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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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적인 인권의 역사의 역사가 주는 교훈] - 커스틴 셀라스의 '인권, 그 위선의 역사'를 읽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19 17:15
조회
675
2003년 당대비평 가을호에 썼던 원고입니다.

위선적인 인권의 역사가 주는 교훈


- 커스틴 셀라스의 [인권, 그 위선의 역사]를 읽고 -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www.hrights.or.kr


대통령마저도 ‘못해먹겠다’고 하는 판이지만, 요즘 인권운동은 정말로 ‘못해먹겠다’. 요즘처럼 되는 일도 없고, 힘도 쭉쭉 빠지는 적은 이전엔 거의 없었다.


국권(國權)과 인권의 충돌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민주당 경선 과정이나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시민들의 민주적 신념이 분출되고, 마침내 ‘바보’를 뽑고 난 환희가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인데, 지금은 ‘후회’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몰린 것 같다.


사람들은 인권운동가인 내게 묻는다. 노무현정권이 출범하고 난 다음에 그래도 나아진 것이 있지 않냐는 것인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더란 말처럼 변화에 대한 기대는 요란했지만, 막상 변한 것은 없었다. 최소한 인권분야에 관한 한 이전 정권과의 차별성도 보이지 않았고, 중요한 진전 같은 것은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최근 다시 붉거진 한총련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총련 합법화 추진은 보태거나 뺄 것도 없이 우리 헌법 19조의 ‘양심의 자유’, 21조의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라는 헌법적 기준에 따라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고쳐보자는 노력에 불과한 것이다. 과거에 크게 잘못된 것을 고치는 의미는 있지만, 정상과 상식을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진보’랄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 기간 중에 공약하였고, 취임 직후에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함으로써 의지를 표명한 한총련 합법화 문제는 여지껏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기껏해야 스스로 자수를 해서 반성하면 구속하지는 않겠다며 예전의 입장을 되풀이하다가, 최근 미군시설에 대한 한총련 학생들의 시위사태 이후에는 엄정처벌이니, 전원 구속이니 하는 파쇼적 망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민변 부회장 출신의 법무부장관은 한총련 학생들의 비폭력 퍼포먼스에 대해 한총련이 명백한 이적단체라며 “한총련의 행동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며 “강경대처 방침을 세우고 사표를 낼 각오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총련 문제만이 아니라, 노무현정권 출범 이후 아무런 (만약 어떤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공개적으로 토론을 했으면 한다) 진전도 없는 인권분야를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 개인이나 현 집권세력에 대해 너무 낭만적인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자책이 들었다.


법무부가 준법서약제를 폐지한다고 발표하자,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앞다퉈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양심수들이 거부로 인해 실효성도 전혀 없고, 준법서약없이도 양심수들이 석방되고 있고, 지난 4월말의 사면에서는 공안당국이 아예 준법서약을 요구하지도 않았던 ‘현실’이나, 검.경의 일선이 모든 형사사건 피의자들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준법서약 받는 ‘현실’, 준법서약제 때문에 고향에도 들어오지 못하는 해외 민주화운동가들의 ‘현실’을 생각할 때, 법무부의 준법서약제 폐기 운운은 인권의 진전과는 상관도 없는 사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더구나 이런 일들이 민변 출신 대통령, 민변 출신 법무부장관, 민변 출신 국정원장, 민변 출신 민정수석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한다.


이렇게 힘이 쭉쭉 빠지는 상황에서 뭔가 기댈 구석이 없나 해서, 오랜만에 서점에 들렸다가 잡게 된 책이 [인권, 그 위선의 역사]였다.


