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형식적인 국선변호인 제도, 법은 돈 있는 사람의 권리만을 보호한다>(cbs라디오 1.1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0 17:40
조회
1003

<형식적인 국선변호인 제도, 법은 돈 있는 사람의 권리만을 보호한다>


이영자 교수 : 지난주부터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변호사와 인권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오늘은 어떤 말씀을 준비해오셨나요?


오창익 국장 : 변호사법의 규정을 말씀드리면서, 여러 직역 중에서 변호사만이 유일하게 법에 ‘인권옹호와 사회정의실현’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당연히 변호사는 공익적으로 활동하여야 하고, 그래서 2년씩 국민의 세금을 들여 사법연수원을 통해 법조 인력을 양성하고, 5급 사무관에 준하는 월급까지 지급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변호사의 공익활동 중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국선변호인 제도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해 국가에서 변호사를 대신 선임해주는 제도가 국선변호인 제도인데, 우선 그 현실은 어떤지부터 말씀해주시지요.


오 : 국선변호인 제도는 우선 헌법에 그 근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우리 헌법 제 12조 4항의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는 규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따라서 변호사를 구할 수 없을 때, 국가가 변호인을 붙여주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당연한 권리입니다. 비록 헌법이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라는 단서를 붙여 놓기는 하였지만,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국가가 변호사를 붙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대전제입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좀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법률의 규정이 까다로운데, 형사소송법 제 33조의 [국선변호인] 조항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법원이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① 미성년자일 때, ② 70세 이상인 자일 때, ③ 농아자(聾啞者)일 때, ④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는 자일 때, ⑤ 빈곤 기타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때, 단 이 경우는 피고인의 청구가 있는 때에 한한다. 즉 헌법에는 국가가 국선변호인을 붙여주는 것이 대전제이지만, 구체적으로 형사소송법에 오면 몇가지 규정을 통해 실질적으로 누구나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이 : 법률의 규정도 그렇지만, 실제로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은 경우에, 피고인들이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가요? 더 중요한 것은 국선변호인 제도가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가 일텐데요?


오 : 역시 유감스러운 현실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요...몇가지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자면, 변호사들이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되는 경우 받게 되는 낮은 수임료 - 사건당 12만원 정도인데 재판에 따라 재판장이 최대 50만원까지 지급할 수 있음 - 때문에 국선변호를 기피하고 있고, 일부의 경우라고 믿고 싶지만,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된 변호사들도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변론으로 피고인들의 원성을 듣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된 변호사들이 불성실한 변론을 하게 되면, 당장 공판기일이 연기되고, 이 때문에 불필요하게 피고인들의 구속일수가 크게 늘어나게 되어, 피고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국선변호인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국선변호인들 중에서 건성으로 하는 사람들이 어는 정도인가 하면, 지난해 4월 서울지방법원이 국선변호의 내실화를 위해 불성실한 국선변호인을 교체해달라는 판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255명의 국선변호인 예정자 중에서 28명을 교체할 정도입니다. 이뿐 아니라 매년 수십 명의 국선변호인들이 불성실 변론을 이유로 법원에 의해 국선변호인 지정을 취소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판사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같은 한 식구 법조인인 변호사들을 불성실하다며 국선변호인 지정을 취소할 정도이니, 국선변호인 제도가 얼마만큼 형식적으로 운영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 열심히 하는 사람들, 성의를 다하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오 :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신이 맡은 국선변호 사건을 열심히 하여 무죄를 받거나 하면 신문에 날 정도니까, 실상을 짐작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국선변호인 제도가 건성으로 법률구조의 시늉만 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그저 변호사들이 돈 욕심만 내고 있다고 비난하기만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변호사들이 다른 곳에서 돈을 많이 버니까, 국선변호 사건은 공익적 차원에서 좀 더 열심히 해달라고 당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보다는 국선변호인 선임료를 보다 현실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 현재 받고 있는 12,3만원 정도로는 안된다는 말씀이군요.


오 : 그렇습니다. 실제로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경미한 사건도 다들 몇백만원 이상씩 받습니다. 구속된 경우, 조금 복잡한 사건인 경우에는 수임료가 더 뛰게 됩니다. 물론 지금 변호사들이 받고 있는 형사사건 수임료도 많다고 볼 수 있지만, 국선변호인 선임시의 수임료와 너무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 국선변호인 제도는 법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제도인데요, 그러면 법원에서는 이를 위해 얼만큼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나요?


오 : 한마디로 쥐꼬리만큼입니다. 2000년부터 3년 동안은 123억 7천만원으로 묶여 있었고, 지난해에야 겨우 148억여원으로 소폭 증액되었습니다. 외환 위기 이후 돈이 없거나 해서 국선변호인을 신청한 피고인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택도 없는 돈입니다. 대법원에 따르면 형사사건 피고인 중 국선변호인 선임 비율은 96년 14.4%(3만549명)에서 ▲98년 20.7%(5만8396명) ▲2001년 23.6%(6만205명) ▲2002년 24.3%(6만8334명)로 증가했습니다. 이렇게 국선변호인 선임 비율이 증가하는 가운데, ‘빈곤’을 이유로 국선변호인을 신청하는 피고인은 96년 7.2%(2208명)에서 ▲98년 32.5%(1만8959명) ▲2000년 47.8%(3만577명) ▲2001년 53.5%(3만3804명) ▲2002년 60.2%(4만1163명)로 급증했습니다. 그러니까 2002년을 기준으로 하면, 국선변호인을 선임한 피고인이 68,334명이나 되는데, 이에 대한 예산은 겨우 123억원이라는 것입니다. 123억원을 68,334명으로 나누면, 1인당 179,998원을 지원한 셈이니, 앞서 말씀드린 건당 12만원 이상이라는 선임료와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헌법이 보장하는 법앞에 평등할 권리,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국가가 쓰는 돈이 겨우 123억원, 요즘에는 좀 늘어나서 148억원이라는 것은, 겨우 그 정도밖에 배정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실제로 앞서 말씀드린 권리를 옹호하는데,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의 중요한 반증이 됩니다.


