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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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변호사,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런데 너무 적다(시사자키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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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10-20 17:44
조회
58

<한국의 변호사, 이대로여도 좋은가>


이영자 교수 : 오국장님, 어서 오십시오. 그동안 계속해서 [변호사와 인권]이란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동안 변호사가 인권문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데, 사실을 별로 그렇지 않다는 말씀과 더불어 국선변호인제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돈없는 사람들은 법 앞에 평등하지도 않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해오셨나요?


오창익 국장 : 오늘은 법조비리에 대해 짧은 시간 말씀드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변호사들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법조비리는 그동안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졌던 것처럼 매우 고질적이고 심각한 상황입니다. 법조비리의 가장 보편적 양상은 바로 전관예우입니다.


전관예우에 대해서는 간단한 사실만 점검해봐도 아는데, 일간신문의 1면에 가끔씩 변호사 개업 광고가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게 참 한심한 내용들뿐인데, 어느 고등학교와 어느 대학교를 나와서 법원이나 검찰같은 재조에서 이런저런 경력을 거쳤고, 마지막으로 어느 동네에서 공직에 있었는데, 이번에 정든 공직을 떠나서 바로 그 동네에 개업하게 되었으니 많이들 찾아오라는 내용입니다. 서울의 경우 동부, 서부, 남부, 북부 등의 지원과 지검이 있는데, 동부 출신은 거의 대부분 동부지원 앞에 개업을 하고, 서부에서 마지막으로 봉직했던 변호사들은 서부 앞에 개업을 합니다. 이런 개업 행태가 전관예우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분들 중에는 전관예우에 기대지 않으려는 분도 계실 것이고, 또 그냥 그 동네가 익숙하고 집도 가까워서 그 동네에 개업한 분도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 전관예우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다른 문제까지 끄집어낼 것도 없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오 : 그렇습니다. 자신들의 전문적인 지식과 배타적인 자격증을 이용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변호사는 돈을 벌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거액의 수임료, 성공보수를 갖다 바쳐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한변협이 역사적으로 긍정적 역할도 했지만, 변호사들의 단체일 뿐인 이 기관이 법적으로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권을 갖고 있기에, 제대로 된 자정활동도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회비로 운영되는 단체가 회비 내는 회원들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꼬집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변호사의 잘못을 변호사들로만 구성된 단체가 꼬집어야 하는 구조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법조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변호사들에 대한 중층의 감시활동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변호사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단 1개도 없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법조비리와 같이 서민을 울리고,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는 부패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국의 변호사, 희망은 없는가>


이 : 오늘까지 4주째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눠보면,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란 분들에게 도대체 희망을 걸 수 있을지가 의문이 들 지경입니다. ‘한국의 변호사, 희망은 없는가’라고 묻고 싶은데요?


오 : 희망은 늘 어디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이 그리 찾기 힘든 것이거나, 또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입니다.


일단 제 생각으로는 법조인력 양성과정에서부터 전면적인 쇄신이 단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지금도 대법원 산하에 사법개혁위원회가 활동 중에 있기는 하지만, 위원의 거의 대부분이 법조인들로 꽉 짜여진 상황에서  민중본위의 혁신적인 개편안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사법개혁위원회의 구성과 논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계의 개혁작업을 변호사 등 법조인들에게만 맡겨놓는 것은 그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비춰지기 십상입니다. 그야말로 시민의 참여가 필요한 곳이 바로 사법개혁위원회 같은 곳인데, 현실은 꼭 그 반대로만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야말로 법조인 아닌 사람들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참여가 절실합니다. 한국 사회의 변호사에게 희망이 있다는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자성하며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힘으로 변호사들이 승복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서민들에게는 안전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낼 때만이 가능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사법개혁의 주체는 법조인이 아니라, 시민들이어야 합니다.


이 : 지금의 사법개혁위원회에도 참여연대나 경실련 같은 곳에서도 참여하고 있는데요.


오 : 열심히 일하고 있고, 한국사회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단체들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만, 참여연대와 경실련에서 참여한 분들도 한결같이 법조인이라는 것에 대해서까지 동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법개혁 작업은 법조계 내부에서만 효용성이 있는 전문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상식을 가진 시민들에 의해서, 그들의 힘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전문가는 그저 실무자일 뿐입니다.


