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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망언’ 자유한국당은 전두환의 길을 따르나 (경향신문, 2019.02.2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2-22 16:30
조회
791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언동, 근거 없는 모략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쏟아내는 섬뜩한 말조차 매번 반복하는 통과의례라 여길 수도 있다. 집권을 목표로 서로 겨루는 사람들이니 정당 사이의 다툼과 간극은 일상이라 해도 좋다. 서로 다른 의견을 빗대면서 공동체를 발전시킬 지혜를 구할 수도 있고, 갈등 자체가 민주주의의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막말을 쏟아내더라도, 아무리 정쟁을 일삼는 사람들이라도 결코 넘지 않아야 할 선같은 게 있다. 그런 점에서 5·18민주화운동은 일종의 성역이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요구가 무참히 짓밟혔고, 죄 없는 시민들이 잔혹하게 학살되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에 이어 군인들만의 세상을 계속 이어가고픈 전두환·노태우 일당의 반국민·반국가 범죄가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김진태·김순례·이종명 등이 뭐라 핑계를 대든 그들은 5·18의 참담한 고통을 송두리째 모욕했다.


여태까지는 육사 출신 지만원이 그런 일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그저 개인에 불과한 지만원과 국회의원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대통령의 거수기 역할이나 하던 국회가 민의의 전당으로서 나름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민주화투쟁의 성과였다. 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화투쟁 등 끊임없는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이 맺은 결실이었다. 그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주최한 행사에서 5·18을 모욕하는 말이 쏟아진 것이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시민들의 희생과 고통, 그리고 심지어 죽음까지 모욕했다.


한국당 지도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죄송하다면서도 출당과 국회의원 제명에 대해서는 남의 당 일이니 간여하지 말라거나, 유감스럽다면서도 5·18 진상조사위원회 위원 두 명을 그대로 추천하겠다고 몽니를 부리는 것도 비슷했다. 형식적인 요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후보들을 추천해놓고는 청와대와 기싸움을 벌이겠단다. 원래 그 자리는 김진태의 추천으로 지만원을 앉히려던 곳이었다.


한국당은 전두환이 만든 민주정의당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5·18 문제가 거추장스럽고 또 부담스러울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당 스스로도 거듭 확인하듯, 1990년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이 진짜 원조다. 민주자유당이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한국당의 뿌리는 전두환·노태우의 민주정의당만이 아니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을 학살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 학살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함께 만든 정당인 셈이다.


얼마 전 당사에 걸린 부친 사진을 떼어달라고 했던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의 말처럼, 한국당에서 민주투사 김영삼의 족적은 찾아볼 수 없다. 김영삼은 누구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던 1983년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목숨을 건 단식을 시작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저항은 23일이나 이어졌다. 예전에 ‘상도동계’라 불렸던 사람들이 여전히 현역 정치인으로 뛰고 있지만, 농성장에 잠깐 앉아 있는 것조차 ‘릴레이 단식 농성’이라며 ‘단식’이란 말만 빌려올 뿐, 민주주의 진전을 위한 김영삼식의 노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두환·노태우를 감옥에 보내고, 5월18일을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하고 광주 망월동 묘역을 국립묘지로 지정하는 등의 노력은 모두 김영삼 정권 때의 일이었다. 5·18민주화운동을 쉽게 폄하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숭고한 역사로 자리매김한 것은 오히려 김대중보다는 김영삼의 공이 컸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국가의 중요한 이념으로 자리매김하고, 하나의 원칙으로 삼은 것도 김영삼이었다. 김영삼의 정치적 자산을 계승한다는 한국당은 김영삼이 세운 국가적 원칙을 간단하게 뒤집어버렸다.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고 헌법정신을 파괴하는 일조차 서슴지 않고 있다. 왜 한국당은 김영삼의 길이 아니라, 전두환의 길을 따르려는 걸까. 장점은 계승하고, 단점과 과오는 극복해야만 앞길이 열린다는 간단한 셈법조차 외면하고 왜 극단을 좇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태극기부대가 앞길을 열어줄 거라 기대하는 걸까.


10년 전 우리 곁을 떠난 바보 김수환은 생전에 광주 때문에 아파했다. 그에게 ‘5월 광주’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참극’이었다.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계엄군과 공수부대의 무력 진압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다”며 울분을 토했다. 광주의 5월은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면서 “광주에 내려가 시민들과 함께 피를 흘리며 싸웠더라면 그토록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무릇 사람의 마음은 대체로 이렇다. 실제로 추기경 김수환이 “광주로 내려가 몸으로라도 계엄군을 막”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고통스러웠다.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한 마음, 그 답답한 심경이 그랬다. 대개 5월 광주를 알게 된 사람들의 마음이 그랬다. 광주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자괴감 같은 안타까움이었다. 굳이 거명하자면, 김진태·김순례·이종명, 그리고 김병준과 나경원까지 한국당 사람들이 건드린 것은 그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번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가 사람이고자 한다면, 광주 학살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그리고 한국당에 분명하게 요구한다.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람들, 민주공화국의 기본이념조차 부정하는 사람들이 다시는 국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당은 국민에게 사죄하고 세 명의 국회의원을 제명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있어야 할 까닭은 전혀 없다. 국회 스스로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직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국민적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