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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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위기와 기회(2004. 3. 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0:26
조회
427

경찰과 인권, 네 번째 이야기


경찰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여러 가지 변화가 한꺼번에 시작되고있는데, 경찰로서는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1. 인력증원


국방부는 2, 3년전부터 병력자원의 감소 때문에 더 이상 의경병력을 지원할 수 없다고 밝혀왔고, 이러한 국방부의 방침은 조만간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인력은 현재 총 140,600여명으로, 이중 61.8%인 90,600여명이 경찰관이며, 의경이 32,400여명, 전경이 18,100여명, 기타 5,600여명의 보조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경찰인력의 34.5%가 전. 의경 인력인데, 의경의 감축으로 인한 인력 공백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주 5일 근무제의 확대, 치안수요의 확대에 따라 인력증원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행자부장관은 3개년에 걸쳐 31,000여명의 경찰관을 증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직업경찰관이 9만명이 좀 넘는 현실인데, 3년이란 짧은 기간동안 전체 인력의 1/3이 정도가 증원된다는 것은 매우 비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인력증원은 1991년에도 있었다. 당시 노태우정권은 범죄와의 전쟁을 추진하면서 2만여명의 경찰관을 대폭 증원한 적이 있었다. 이때 경찰관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대거 경찰이 되었으며,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경찰 주변의 설명에 의하면 경찰관의 자질과 관련되어 여러 가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찰관 중에서는 이때 들어온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한다. 
이렇듯 가장 우려되는 것은 대폭 증원되는 경찰관들의 자질이다. 물론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매년 1만명씩 경찰관을 신규채용해도 경찰관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은 많겠지만, 지금처럼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통해 비교적 준비된 인력을 뽑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경찰인력은 의경에서 직업 경찰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의무복무를 위해 군에 입대한 자원을 임의적으로 뽑아서 치안 일선을 담당하게 하였고, 이들이 집회. 시위 등의 경비 업무와 골목길 안전 등의 생활안전(방범)에 투입되면서 치안의 질이 떨어지고, 의경들도 비인간적인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격무에 시달려야 하고, 구타 등의 가혹행위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의 개선을 위해서도 반드시 의경 등의 경찰인력은 훈련되고 준비된, 그리고 상대적으로 책임감도 높고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안전한 직업 경찰관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3년 동안 3만명을 충원하는 것처럼 단기간에 대규모 인력을 충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방부와 행자부를 비롯한 정부부처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인력조정 문제를 보다 심도 깊게 논의해야 한다. 


또한 경찰의 입장에서는 인력이 증원되면 그만큼 힘도 더 생기고 자리도 더 생기게 되기 때문에 인력증원에 대해 상당한 집착을 보이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아직까지 경찰이 시민의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고, 민생치안은 늘 시국치안에 밀려야 하는 상황에서의 인력증원이 자칫하면 파쇼경찰의 전주곡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1. 수사권 독립