이 : 자, 이제 지난 4주 동안 진행되었던 [변호사와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야 하는데, 뭐랄까요? 우리 피디들은 ‘착한 변호사’란 표현을 썼던데, 각박하고, 그저 돈이나 챙기려고 하는 풍토에서도 열심히 민중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변호사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분들에 대한 말씀을 해주시죠.


오 : 참 좋은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일제시대에도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가나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가들을 변호하던 분들이 계셨고, 또 직접 독립운동에 뛰어든 변호사도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상당기간 동안 암흑기를 거치기는 하였지만, 유신시대에는 이돈명, 황인철, 홍성우 조준희변호사등 흔히 4인방이라 불리는 인사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7,80년대에는 한승헌, 강신옥, 이돈명 변호사 같은 분들이 직접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한승헌변호사(1934년생)는 1975년 어떤 여성지에 썼던 ‘어떤 조사’라는 글을 문제 삼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9개월 동안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고, 1980년 이른바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또 다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한승헌 변호사는 ‘자랑스럽게 살지는 못할망정, 부끄럽게는 살지 말자’라는 젊은 시절의 소신을 잘 지켜온 분으로 지금도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황인철 변호사(1940년생)는 1993년 숨을 거두기 전까지 숱한 인권 탄압의 자리를 늘 함께 지켜왔습니다. 민청학련사건, 한승헌변호사 필화사건, 동일방직, 크리스챤 아카데미, YH사건,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오송회사건, 권인숙, 박종철 사건, 임수경 사건 등 7,80년대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그를 통하여 거쳐 갔습니다.


홍성우변호사(1938년생)도 7,80년대에 많은 일을 하였지만, 1996년 예전의 꼬마민주당에 참여하면서 직접 정치권에 뛰어들면서부터 인권변호사로서의 면모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예전의 명성과는 달리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7,80년대의 노고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평전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던 이돈명변호사(1922년생)는 인권변호사의 맏형, 어른다운 행보로 여전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최근에도 고령에도 불구하고 각종 인권현안에 대한 서슴없는 발언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조준희 변호사(1938년생)도 지난해 10월에 출범한 사법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보다 약간 후배지만, 전태일 평전의 저자로도 유명한 조영래변호사처럼 일찍 세상을 뜨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변호사도 있습니다.


이 :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나는데요, 오늘 신문에 보니까 오마이뉴스에 한겨레 논설위원인 손석춘씨가 추기경에 대해서 쓴 글이 화제가 되고 있던데, 거기서 김수환 추기경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공헌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던데, 이분들에 대해서도 같은 지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오 : 물론 그런 측면이 존재합니다. 그래도 변호사면 최소한 먹고 살 수는 있었고,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참여란 것이 기본적으로는 엉거주춤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전혀 새로운 측면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김수환 추기경이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그의 발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있을 수 있는 정당한 비판마저 봉쇄하자는 것이 아니라, 1920년대 초반에 태어나서 일본 식민지 교육을 받았고, 이미 30대에 전쟁을 겪은 분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런 정도의 노력을 했다면 상당히 평가할 수 있지 않냐는 생각입니다.


저는 지금은 또 몰라도 최소한 7,80년대에 민주화운동에 함께했던 변호사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평가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감옥에 가기도 하였지만, 얼마든지 감옥에 갈 수도 있었고, 또 한승헌 변호사가 8년 동안 변호사직을 박탈당한 것처럼 변호사 자격을 빼앗길 수도 있었고, 장준하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건 그냥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공포가 있는 상황에서의 참여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그건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 이분들의 노력과 활동이 이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통해 좀 더 구체화되고, 인권변호사들의 활동도 보다 활발해지게 되는 거죠?


오 : 그렇습니다. 1세대의 노력 뒤에 2세대가 따라붙고,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많은 변호사들이 인권변호사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구심이 바로 민변입니다.