영국 런던에서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커스틴 셀라스는 “신은 인간에게 인권을 주지 않았다”는 역설적인 머리말을 통해 인권이 문명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파시즘의 발호를 지켜보면서 “인권의 대의명분을 널리 알리는 것만이 평화를 회복하고, 안정을 파괴하는 정권의 출현을 막는 길이라고 믿게 되었”고 이로써 “인간존엄이 세계평화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으로 등장”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파시즘과 전쟁 때문에 인류가 반인권적 상황에 노출되고, 이를 통한 인권의 피해자들이 양산되면서, 인권사상에 근거한 인권운동이 활성화되고 마침내 1948년 유엔 제 3차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되는데 이르게 된다. 세계인권선언은 사유재산권 문제 때문에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들이나 또 다른 말도 안되는 이유 때문에 남아공 등 모두 8개국이 기권함으로써 유엔 가입국 모두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특정 국가의 틀을 넘어서 국제적 규모에서 진행된 ‘선언’으로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을 보편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인권은 저자의 지적대로 냉전시대의 정치상황에 따라 성쇠를 거듭하고, 오히려 인권을 앞세워 활용한 이들(주로 국가)에게 엄청난 정치적, 도덕적 이익을 챙기게 해주었다.


저자는 인권이 인민에게 복무하기는커녕 국권을 더욱 강화하고, 자국에서 또는 다른 나라에서까지 인권탄압행위를 저지르고 인권을 무시하는 국가권력의 행태에서 대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권이 다른 정책과 마찬가지로 ‘정치’라는 토대에 발을 딛고 있으며 똑같은 규칙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이는 실리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인권의 역사는 J.F. 케네디의 연설을 비틀어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정부는 (언제나) ‘인권을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인권이 정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주객이 전도된 ‘위선의 역사’였다.


이 책은 사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들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인권 현장을 뛰는 인권운동가에게는 좋은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필자가 일하는 단체는 “인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모토를 갖고 있다. 야만스런 폭력이 판치는 군사독재정권시절에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세상을 바꾸기 위함이었고, 다들 떠나 텅빈 것 같은 운동판에 남아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운동가로 살아남는 것만도 훌륭한 성과’라며 자평하며 버티는 이유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결코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며, 하워드 진의 표현대로 ‘절망할 권리’마저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지만, 실상 인권운동의 성과가 어떻게 축적되고 있는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복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썩 자신이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어떤 사안에 대해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거나, 성명을 내거나 언론을 통해 인권탄압 사례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집회나 시위를 벌이고, 소송을 거는 따위의 일들을 통해 인권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수단들은 파쇼적 폭압이 기승을 떨칠 때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었지만, 이런 싸움들이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하는 측면과 함께 지금의 체제를 오히려 강화하는 측면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민변 출신의 인권변호사들이 청와대를 비롯한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최소한의 인권의 기준마저 외면하는 모습을 보면서 착잡함을 느꼈던 것처럼 대법관 중에 진보적인 인사 한둘이 끼어드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오히려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 재판’이라는 대전제를 충족시키는 바꿈이기보다는 대통령의 법원 통제와 사법부 기득권 세력을 공고화시키는 역할도 할 것이라는 따위의 고민이 매번 들게 된다.


무죄추정을 받아야 하는 미결구금자의 경우에 재판에 나가거나 조사를 받으러 나갈 때, 수의(囚衣)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있었다. 그 다음부터 모든 미결구금자는 수의가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실제 형사법정에서 평상복을 입고 재판을 받는 사람은 정치인이나 기업인 출신 등 유력인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재판부에 건방지게 보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민중을 위해 기껏 바로잡은 인권투쟁의 성과를 민중이 향유하기는커녕, 돈을 주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도 있고, 지금껏 기득권을 누려온 일부 인사들만이 누리고 있는 현실은 자체로 아이러니이다.


여러 해 동안 꾸준히 준비하고 치열하게 싸운 끝에 좋은 판례를 하나 만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귀결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세계인권선언으로 인해, 인권적 가치는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것으로 다시금 선포되었지만, 그래서 인권사상이나 인권의 규준이 세계화되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화는 ‘인권의 세계화’가 아니라 18세기, 19세기 부르조아들이 재산권과 계약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투쟁하던 시기를 연상케하는 ‘자본의 세계화’이고, 곧 ‘빈곤의 세계화’이다.


