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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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변호사의 단식투쟁(경향잡지, 2001.8월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0 17:57
조회
351

김 변호사의 단식투쟁


   7월 11일 늦은 저녁, 요란한 신호음과 함께 들어온 사무실 팩스 용지에는 굵은 글씨로 “김칠준 변호사, 국회 앞 무기한 단식농성 돌입”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변호사가 단식농성이라, 그것도 무기한으로?’
법무법인 다산 대표변호사,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 본부장, 다산인권센터 운영위원….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김 변호사의 직함들입니다. 김 변호사는 흔히 말하는 인권변호사입니다. 김 변호사는 수원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드러내지 않고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렇더라도 노상에서 단식을 한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여럿이서 하루쯤 하는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면 또 모르지만, 혼자 기한도 없이 길거리에서 단식을 시작한다는 소식은 변호사들의 분주한 생활과 평소 대응방식으로 미뤄볼 때 뜻밖이었습니다.
김 변호사가 그토록 단호한 의지로 단식을 하는 이유는 레미콘 기사들 때문입니다. 경찰이 여의도에서 차량을 세워놓고 농성을 하던 레미콘 기사들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도끼, 해머, 심지어 소화기까지 동원해서 차량을 부수고, 강제로 기사들을 연행했다는 뉴스 보도를 보고 우리도 레미콘 업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 변호사가 스스로 작성한 ‘호소문’에서 알려준 그간의 사정은 정말이지 멀쩡한 변호사가 무기한 단식농성이라는 극한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노조창립 초기부터 레미콘 기사들을 도왔습니다. 노조를 설립하고, 노조 신고필증도 받았고,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조차 적법한 노조임을 인정했지만, 레미콘 업체들은 교섭에 응하기는커녕, 꿈쩍도 안하고 오히려 노조를 무력화하려고 외부용 차를 쓰며 대체근로를 했고, 용역깡패를 동원하는 등 부당 노동행위를 자행했습니다. 정부는 언제나 불법파업을 엄단한다면서 부당 노동행위를 한 사용자들도 함께 처벌한다지만, 실제로 집행된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레미콘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동운동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 드신 분들입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건설역군으로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저 일만 해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노조를 만든 이유도 단순한 것입니다. 건설경기가 나빠지자, 레미콘 업체들은 그 부담을 레미콘 기사들에게 떠넘겼고, 건설업계의 불공정한 관행은 레미콘 기사들에게는 생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의 악순환을 낳았습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부실공사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를 만든 것은 레미콘 기사들이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법적 토대이며, 건설업계의 부당한 관행을 고칠 수 있는 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용주들의 대답은 해고통지서 한 장 달랑 보내온 것뿐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해고철회, 노조인정이라는 단순한 요구를 갖고 여의도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여론의 무관심 속에 훌쩍 100일이란 시간이 지나가 버렸고, 여의도에서 노숙한 결과 얻은 것은 집행부의 구속과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이었습니다.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사용자가 불법을 자행하고, 노동자들이 이를 시정하라고 요구하는 단순한 싸움에 공권력이 개입하고,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레미콘 차량까지 부숴놓자, 레미콘 노동자들은 분노를 넘어 이제는 한국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허탈해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노동자들이 치르는 희생이 너무 크기에 차라리 노조를 포기하라고 권유하고 싶은 심경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해도, 또한 무전유죄 유전무죄라고 해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것이었습니다. 약자들이 최소한의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두들겨 맞고 얻어터지는 상황을 지켜본 김 변호사는 무언가를 결심해야 했을 것입니다. 변호사로서 무력감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다음은 김 변호사가 직접 쓴 호소문의 일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변호사가 법적으로 도울 일도 많은데 왜 굳이 거리에 서야 하는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부당 노동행위는 물론 불량 레미콘 사용과 환경오염에 대해 고발해 보았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오직 레미콘 기사들과 가족들의 생존만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루빨리 가족들의 생존을 지키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변호사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렇게 거리에 나서서 호소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레미콘 업체들이 노조를 인정하는 그날까지 이 농성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기업과 근로자가 서로를 인정할 때만이 갈등과 타협의 줄다리기를 겪으면서도 끝내 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저의 믿음을 실현할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물론 뜻있는 시민들이 이 싸움을 지지하고 함께할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끝으로 다시 한번 간절한 마음으로 레미콘 업체들이 노조와 협상에 응해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변호사는 법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누구보다 법을 통한 문제의 해결에 밝은 사람이고, 또 해결할 능력도 있는 변호사입니다. 그 변호사가 지금 여의도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일 때문에, 우리가 애써 무관심해 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 때문에, 그리고 그들에게 아무런 실질적 도움도 되지 못하는 꽉 막힌 현실 때문에 김칠준 변호사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홀로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참으로 서글픈 꽉 막힌 현실입니다. 


오창익 루가/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