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벌금 247만원과 바꾼 목숨(경향잡지 2002년 2월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0 18:01
조회
489

벌금 247만 원과 바꾼 목숨


   이런저런 일로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물론 반드시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검찰에서는 ‘형집행장’이란 것을 발부하고, 구치소 노역장에 유치되어 보통 하루에 2, 3만 원쯤 쳐주는 강제노역을 벌금 액수만큼 해야 한다.
울산에서 굴지의 자동차 회사를 다니다가 실직한 뒤, 가족들과 함께 살아보겠다고 주차장 관리든 뭐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구숭우 씨는 지난해 6월 음주운전 때문에 벌금 247만 원을 선고받았다. 벌금을 내야 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에서 당장 247만 원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다. 벌금 납부를 차일피일 미루던 어느 날 경찰들이 집을 찾아왔다. 벌금을 내지 않았으니, 구치소에 들어가서 강제노역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벌금을 내지 못해서 감옥에 갇히고, 강제노역을 해야 하는 심정은 처참했으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부인을 안심시키고, 일단 구치소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노역을 하면서 돈을 갈음하자는 생각이었다. 247만 원이면 하루 일당 3만 원씩 꼬박 82일을 갇혀서 노역을 해야 하는 액수이다.
이렇게 울산구치소에 구금된 구숭우 씨는 갇힌 지 만 이틀도 되지 않아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구씨가 갑자기 숨졌으니, 도대체 왜 죽었는지 이유나 알아야겠다는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울산에 내려가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외상성 쇼크사’, 곧 누군가 때려서 죽인 것임을 밝혀냈다.
도대체 벌건 대낮에 국가가 운영하는 구금시설에서 사람을 때려죽이는 게 가능한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가 이 정도로 인권 후진국이고, 감옥이란 곳이 이렇게까지 인권의 사각지대인지를 확인하는 참담한 결과였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일단 수사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이제 겨우 마흔을 넘긴 구숭우 씨는 부인과 초등학생 딸만 남겨놓고 그렇게 숨져갔다. 구씨 죽음을 계기로 벌금을 내지 못해서 구치소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하는 이른바 ‘노역장 유치제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계기를 갖게 되었다.
벌금을 갈음하는 일당도 사람에 따라 벌금액수도 천차만별이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구씨처럼 ‘별것 아닌’ 경우에 일당은 정확히 3만 원씩이지만 주가조작으로 억대의 벌금을 선고받은 경우에는 일당을 천만 원씩 쳐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검찰의 징수 사무규칙에는 벌금 미납자들을 위한 여러 가지 안전장치도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가장이어서 자신이 아니면 가족의 생계를 맡을 사람이 없거나, 장애인인 경우, 또는 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인 경우, 또는 딱히 어려운 경우에는 벌금을 나중에 내겠다고 벌금납부 유예신청을 낼 수도 있고, 벌금을 나누어 내는 분할납부제도도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금 ‘알게 되었다.’고 표현한 것처럼 인권운동을 하는 우리도 몰랐던 사안인 만큼 구숭우 씨나, 한 해 1만 명이나 되는, 벌금 미납을 이유로 노역장에 유치되는 사람들이 이런 조항을 알았을 리 만무하다. 구숭우 씨만 하더라도 가장이었고, 한 달에 22만 7천 원을 지급받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 만약 구씨가 이런 제도를 알고 있었거나 검찰이 알려주었더라면 당연히 나중에 벌금을 내겠다고 하거나, 나눠서라도 내겠다고 했을 것이다. 알고 있었다면, 알려주었다면 죽어서야 감옥에서 나오는 참극은 막을 수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출범하고, 인권이 무슨 유행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권은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똑같은 무게의 소중한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구체적인 삶에서 실현시키자는 것인데, 막상 현실로 드러난 우리네 삶, 우리의 인권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깡패들의 비아냥거림에 대해 아무런 반박도 못할 만큼 비뚤어져 있다.
“벌금 미납자의 경우에 사정이 어려우면 나눠 내거나 나중에 낼 수도 있다.”는 내용의 인권을 보호할 제도를 마련해 놓고도 이를 꼭꼭 숨겨놓고 알려주지 않는 검찰의 태도는,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징벌적 효과와 국고만을 생각한 매우 반인권적인 작태이다. 또한 벌금 미납자들이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이란 점을 생각할 때, 이는 ‘작태’로밖에는 표현되지 않는 비열한 짓이다.
인권이 제대로 숨쉬려면, 인권의 수준이 어떠한지를 가늠하려면, 그 사회의 약자, 소수자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답을 찾을 수 있다.
이제라도 벌금도 내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우리 나라가 살 만한 나라인지, 또 우리의 인권현실이 나아졌는지.


오창익 루가/인권실천 시민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