더욱 큰 모순은 양차 대전이라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끔찍한 자기 파괴행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세계인권선언이 태어난 이후에도 핵무기의 공포는 여전하고, 오로지 미국에 의해서만 주도되는 군비확장과 또한 오로지 미국에 의해서만 주도되는 전쟁으로 많은 민중들의 목숨을 잃거나 다치고, 수천만명의 민중들이 최소한의 생존의 조건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미국이 일으킨 두차례의 전쟁,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침략전쟁이 다른 무엇에 우선해서 ‘인권’을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치러졌다는 점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인권을 위해 벌이는 전쟁이라니!


저자는 꼼꼼한 저널리스트답게 방대한 자료에 근거해 인권이 왜곡되어 온 국제정치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정 과정에서 보여준 앨리너 루스벨트가 보여준 인권의 대모 겸 냉전의 투사로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습에서부터, 정치적 흥정으로 뒤범벅이 된 뉘른베르크와 도쿄에서의 전범 재판,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영국 외무성이 채워준 두둑한 지갑을 들고 ‘항상 정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만 했던 죄악상, 모처럼 집권에 성공한 카터의 민주당 정권이 ‘선거운동 기간 중에 그야말로 어쩌다 우연히 발견한’ 인권이슈를 내세워 인권외교를 벌이되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과 냉전에서의 승리만을 위해 교묘하게 활용하는 모습, 그러나 정작 미국 내부는 흑인들이나 소수민족에 대해 가차없이 반인권적인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모습 등을 통해 확인한 인권의 역사는 숭고한 도덕적 가치와는 너무도 먼 거리에 있는 추악한 모습이었다.


미국 등 열강에 의해 주도되는 국제적 인권캠페인이 보다 근원적이며 본질적인 인권범죄를 감추거나, 당사국에 개입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 정도의 용도로만 쓰이다가 곧바로 쓸모가 다하면 폐기되어 버리는 현실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인권에 열광하는 대통령과 수상, 자본가와 구호단체, 외국 특파원과 종군사진기자, 팝스타와 모델 모두가 불의의 현장으로 구름같이 몰려가지만,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곳으로 옮아가면 희생자들은 다시 한번 어둠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희생자들은 인권 캠페인의 목적을 이루는데 필요하다면 희생시키도 좋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저자가 지적하는 그렇게 잊혀져버린 희생자들은 러시아 유대인, 니카라과 인디언, 티베트 수녀, 에티오피아 농부, 폴란드 노동조합, 코소보의 성폭행 피해자, 중국의 반체제인사, 이라크 내 쿠르드족, 르완다 투치족 난민... 등 끝이 없다. 최근에는 이 목록에 이라크전에서 양팔을 잃은 알리와 같은 죄없는 어린들의 명단까지 추가되고 있다.


인권이 보편성과 도덕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에 상당히 가치있는 ‘상품’인 것은 사실이다. 한국도 전체 인구의 1/3이 학살되는 상황에도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동티모르에 평화유지군까지 보내 건국작업을 돕고 있다. 동티모르에 대해 정부와 민간단체, 언론까지 나서 도움을 손길을 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라크 전쟁후에는 미국의 침략전쟁에 대해 서둘러 파병하지 않는다고 정부를 협박했던 수구언론까지 나서서 이라크 민중을 돕자는 구호활동을 전개하였다. 전쟁을 다그치던 그 입으로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민중들을 돕자고 목소리를 높이다니!


이 책이 인권운동가에게 좋은 각성의 계기가 되었던 것은, 인권이란 숭고한 가치가 현실 권력에 의해 끊임없이 왜곡되고, 무시되었던 2차 대전 이후의 역사를 통해 지금의 왜곡과 인권탄압을 견뎌낼 지혜를 주기 때문이다. 그 지혜란 것은 끊임없는 권력의 도발에 항상심을 갖고 긴장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끔 권력이 인권이란 말을 통해 미소를 보내도 그렇게까지 환영하거나 흥분할 일이 못된다는 것이었다. 현대국가, 특히 복지개념이 듬뚝 포함된 수정자본주의국가가 레닌이 지적한 것처럼 ‘계급지배(만)을 위한 기관’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국가가 본질적으로 계급 중립적(인권친화적이라 불러도 좋다)이지도 않으며, 현실적으로 끊임없이 (인권 소수자들은 외면하고)부르조아 중심의 지배를 수행해왔다는 평범한 사회과학의 기초를 확인한 성과일 것이다.