그런데 민변은 지금 창립 이래 가장 중요한 분기점에 와 있습니다. 이전에도 민변이 정치권력의 좋은 인력제공 창구의 역할 비슷한 것을 해왔는데, 이제는 회원인 노무현변호사의 대통령 당선으로 민변이 자타가 공인하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파워 엘리트 집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통령, 민정수석, 국민참여수석, 국정원장, 법무부장관, 청와대에 포진한 여러 명의 비서관과 행정관들, 그리고 국정원, 법무부 등 요소요소에 배치된 민변 회원들까지 합하면, 지금 권력의 핵심에서 일하는 민변 회원은 상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각 정당에 많은 회원들이 소극적으로는 당원에서부터 적극적으로는 총선 출마 예상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 좋은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에서 일하게 되면 그게 바로 좋은 일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오 : 그럴 수도 있겠지만, 드러나는 현실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상당한 정도의 경계와 긴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민변에서 그런 도덕적 감수성이랄까 하는 것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시기가 기회인지, 위기인지 모르지만, 초심에 바탕하여 잘 헤쳐나가지 않으면 중대한 고비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 우리에게 희망이 되는 변호사들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예전에 활동했던 1세대 인권변호사들 말고, 또 다른 분들은 없습니까? 오국장님은 인권운동 현장에 계시니까, 아무래도 많은 변호사들을 만나실텐데.


오 : 언론에 의해 요란한 조명을 받지도 않고, 일반 대중들은 물론 인권운동가들조차 별로 기억하지 않는 변호사들 중에서도 훌륭한 분들이 꽤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돈하고는 전혀 상관없는데도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손해를 무릅쓰는 변호사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고, 제가 평소 눈여겨보았던 몇분을 소개해 드리는 것으로 지금까지 4주 동안 진행했던 ‘변호사와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우선 먼저 소개할 분은 시사자키 청취자들께서도 잘 아실텐데, 이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던 김칠준변호사입니다. 김칠준변호사(1960년생)는 수원에서 법무법인 다산의 대표변호사로 활동 중인데, 여러 가지 다양한 사회활동 실천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경기지역의 거의 유일한 인권단체인 다산인권센터를 설립하고, 지금도 이 단체의 운영이 가능하도록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김변호사는 이 단체를 창립했고, 지금까지 이 단체를 운영하기 위한 거의 모든 재정적 부담을 감당했으면서도, 이 단체의 대표도 또 무슨 근사한 직함도 갖고 있지 않고, 그저 여러 사람의 운영위원중의 한명일 뿐입니다.


다산인권센터는 처음에는 김칠준변호사의 인권상담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4명의 상근활동가가 근무하는 제대로 된 인권단체로까지 성장하였습니다.


일단 놀라운 것은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단체의 운영비를 김칠준변호사가 거의 대부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시민단체들에 참여한 변호사 등 이른바 전문가들 중에서 몇푼 안되는 돈을 내고도 생색내기가 바쁘고, 대표직 등을 통해 운동의 성과를 자기 자신에게 모으기 바쁜 사람들도 꽤 있는데, 김변호사의 이런 태도는 보통의 경우와 크게 구별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넉넉한 마음으로 나누려고 하는 사람, 이런 태도야말로 변호사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인데, 김변호사는 자기 시간으로, 자신의 열정으로, 또 자신의 돈으로 이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또 한분은 김희수변호사(1959년생)란 분입니다. 공교롭게도 김희수변호사는 앞서 말씀드린 김칠준변호사와 사법시험 동기인데, 지금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상임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칠준변호사도 그렇고, 김희수변호사도 제가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분들이어서 방송을 통해 ‘착한 사람’으로 소개하기는 뭣한데, 더 많은 수익이 보장되는 편안한 변호사 생활을 접고, 수십년된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평가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민변을 민변일수 있게 떠받치고 있는 최병모변호사(1949년생, 현직 회장)와 노동변호사로서 괄목할만한 노력을 해온 김선수변호사(1961년생, 현직 사무총장), 김선수변호사와 함께 일하면서 민중적 삶에 대한 진지한 연대자세를 보여준 김진변호사(1972년생), 거의 유일하게 감옥 문제에 대해 천착하고 있는 이상희변호사(1972년생), 역시 같은 사무실의 차병직변호사(1959년생) 등이 있습니다. 또한 저와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훌륭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통해 소개하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이 방송을 준비하면서 몇분의 젊은 법조인에게 갖고 있는 생각을 물었더니, 대체로 이 정도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변호사도 많고, 인권변호사로 불리는 변호사도 많지만, 변호사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변호사, 인권운동가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변호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 많은 분발이 필요한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