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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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에 지금 무슨 일이 (경향신문, 2016.04.06)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5 12:42
조회
501

“지금 뭐하는 거야!” 대학법인 이사들이 학생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한신대 총장 선임을 위한 이사회가 막 끝난 다음이었다. 학생들은 민주적 절차 없이 총장 선임을 강행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고, 이사들은 총장 선임 권한은 이사회에 있다며 맞섰다. 지난주 장공관 회의실의 풍경이다.


장공관. 한신대의 본관, 장공 김재준 목사의 호에서 이름을 땄다. 김 목사는 한국 기독교장로회(기장)와 한신대학교를 만든 사람이다. 철저한 민주주의자였고, 민주화운동의 선구자였다. 후학 양성에도 힘써 문익환 등 숱한 제자들을 키워냈다. 대학 건물에 재벌 대기업이나 재벌 회장의 이름을 붙여대는 다른 대학들과 한신대는 사뭇 달랐다.


문익환 목사의 호를 딴 늦봄관을 비롯해 한신 출신 인사들의 호를 따 이름을 붙인 건물이 여럿 있다. 한신대 특유의 자존감 때문이다. 김 목사의 정신을 기리는 공간에서 폭언, 폭행, 그리고 경찰 공권력 투입 요청까지 있었다. 어떻게 한신대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한신대는 빛나는 역사를 일궈왔다. 한국 사회의 실천적 학문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기울인 공로는 무척 크다. 그만큼 우리는 한신대에 빚을 지고 있다.


1986년 10월 ‘건국대 사태’ 때는 100명이 넘는 한신대 학생들이 구속됐다. 정권 말기적 발악을 보이던 전두환 정권은 건국대에 모인 학생들의 시위를 트집 잡아 단일사건으로는 건국 이래 최대 구속자를 만들어냈다. 모두 1274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단위 학교에서 구속자 100명을 넘긴 학교는 건국대,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그리고 한신대뿐이었다. 학교 규모는 작았지만, 민주화운동 역량은 옹골찼다. 한신대는 민주주의의 요람이었던 셈이다.


빛나는 역사를 자랑하던 한신대가 불미스러운 일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직접적인 계기는 대학 총장을 하던 채수일 목사의 갑작스러운 사임이었다. 임기가 1년10개월이나 남았는데 갑자기 경동교회 담임목사로 자리를 옮겼다. 한신대 역사상 최초로 총장 연임에 성공한 사람이 갑자기 개교회 담임목사로 자리를 옮긴 까닭을 모르겠다. 대학에서 은퇴하면 고향에 내려가 공부방을 하겠다던 사람이었다. 대학교수는 65세 정년인데, 교회 담임은 7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일까. 한신대에서 받았던 사랑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배신이었다.


채 목사의 사퇴는 1000명이 넘는 기장 목사들이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공분을 샀다. 목사들은 채 목사의 사퇴로 한신대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무책임한 처신을 비판했다. 그래도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며 한신대의 전면 개혁, 투명하고 공정한 과정을 통해 개혁적 총장의 선임을 요구했다.


한신대 출신 목사들도 자존심이 상했겠지만, 대학 구성원들의 상처도 컸다. 하지만 한신대의 민주적 전통은 만만치 않았다. 교수, 교직원, 학생들이 뜻을 모았다. 총장 후보를 놓고 투표를 진행하는 등의 민주적 절차를 밟아 나갔다.


어차피 총장 선임은 이사회 권한이었지만, 위기 상황을 함께 헤쳐 나가자며 마음을 모았던 거다. 투표 결과 64%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후보가 나왔다. 2위는 12%, 3위는 11%였다.


보통의 경우, 결정적 흠결이 없는 한 1위 후보를 총장으로 선임하기 마련이지만, 이사회는 그러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표차가 많아도 2위 후보를 선임했어야 했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총장은 3위 후보가 되었다. 물론 교수, 학생들의 총장 추천은 이사회 정관에 따르면 법적 구속력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적 절차를 밟은 학교 구성원들의 요청마저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규정이 없더라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경청했어야 했다. 만약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있다면, 그 까닭을 진지하게 설명했어야 했다. 3위 후보를 골라놓고도 한신대 이사회는 아무런 설명조차 없었다.


이사회 직후 벌어진 소란 때문에 경찰이 한신대 학생들에게 출석을 요구했단다. 잘못이 있으면 조사도 받아야겠지만, 학내 갈등에 최후의 수단이어야 할 국가 형벌권이 개입하는 건 잘못이다. 이 비정상적인 일은 이사들이 자초했다. 이사들은 학생들이 자신을 감금했다며 112 신고를 연발했고, 학내에 공권력 투입을 거듭 요청했다. 오히려 경찰이 대학 내에 함부로 공권력을 투입할 수 없다며 신중한 모습이었다. 국가 공권력을 빌려 학생들을 처벌하겠다고 벼르는 이사들은 대부분 기장 목사들이다.


기장 목사들은 최근 경찰이 기장 총회장에게 집시법 위반 혐의로 출석을 요구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고 있다. ‘종교의 자유’(헌법 제20조) 침해를 규탄하는 기도회를 경찰청 앞에서 열겠단다. 당연한 저항이다.


하지만 좀 이상하다. 기장 총회장의 경찰 출석은 헌법을 파괴하는 ‘패악한 행위’이고, 기장 교단 소속 대학 학생들의 경찰 출석은 ‘정당한 법집행’이란 말인가.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새로 선임된 총장이 사퇴하면 문제는 간단히 풀릴 수 있다. 전임자처럼 무책임한 사임이 아니라, 한신대의 민주적 전통을 복원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로운 결단이 될 거다. 차제에 총장을 대학 구성원들이 함께 선출하는 총장 직선제를 도입하고, 신학과 교수들인 목사들만 총장을 하도록 규정한 정관도 바꿔야 한다. 마치 신학과 학과장처럼 신학과 교수들만 돌아가면서 총장을 맡아서는 어떤 발전도 기약할 수 없다. 설마, 한신대의 정체성을 이런 중세적 자폐로 확립할 수 있다고 진짜로 믿는 걸까.


김재준 목사가 설립했고, 문익환, 장준하, 강원룡, 서남동, 안병무 등 개신교를 넘어 겨레의 빼어난 지도자들을 배출한 한신대다. 그야말로 ‘실천이성의 요람’이었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닌 한신대가 채수일 총장 개인의 일탈과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어 보이는 이사들 때문에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 그래서 묻는다. “한신대, 지금 뭐하는 거야!”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