의를 중단하겠다고 했으니, 이제 문제는 해결된 걸까.


물론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보호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해고가 부당하다면 당연히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 싸움에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 바로 헌법과 법률의 원칙, 곧 인권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 악법도 법이니까 무조건 지키라는 게 아니라,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거다. 지금 목도하는 것처럼,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정권의 노골적인 탄압을 받는 상황, 특히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체제 밖으로 쫓겨가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권의 탄압을 돌파하는 힘은 누가 뭐래도 인권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확고하게 부여잡는 거다. 부인이 교장이라는 이유로 노동자 대상 강의조차 하지 말라는 행태로는 도저히 돌파할 수 없다. 거대한 조직이 일개 개인에게 갑질을 하면서 얻고자 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인권의 기본조차 외면하는 일이 대표적인 민주 노조에서 자행되고 있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헌법 제13조 3항)는 원칙이 전교조와 민주노총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사태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한 전교조와 민주노총의 헌신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크다. 그러기에 이제라도 잘못을 바로잡았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전교조와 민주노총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