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물 빠지는 삼류 제복과 강신명 경찰청장 (경향신문, 2016.06.30)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5 12:47
조회
463

경찰은 제복으로 말한다. 지친 퇴근길에도, 약속시간에 늦어 속도를 붙여야 하는 바쁜 시간에도 경찰관이 불러 세우면 시민들은 군말 없이 차를 세운다. 제복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제복은 공권력의 상징이고, 또한 공복의 상징이다. 그 경찰 제복이 말썽이다.


경찰청은 6월1일부터 경찰관들의 제복을 싹 바꿨다. 한 달이 되었지만, 경비용역업체 직원인지, 경찰 관련 학과 학생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갑자기 바뀐 탓에 새로운 제복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다. 물론 이런 혼란이야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을 거다.


제복은 시민과 경찰의 약속이기 때문에 함부로 바꾸면 안된다. 꼭 바꿔야 할 중요한 까닭이 있어도 신중해야 한다. 경찰청은 무턱대고 바꾼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렇게 볼 여지도 있다. 제복 교체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있었다. 내부 품평회를 열고 세 가지 후보 안을 놓고 선호도 조사도 했다. 경찰관 1651명이 참여한 선호도 조사에서 A안은 695명(42.1%), B안은 750명(45.4%)의 지지를 받았고, C안은 196명(11.9%)의 지지를 얻었다. 이럴 경우, 경찰청의 선택은 A, B 둘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실제 결정은 엉뚱했다. 11.9%로 가장 낮은 선호도를 보인, 비호감 제품을 새로운 제복으로 결정했다. 무슨 까닭일까.


뭔가 비리가 있는 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청은 설명회를 열었다. “여론조사에서 많은 득표를 얻은 디자인은 과거 사용한 색상이거나, 내근에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어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납득하기 어려웠다. 과거 사용했던 색상이나 내근에 부적절한 제품을 왜 후보에 올렸을까. 90%에 가까운 경찰관들의 안목이 그렇게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품평회와 여론조사는 그저 요식행위뿐이었을까.


진짜 심각한 문제는 새로운 제복이 일선에 보급된 다음에 일어났다. 물 빠짐이 심하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경찰관은 새 제복을 세탁해보니 물 빠짐이 심하다며 다른 옷과 함께 세탁하면 안된다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조심하라는 거다. 경찰청은 또 설명에 나섰다. 글을 올린 경찰관을 색출해 그 경찰관의 실수로 물 빠짐 현상이 생겼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평소 빨래도 하지 않던 사람이 부인이 해외여행을 가서 빨래를 했는데, 세제를 133배나 더 넣어서 물 빠짐 현상이 생겼다는 거다. 물 90ℓ에 세제 60㎖를 넣어야 하는데, 이 경찰관은 물 4.5ℓ에 세제 400㎖를 부었다는 거다. 물은 20배나 적게, 세제는 6.7배나 많이 넣었다는 거다. 133이란 숫자는 20(배나 적은 물)에다 6.7(배나 많은 세제)을 곱해서 얻은 숫자다. 믿기 어렵지만, 국가기관의 공식 설명이었다. 요즘 세탁기는 알아서 세탁을 해준다. 그런데 평소 빨래도 않던 사람이 물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적게, 세제는 상상 그 이상으로 너무 많이 넣었단다. 아무튼 133배!


새 제복의 물 빠짐을 조심하라던 경찰관은 이렇게 본인 실수를 자인하고 SNS에 올린 글도 삭제했다. 그 효과는 확실했다. 경찰관들은 새로운 제복에 대해 모두 입을 닫아 버렸다. 하지만 새로운 경찰 제복은 세제 없이 그저 찬물에만 담가도 물이 빠진다. 원단이 좋지 않은 데다 염색이 불량하기 때문이다. 물 빠짐만이 아니라, 옷감이 좋지 않아 보풀이 일어나고, 폴리 100%라 착용감도 나쁘지만 볼멘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경찰 내부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경찰관에게 제복은 명예와 품위의 상징이지만, 표현의 자유조차 봉쇄하는 비굴함의 상징이 되었다.


경찰 제복을 왜 바꿨을까. 역시 적절한 설명은 없다. 지난해가 광복 70주년이었다거나, 바꾼 지 10년 되어 바꾼다는 뻔한 이야기뿐이다. 새로 제복을 바꾸면 수백억원의 혈세가 들어간다. 당장 하복 교체에만 약 110억원이 들어갔다. 시민이 새로운 제복을 바란 것도 아니고, 일선 경찰관들의 요구도 없었다. 더 희한한 건 미리 예산도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제복 교체 사업을 강행했다는 거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는 건 강신명 경찰청장의 고집 때문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새로운 제복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치적이 없었으니 눈에 확 띄는 새로운 변화를 과시하기 위해 만만해 보이는 제복을 골랐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례적으로 서둘렀고, 고집을 부렸다. 경찰조직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경찰청장의 의중’이다. 시민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경찰이란 조직이 원래 좀 그렇다. 청장이 마음먹으면 예정에 없던 일도 현실이 되고, 시민이나 경찰관의 여망 따위는 단박에 뒤집어 버릴 수 있다. 독재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독재의 폐해는 언제나 심각하다. 세제를 133배나 더 넣지 않도록 꼼꼼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건 그렇다 쳐도, 수백억원의 혈세 낭비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임기가 달포 남은 사람이다. 여럿이 지적하듯 경찰청장 임기를 채웠다는 것 말고 경찰 발전을 위한 기여라곤 눈곱만큼도 없던 사람이 자기 돈도 아닌 국민의 혈세를 낭비해가며 이런 분란을 일으키는지 모르겠다.


하긴, 고향이 저쪽이어서 경찰청장을 시킬 때부터 이런 폐해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자질이나 인품, 능력이 아니라, 오로지 고향을 기준으로 인사를 하면 책임을 맡은 사람은 인사권자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만 할 뿐이다. 주권자인 시민이나 자기가 챙겨야 할 직원들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살인적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해친 책임만 물었어도 진작 물러났어야 할 사람이었다. 경찰대학 출신의 첫 청장이라지만, 수사권 조정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장신중 경찰인권센터장의 말처럼, “대통령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경찰조직이 망가지든 말든 오직 자신의
입신양명밖에 생각 안 하는 그런 경찰 수뇌부의 생얼”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