경찰에게 수사권 독립 또는 수사권의 합리적 배분은 숙원사업과 같은 것이다. 흔히 이 문제는 경찰과 검찰간의 밥그릇 싸움쯤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 
전체 사건의 93% 이상을 경찰이 담당하고 있는데, 경찰에게는 책임만 있고, 권한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모든 사건에서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하지만, 포천, 부천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검거실패의 책임은 온통 경찰의 몫이다. 
또한 시민의 입장에서도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난 다음에 다시 똑같은 조사를 검찰에서도 받아야 하는 이중조사의 부담이 있고, 검찰이 영장청구권,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에 대한 지휘권까지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전횡을 일삼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경찰수사권 독립은 검찰이 지니고 있는 권력의 분권이라는 측면, 경찰의 수사, 검찰은 공소유지라는 형사사법정책의 기본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경찰수사권 독립 문제를 그저 검. 경간의 밥그릇 다툼으로만 생각하여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시민사회, 법학계, 언론계 등도 민주주의적 분권, 각 기관의 자기 자리 찾기, 시민의 편익 등의 이유 때문에 경찰수사권독립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법조인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도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노무현 정권은 경찰수사권 독립에 앞서 경찰이 스스로 혁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이를 통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회복할 때 수사권 독립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는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수사권독립이 민주화 과정에서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하여도 검찰이 불신받는 만큼, 경찰도 불신받는 상황에서는 여전히 요원한 경찰만의 숙원사업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찰수사권 독립 문제도 경찰에게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 피해자 권리 옹호기구로서의 면모를 과시해야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경찰의 위상도 변하고 있다. 또한 변해야 한다. 초기에는 질서가 강조되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우리처럼 불행한 역사 - 분단, 좌우대립, 전쟁, 권위주의시대 -를 거쳐오면서, 경찰에 요구되는 덕목은 오로지 질서유지 뿐이었다. 
1980년대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경찰에는 새롭게 인권적 요구가 제기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피의자의 권리로 대표되는 여러 가지 형사사법 절차상의 권리이다. 
우리 헌법이나 형사소송법도 피의자의 권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피의자의 권리가 강조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이 피의자에 비할 바 없이 우월한 지위를 점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피의자의 권리가 당연히 옹호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생각이 피해자에 미치면 조금 답답해지게 된다.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피의자(나중에 피고인, 수용자-재소자로 신원이 바뀌어 나가는)의 경우에는 범죄 가해자이고, 선량하지 않은 시민일 가능성이 높고,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피해자인 경우에는 말 그대로 범죄로 인하여 인명이나 재산상의 손해를 입은 사람이고, 선량한 시민일 가능성이 높고, 세금도 꼬박꼬박 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국가는 가해자인 피의자에 대해서는 형사사법절차에서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었고,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기는 하지만) 변호인을 자력으로 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국선변호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형이 확정되면 국민의 세금으로 구금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경비를 부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자인 경우에는 아무런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국가는 피해자들에 대해 아무런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고 있고, 또한 돈도 전혀 쓰지 않고 있다. 
이렇게 단순한 비교만 하고 말 것이 아니라, 범죄 피해자가 그 범죄 때문에 생산수단을 잃게 되는 경우나, 어린이, 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가 범죄 피해를 당하는 경우에는 그 딱함이 더하다. 범죄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으며, 범죄의 상처를 치유할 어떠한 안전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마디로 피해자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본질적으로 범죄 피해자를 위해 존재하고 있고, 또 그래야 하는 조직이다. 우선 경찰의 검거활동이 기본적으로 범죄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것이고, 또 법원 - 검찰 - 변호인 - 경찰 등의 기관이 형사사법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맡게 되는 역할을 볼 때, 피해자는 역시 경찰의 몫일 수밖에 없다. 법원은 그저 유무죄와 양형을 판단하면 그만이고, 검찰은 공소유지가 몫이고, 변호인은 가해자인 피의자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경찰은 기본적으로 피해자를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앞서 확인한 것처럼 피해자 문제는 그저 경제적 능력이 있는 가해자와 형사합의금을 받기 쉽게 검, 경과 법원이 처벌의 수위를 조정하는 것이 전부이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일부 경찰관들은 우리 사회가 피의자의 권리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경찰은 불만을 쏟아낼 자격조차 없다. 정작 피해자 문제에 대해 책무를 지고 있는 기관이 하고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푸념만 하는 것은 피의자의 권리를 옹호하기 쉽지 않은 현실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은 피해자 문제를 본질적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일단 공부부터 해야 하고, 법적, 제도적 개혁작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어린이,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범죄 피해를 당하게 될 경우에는 쉼터에서의 재활, 직업교육 등을 포함한 다각도의 서비스가 진행되어야 한다. 범죄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경우, 이에 대한 지원까지도 경찰이 자신의 숙제로 받아들이고 고민해야 한다. 

1. 경찰의 변화 


경찰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경찰청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민간자문기구인 경찰혁신위원회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의경인력의 공백에 따른 인력증원, 수사권 독립 등의 새로운 전환을 맞고 있으며, 지난해 국회에서 '지방분권 특별법'의 통과로 자치경찰제를 시행해야하는 중대한 변화의 국면을 맞고 있다. 
이런 경찰의 변화는 지금까지처럼 그저 '질서'만 강조하는 현재의 이념과 철학, 구조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임이 이미 확인되고 있다. 
경찰은 이제 단순히 질서를 넘어서고, 또한 피의자의 권리도 넘어서고, 유럽 선진국의 경우처럼 피해자의 인권옹호기관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는 철학의 문제이고, 또 이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인력을 배치하고, 인력을 운용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더 이상 경찰이 대통령등 정치권력에 휘둘려 시국치안에만 매몰된다면, 경찰의 미래는 없고, 경찰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경찰상의 구현, 국민 인권지킴이로서의 경찰상의 구현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경찰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