이 : 돈의 문제만 있을 것 같지는 않고요. 어떤 경우에 보면, 국선변호인이 선임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법정에 앉아 있으니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자신이 변호인이라고 해서 황당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오 : 예, 그렇습니다. 돈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지만, 이 제도를 운용하는 법원에도 상당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법원은 국선변호인 제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언제나 예산타령만 하고 있는데, 예산 외에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법원은 국선변호인 제도에 대해 사실상 방관만 하고 있는데, 그 행태는 엽기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를테면 재판에 편리하다는 이유로 국선변호 사건을 특정 변호사에게 몰아주고 잇기도 합니다. 그래서 1년에 국선변호만 100건 이상 맡는 국선변호 전문가도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고, 공판 1주일 전에야 사건을 배당하는 바람에 변론준비할 시간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거듭된 문제제기 끝에 대법원이 지난해 3월 ▲피고인에게 국선변호사 선택권 부여 ▲1-2심 동일 국선변호인 선임 ▲국선변호료 증액 ▲국선변호 활동에 대한 평가 강화 등 개선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미봉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국선변호인 제도가 원래의 인권보호라는 취지와는 무관하게 그저 법원과 변호사들의 알리바이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 : 법원은 그렇다 치고, 변호사들에게 알리바이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오 : 변호사로 일하면서 국선변호 활동을 많이 했다는 것이 상당한 선전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변호사들은 보통 국선변호 사건을 맡으면, 기본적인 피의자 접견은 할 생각도 안하고, 법정에 나가기 전에 형식적인(늘 재활용할 수 있는 매우 형식적인) 변론준비서면만 내거나, 법정에서는 그저 잘못을 빌라느니, 선처를 바란다느니 하는 이야기만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많은 재판의 경우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는데, 변호인은 오히려 피고인에게 가만있으라면서 반대 증거를 수집하기는커녕, 그저 선처만을 바란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 사법연수원에서 수료식이 있었다...>


이 : 얼마전 사법연수원 수료식이 있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도 많고, 또 시민단체에 취직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힌 사람들도 있다고 하던데요?


오 :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것만으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부가 자동적으로 보장된다는 것이 점차 옛말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최근 두드러진 양상은 사법시험 합격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 탓인데, 이번에 연수원을 수료한 33기는 처음으로 사법시험에서 1천명을 뽑았던 첫 세대입니다. 이번에 모두 966명이 졸업을 했는데, 이중에서 213명은 아직까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법무법인 등 기존 변호사 사무실에 취업한 77명외에 변호사로 단독 개업한 143명의 경우에도 전망이 불투명한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는 사법연수원 수료생 들 중에서 시민, 노동, 종교단체에서 일하게 된 사람이 12명이나 된다며 기사를 내보냈지만, 사실은 12명밖에 안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변호사들이 부와 명예가 함께 보장되는 송무를 통한 법조인 생활에서 벗어나, 좀 더 봉사하는 자세로 민중과 호흡하며 일자리를 찾는다면, 일자리는 많고도 많을텐데, 아직까지 변화된 환경과 달리 이전의 상태만을 고집한다면 누구도 답을 찾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 : 시민단체에서도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을 것이고, 또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 적지 않을텐데요?


오 : 물론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연수원을 나와도 취직하기 어려운 현실은 사법연수원을 판검사 임용을 위한 집단 고시촌으로 만들어 놓았고, 국민은 많은 비용을 부담해가면서 결국은 개인사업이나 하게 될 예비법조인을 양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조인중에 많은 분들은 사법연수원을 두고 법조인을 양성하는 것은 변호사가 지닌 공익성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국민이 들을 때는 좀 우스운 소리처럼 들립니다. 저희처럼 인권운동에 전념하는 인권단체도 국가적 차원에서 공익적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인권단체를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기부금품 모집법을 위반했다고 처벌하겠다는 공문이나 보내지 않으면 고마울 정도입니다.


이 : 공익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법연수원을 지금처럼 운영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인데, 다른 문제는 없나요?


오 : 돈이야 그렇다쳐도 더 큰 문제는 연수원이 무슨 고시촌처럼 변한 것입니다. 취직은 안되고, 그냥 변호사로 개업하는 것은 두려우니 거의 모든 연수생들이 판.검사가 되려고 매달리는 상황인데, 판.검사 임용은 철저하게 연수원 성적으로만 뽑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성적순으로만 정리되니,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최소한의 독서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주에는 어떤 이야기를 준비해 오실 것인지요?


오 : 역시 변호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볼 생각입니다. 다음주에는 추악한 법조비리 백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격증과 소위 전문성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변호사들의 문제점과 법조비리에 대한 대한변협과 검찰, 법원의 대응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