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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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청소년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배려한다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19 17:11
조회
437

11월 24일 cbs-r [시사자키]를 통해 방송한 원고입니다.


: 오국장님 어서 오십시오.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먼저 [가정과 인권]이란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가정과 인권중에서도 먼저 어린이, 청소년의 권리에 대해 지난주에 말씀을 나눴습니다. 지난주에는 어린이, 청소년의 권리 중에서 개론적인 부분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 어린이, 청소년의 권리조약이 1989년 유엔총회를 통해 채택되었는데, 이 조약은 어린이,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 원칙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특별한 배려와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는 말씀을 지난주에 드렸다.


지난주까지 교과서적인 말씀만 드리게 되어 듣는 분들께는 죄송했다. 그러나 원칙을 확인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기에 부득이하게 그렇게 하였다. 오늘부터 구체적인 현실을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일단 이 조약이 어린이, 청소년을 누구로 규정하고 있는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어린이, 청소년을 18세가 될 때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 언제부터 시작이냐는 질문이 있을법 한데, 이에 대해서는 “출생전후를 막론하고”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유엔이 낙태를 금지하는 원칙을 천명한 바는 없지만, 뱃속에 있는 아이도 생명인 이상 부모의 임의대로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원칙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 : 지난주에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다루었으니, 오늘은 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우리 사회에도 어린이, 청소년들에 대한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인데...


오 :이 조약 3조는 [어린이, 청소년의 최상의 이익]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공공 또는 민간 사회복지기관, 법원, 행정당국, 또는 입법기관 등에 의하여 실시되는 어린이. 청소년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어린이. 청소년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어린이. 청소년의 권리에 대해 얼만큼 취약한지에 대해 알 수 있는데, 우리 청취자들께서 기억하는 일로는 성폭행을 당한 어린이들의 증언에 대한 우리 법원의 태도일 것이다.


하나의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린이, 청소년의 권리에 대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 : 어떤 사건인가?


오 : 지난 1998년 유치원생 이모양은 유치원장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딸의 이상한 태도를 전해 들은 이양의 부모는 성추행한 유치원장을 1998년 5월 검찰에 고소하였다. 동시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그런데, 검찰은 2000년 2월 증거능력이 부족하다며, 유치원장에 대한 불기소를 결정하였고, 반면에 법원은 이양 부모가 제기한 민사소송에 대해 6천만원을 배상할 것을 판결하였다.


이양의 부모는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였고, 헌재는 2002년 8월 검찰의 불기소 처분 취소 결정을 내렸다. 2003년 1월 성추행 사건에 대한 형사재판이 처음 열리게 되었고, 지난 9월 검찰은 가해자인 유치원장에 대해 징역 3년형을 구형하였다. 그런데, 30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법원은 가해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 : 성추행을 당한 것은 1998년이었는데, 그러면 그때 이양은 몇 살이었나?


오 : 다섯 살이었다.


이 : 그러면 다섯 살때 성폭행을 당했는데, 5년이 지난 다음에야 재판이 열리게 되었고, 그나마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는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오 : 이양의 부모에게 딸이 유치원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범죄가 무서운 것은 당장의 피해도 문제지만, 그 피해가 이후에 어떻게 그 아이의 인생에 영향이 미칠지 모른다는 것 때문에 더 큰 문제이다. 부모들은 이미 경찰과 검찰 단계에서 어린이가 진술을 하였고, 이 내용이 비디오를 통해 녹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또 다시 법정에 나가 증언을 하게 되면, 이제 열 살이 된 어린아이가 받을 정신적 충격이 우려된다며, 이양의 법정진술을 거부했다. 그러자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 : 민사법원에서는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하고, 형사법원에서는 무죄라고 하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형사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한 근거는 무엇인가?


오 : 형사소송법 314조가 문제가 되었다. 형소법 314조는 증거능력의 예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당사자가 사망, 질병, 외국 거주, 기타 사유로 인하여 법정에서 진술을 할 수 없을 때에는 진술조서나 기타 서류의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재판부는 여성인 어린이가 받을 정신적 충격을 우려하여 법정에서의 진술을 거부한 것이, 기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 그럼 도대체 무엇이 기타 사유에 해당하냐는 생각이 든다. 또 부모들이 의사의 진단서까지 제출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오 : 그렇다. 이양이 법정증언을 하게 되면, 정신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의사의 진단서도 법원에 제출하였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양 부모의 입장은 단호했고, 또 정확했다. 딸이 5년전 겪은 일을 기억해내기도 어렵고, 또 기억해낸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충격을 재연하는 것은 다시 성폭행을 당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경찰. 검찰에서의 진술서와 병원 치료과정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를 제출하였는데, 법원이 자구에만 매달려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 : 지난 7월부터인가, 성폭행 피해 어린이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진술 녹화제”를 시행한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는데, 그러면, 이번 판결은 그런 성과를 뒤엎어버리는 것인가?


오 : 그렇게 보인다. 애초에는 경찰에서 그런 입장을 밝혔고, 누가 들어도 옳은 소리이기에, 검찰과 법원도 그런 입장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드러난 판결은 완전히 그런 사회적 합의를 뒤집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재판이 열린 뒤 이틀뒤에 열린 재판에서는 진술녹화테이프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하여, 법원이 무언가 우왕좌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 다시 앞서 이야기한 어린이. 청소년의 권리조약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사회복지기관, 법원, 행정당국, 입법기관이 어린이. 청소년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내용과는 전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을 보고 있는 것인데...


오 : 그렇다. 끔찍한 범죄를 당한 어린이에 대한 최우선적 고려는 고사하고, 일반적이고도 상식적인 고려조차 없다는 게 문제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런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는 집단이 바로 국민인권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에 의한 것이라는데 있다. 법원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도대체 자식을 키워봤거나, 하다못해 조카딸이라도 며칠 돌봐준 경험이라도 있으면 이런 판결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이었다.


판사들의 평균 근속햇수가 8년밖에 되지 않고, 평균 연령은 40세도 되지 않는다는 법원 인력의 문제점이 드러난 판결일수도 있지만, 우리 법원이 ‘어린이. 청소년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판결이기도 하였다.


이 : 법원만 그런 것은 아니겠고?


오 : 비슷한 사건들을 보아도 법원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경찰이나 검찰의 수준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성폭행 피해자의 진술을 남성경찰관이나 남성 검사가 받는 경우는 물론이고, 쓸데없는 중복 질문에, 잦은 소환 등으로 인해 상처가 덧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여성운동이나 언론의 요구에 대해 검찰청이나 경찰청에서 조금씩 입장을 밝히고 있고, 또한 밝히는 입장들이 대체로 옳은 방향이기는하지만, 구체적인 현장에서의 실현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중요한 것은 어린이. 청소년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