저자의 마지막 말을 들어보자.


오늘날 인권은 더 이상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인권은 현대 정치담론의 공용어가 되었다. 9.11의 여파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미래를 사로잡을 이슈가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반테러리즘이 가장 큰 화두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인권만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도덕적 호소력을 지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더 강력한 대안이 나타나지 않는 한, 인권은 당분간 서방의 의제를 주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이어갈 것이다.


여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의 인권의 역사도 현대 정치담론의 공용어로서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인권의 이름으로 학살을 자행하고, 인권의 이름으로 침략전쟁을 벌이고, 인권의 이름으로 또 다른 못된 짓을 벌이고...


인권운동세력이 고스란히 진보운동세력으로 분류될 수 있을만큼, 한국에서의 인권이 현실정치와 상당한 거리에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역설적인 위안을 주고 있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인권운동가는 ‘간첩죄로 17년을 복역하였고, 아무런 공직에도 취임한 적이 없었던(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인사이고, 가장 대표적인 인권단체들도 스스로 ‘진보적 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랜 기간 파쇼적 폭압을 겪었던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인권이 운동권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있고, 서방의 열강들이 보여주었던 왜곡사례는 매우 드물게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시절도 얼마남지 않았다. 김대중정부에 이어 노무현정권도 인권과 현실 정치의 끈끈한 섞임과 인권에 대한 왜곡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말로는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되, 공무원노조도 안되고, 파업에 대해서는 연일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치고, 감옥에는 다시 학생과 노동자들로 채워지는 상황, 생계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가족들이 줄을 잇는데도 정부는 재벌과 초국적 자본의 기업할 권리,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제약할 권리, 자유롭게 장시간 노동에 저임금을 주며 비정규직으로 혹사시켜도 될 권리만을 보장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정책이나 행정은 전혀 인권적이지 않으면서, 입만 열면 ‘인권’을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본질을 호도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앞으로는 빈도가 더욱 잦아질 것이다.


당장 노무현대통령은 “나도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나도 노동운동 해봤다”면서 5.18 묘역에서 구호 몇 번 외친 일이나, 한총련 학생들이 미군기지에서 벌인 비폭력 퍼포먼스에 대해 ‘난동’이라고 규정하고 흥분을 감추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흥분은 당장 대규모 검거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닌 대통령이 나서서 헌법 19조와 21조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짓밟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식의 거짓 인권이 난무할수록 우리 인권운동 진영에는 ‘진짜 인권’과 ‘가짜 인권’을 가려내면서, 인권의 기준을 더욱 널리 알리는 책무가 주어지게 될 것이다. 무엇이 ‘진짜 인권’인지는 보다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일단은 ‘UN이 정한 국제기준 만큼이라도’ ‘세계인권선언만큼이라도’가 될 것이다.


어차피 진정한 인권의 역사는 국제정치 무대에서의 왜곡이 아니라, 무수한 인권피해자, 인권당사자들이 처절한 투쟁을 통해 새로운(그러나 당연한) 인권의제를 제출하고, 이를 국가로부터 ‘승인’받는 과정이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주화, 인권투쟁의 역사도 그렇고, 인류가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위해 투쟁해 온 역사도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있다. 정권의 부침이나, 정치꾼들의 모략에 흔들림없이 당연한 권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싸워나가는 것, 세계인권선언이 보장하는 만큼이라도 안전한 사회를 위해 꾸준히 싸워나가는 것이 가장 정직한 답임을 다시금 새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