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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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분실에 어린이도서관을(월간 [말] 2007년 7월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51
조회
253
보안분실에 어린이 도서관을
<월간말>창을 닫으며

오창익 /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서울경찰청의 옥인동, 장안동 보안분실. 각각 방첩, 안보 위해사범을 담당하고 있다. 일없이 그저 경찰청의 재산보존 차원에서 건물만 지키고 있던 이곳이 최근 활기를 띠고 있다. 보안사건에서 잇단 ‘개가’를 올린 탓이다. 
  서울경찰청 장안동 보안분실은 연초에 전교조 교사 2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북한관련 자료를 인터넷 공간에 올린 것이 혐의의 전부다. 현존하는 구체적이고도 명백한 위험도 없고,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염려도 없었는데, 소환에 불응했다고 체포하였다. 
   
  보안요원들의 지루한 일상이 거듭되던 옥인동 보안분실도 역시 올 들어 2명이나 구속하였다. 사진작가 이시우 씨와 한총련 출신 이재춘 씨. 몇 년씩 공을 들였다. 
  평화사진작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좇아 방대한 자료를 만들었지만, 이런 것들이 상식의 법정에서 유죄로 인정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재춘 씨가 새로 얻은 자취방에 이사 오기 전부터 집 앞에 있던 포장마차는 보안요원들이 운영하는 것이었다. 이걸 성실하다고 할까, 미욱하다고 해야 하나. 국민의 혈세로 봉급을 받는 경찰관들의 무려 7개월 넘는 포장마차 위장 영업. 얼마나 수사역량이 부족했으면, 아니 사실은 먹잇감을 일찌감치 찍어 놓고는 털어도 먼지조차 나지 않자, 이렇게 무지 애를 쓴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포장마차로 얻은 수익은 누구 차지가 되었을까. 별게 다 궁금하다.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도 만만치 않다. 인터넷 서점 주인이 이적표현물을 팔았다고 전격 구속하더니, 이제는 동네 헌책방까지 뒤져댄다. 문제 삼은 책들은 태백산맥, 해방전후사의 인식, 철학에세이, 동아일보 김학준 사장이 쓴 러시아혁명사 따위다. 
  <시민사회신문>에 실린 수사지휘 검사의 말도 웃긴다. “헌책방에 대해 확대 수사는 할 생각이 없고, 경찰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다. 경찰이 그동안 이런 수사를 안 해 경쟁적으로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엽기발랄 요지경이 따로 없다. 보안경찰이 밥그릇을 지키고자 혈안이 되어 무리한 수사를 일삼는데도, 이를 통제할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식이면 국가보안법을 폐지해도 형법이나 다른 법률로도 얼마든지 일을 벌일 수 있을 것이다. 휴대폰, 이메일, 인터넷 등 몇 년치 사용내역을 조회하고, 장기간 미행과 도청을 한다면, 멀쩡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 수 있다. 형사처벌이 가능한 법률조항은 무려 1만개가 넘는다.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에 넣겠다고 호기를 부리던 대통령의 시각은 어떨까. 노무현 대통령의 입 국정브리핑은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경찰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경찰이 변했다. 인권탄압의 최일선에서 비인간적인 고문 수사를 마다 않던 경찰, 독재정권의 바람막이 역할을 자처하며 시국치안에 열 올리던 경찰은 이제 없다.” ‘소가 웃을 일’이다. 
  시민적ㆍ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 국가권력의 폐해는 여전하지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너무 간단하다. 2005년 남영동 대공분실을 폐쇄한 것처럼 하면 된다. 보안분실은 어린이 도서관 등으로 재활용하고, 보안경찰은 민생치안의 현장으로 돌려보내면 그만이다. 대통령의 의지까지도 필요 없고, 경찰청장의 의지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2007년07월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