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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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종교적 신념 (경향신문, 2017.05.0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5 13:01
조회
972

한국 개신교가 침체란다. 신자들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활로를 찾느라 바쁜 모양이다. 바로 군대다. 한국군종목사단에 따르면 매년 15만명이 군대에서 세례를 받는단다. 부풀렸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엄청난 숫자다. 목사들이 말하듯 군대는 “침체되어 가는 한국교회의 새로운 돌파구” 역할을 하고 있다. 군인도 제복 입은 시민이기에 당연히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고 신앙생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학교나 군대처럼 누구나 가야 하는 길목에 버티고 앉아 자기 교단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게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심각한 건 특정 종교를 신봉하는 지휘관들의 월권이다.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교세 확장을 위해 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신앙생활이 정신전력을 강화한다며 자기가 믿는 종단으로 부하들을 이끄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특정 종교 일에 부대의 인력과 예산을 쏟아붓는 일도 적지 않다. 공화국의 공적 영역에서 지휘권을 선교 수단으로 삼는 건 헌법 위반이며 국가의 통합을 해치는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상처럼 반복되고 있다.


육군참모총장 장준규는 그 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개신교 장로이기도 한 육군 대장 장준규는 한국기독군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육군참모총장은 ‘군인사법’의 규정에 따라 “군에서 복무하는 현역장교 중 최고의 서열을 가지”는 사람이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국방부 장관 추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며 2년 임기도 보장받는다. 이런 자리에 있는 사람의 종교 편향은 위험하다. 육군참모총장과 군 선교단체의 대표가 같은 사람일 수는 없다.


장준규는 1군사령관 시절부터 군부대에 ‘사랑의 독서카페’를 만들자는 활동을 펼쳤다. 책 읽는 병영을 위한 일이란다. 군부대 독서카페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내년까지 989곳의 군부대로 확산된다고 한다. 대단한 실력이다. 이를 위해 군 예산을 투입하는 건 물론, 여의도 순복음, 극동방송, 여러 기업의 기독신우회 등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독서 카페 보급에 개신교계가 열심인 것은 군 선교의 새로운 바람이 불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종교 서적을 읽고 예배도 드리는 작은 교회 역할을 할 거란 기대다.


장준규는 2015년 9월에 참모총장이 되었으니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정권이 바뀔 테니 좀 더 빨리 물러날지도 모른다. 조바심이 난 걸까. 육군참모총장의 명을 받는 육군 중앙수사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대대적인 동성애자 색출을 시작한 거다. 벌써 대위 한 명이 구속되고, 30여명이 동성애자란 이유만으로 입건되었다. 수사를 계속하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장병들이 검거될지 모를 일이다. 범죄혐의는 오직 하나, 동성애를 했다는 거다.


상당 기간 준비한 기획수사였고, 함정수사를 비롯한 온갖 반인권적 수사기법이 총동원되었다. 이 사건을 추적해 온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육군참모총장 장준규의 강력한 주문 때문에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단다. 그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설파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국가가 지닌 최후의 수단인 국가형벌권을 휘두르고 있다. 전형적인 자의적 법적용이다.


광신도들의 가장 오랜 공격대상은 이교도를 빼고는 성소수자였다. 그들은 동성애를 변태, 심지어 치유 가능한 질병이라 여긴다. 회개하고 교회에 나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곧장 응징 대상이 된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 반복되고 있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성관계를 갖는 게 범죄가 되려면 강간, 추행, 성매매 등 구체적인 범죄행위가 있어야 한다. 범죄행위가 없었다면, 법이나 국가는 물론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사생활의 영역이다. 하지만 군인들의 경우엔 그런 사생활조차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있다. ‘군형법’ 제92조의 6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악법이다. 추행이 범죄가 되는 건 상식이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7월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5 대 4로 합헌 결정을 했지만, 김이수·이진성·강일원·조용호 재판관은 “해당 조항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인 법 해석 가능성을 초래”한다며 소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동성애 처벌조항은 명백한 차별이다.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하는 징병제 국가이기에 이런 차별은 더욱 심각하다. 개인의 사생활에 국가형벌권을 동원할 수 있는 잘못된 군형법 조항이 지금의 동성애자 탄압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 입장에서는 동성애가 비정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그리 가르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동성애는 이성애자들이 찬성하거나 반대할 문제도, 이해하거나 그렇지 않을 문제도 아니다. 이성애가 동성애자들의 이해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숙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는 사람도 있고, 아주 단순한 잣대로 정상과 비정상을 함부로 가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저 속내가 그렇다면야 뭘 어쩌겠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육군참모총장이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가 손에 쥔 지휘권을 통해 수십만명의 육군 장병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목숨마저 내놓을 수 있는 늘 준비되어야 할 군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당장 육군 중앙수사단과 육군 법무실을 움직이는 힘만 봐도 그렇다.


문재인·심상정 등 유력 대선후보들도 육군의 동성애자 색출에 대해 반인권적 수사라며 중단을 촉구했다. 장준규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수사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종교적 신념을 표현할 때도 넘지 않아야 할 금도가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041508001&code=990100&s_code=ao240#csidxd20f773d684ab5595e1fc915fd50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