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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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 죽음 내몬 경찰의 감찰 (경향신문. 2017.11.2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0-05 13:42
조회
532

그는 엄마였다. 두 아이의 엄마, 아이들은 아직 어렸고 엄마의 손길이 절실했다. 열 살과 일곱 살. 그래도 엄마는 모진 결심을 했다.


그는 여성 경찰관이었다.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은 아니었고, 임신, 출산, 육아와 직장 생활을 함께하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잘 버텼다. 이제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으니, 둘째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그나마 숨 돌릴 여유도 생길 판이었다. 그래도 그는 모진 결심을 단행했다. 유서조차 남기지 않았다. 무언가 맹렬한 기세로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집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한 건 열 살 먹은 아이였다. 이런 죽음 앞에서 우리는 말을 놓게 된다. 끔찍한 비극이다.


시작은 익명의 투서였다. 근무에 게으르고 동료에게 ‘갑질’을 했고, 해외연수도 독차지했다는 거다. 원래 이런 익명의 투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행정적으로는 각하 처분 대상인 거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가 소속된 충북 충주경찰서는 근거 없는 음해라 판단해 각하 처리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상급관청인 충북지방경찰청은 달랐다. 뭔가 건수가 될 거라 판단했거나, 또는 건수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렇게 감찰이 시작되었다.


투서 내용은 너무 쉽게 판명 났다. 경찰에서 세 번째로 낮은 경사 계급이 누군가에게 갑질을 한다는 건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음해였다. 게다가 갑질이 가능한 보직도 아니었다. 해외연수도 특혜는 없었고 그저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뿐이다. 문제는 근무 태만이지만, 이건 어떤 상황에든 끼워 맞출 수 있는 요술방망이가 될 수도 있다.


충북경찰청 감찰팀은 은밀하게 움직였다. 미행을 했고, 몰래 촬영을 했다. 주로 출퇴근 상황을 점검했다. 상당한 인력이 그의 뒤를 쫓으며 혹시 지각은 하지 않는지, 퇴근 시간 이전에 사무실을 나서지는 않는지 따위를 챙겼다.


그런 식으로 일상을 감시한 끝에 드디어 잡아낸 건수가 시간외 수당 부당청구 의혹이었다. 아침 7시30분에 출근을 해서 업무를 보다가, 잠깐 집에 들러 아이들 등교를 챙겨주는 장면을 포착한 거다. 그래봤자, 다시 경찰서로 돌아온 시간은 정상 출근 시간인 9시 이전이었다. 일하는 엄마가 출근 시간 이전에 분주하게 움직였으니, 출산율 꼴찌 국가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고마워해야 할 장면이었지만, 감찰은 거기서도 뭔가 끄집어내는 특별한 능력을 보여준다. 7시30분에 출근하면서 출근부를 찍었는데, 아이들 데려다 주는 시간 동안에는 근무를 하지 않았으니 부당하게 시간외 수당을 챙기려 했다는 거다. 아이 키우는 엄마지만, 업무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는 비난을 듣고 싶진 않았고, 그래서 좀 더 일찍 출근해 업무를 보다가 아이들 등교를 챙겨주려 잠시 나갔다 들어온 게 문제라는 거다.


감찰은 동료 경찰관의 고군분투에서 작은 꼬투리를 잡아놓고는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19일의 일이다. 하나를 보면 둘을 안다며 압박했다.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세 번 정도 지각했다고 인정하면 모르지만, 그러지 않으면 경찰서 폐쇄회로(CC)TV를 다 끄집어내겠다고 했다. 당신 때문에 전 직원이 출퇴근 상황을 점검당하는 사태가 생길 텐데 그래도 견딜 수 있겠느냐는 압박이었다. 실제 지각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감찰은 집요했다.


엿새 뒤엔 감찰이 수사관까지 데리고 들이닥쳤다. 수사관이 왔다는 건, 당신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신호였다. 이번엔 없어진 주민등록발급신청서 498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라고 했다. 만 17세가 되면 주민등록증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등록발급신청서를 작성한다. 이건 동네 주민센터 일이지만, 열 손가락 지문이 찍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청서는 경찰이 보관하고 있다.


범죄자도 아닌 국민 모두에게 열 손가락 지문 날인을 강요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단지 지문이 찍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민등록발급신청서를 경찰이 보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없어졌다는 신청서들은 2014년 1월에 작성된 거다. 거의 4년이 다 되어서야 민감한 개인정보가 잔뜩 담긴 중요 서류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500명 가까운 시민들의 개인정보가 없어진 것도 모르는 경찰이 다른 서류들은 잘 보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없어진 게 이것뿐인지도 의문이다.


그 중요한 잘못을 힘없는 여성 경찰관에게 뒤집어씌우려 했던 것이다. 근무태만 운운하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버린 거다. 어떻게든 자기들 성과를 내려고 수사관까지 데리고 갔던 거다.


천만다행으로 그에게는 등기우편 영수증 등 신청서를 제대로 처리했다는 근거가 남아 있었다. 혐의는 벗을 수 있었지만, 감찰은 막무가내였다. 3시간의 조사를 받고 나와서는 신청서 분실 책임을 자신에게 물으려 한다며 동료들 앞에서 분통을 터뜨렸단다. 그러곤 다음날 아침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지난해 동두천경찰서 최혜성 순경도 그랬다. 음주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는 처벌기준 0.0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한 방울이라도 술을 마신 것 아니냐며 윽박지르는 감찰을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렇게 비극은 되풀이되고 있다.


감찰은 건강한 조직을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경찰의 감찰은 고위직의 힘 있는 사람들, 갑질은 기본이고, 아예 사무실에 침대까지 갖춰놓고 마음껏 낮잠을 즐기는 기관장들의 비위는 애써 모른 척하고, 최혜성 순경, 표정목 경장, 그리고 이번엔 경사에게 그랬던 것처럼 낮은 계급의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쏠렸다. 힘 있는 사람에겐 굽실거리고, 힘없는 사람에겐 군림하는 악질적인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경찰의 감찰 조사를 받다가 사람이 죽어나가는 비극을 막아야 한다. 지금의 감찰은 해산시키고, 감찰권 자체를 행정안전부 등 외부에 넘기는 등의 개혁을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수사절차에 준해서 감찰 당하는 사람들의 방어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목숨이 달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