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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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의 집권전략(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07061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49
조회
211

필승의 집권 전략


 


모처럼 민주노동당 중앙당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구경도 할 겸 좀 일찍 도착해서 당사를 돌아봤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다니는데, 누구도 내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은 있었지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는 고사하고, 어떤 일로 왔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다.


 


당사 풍경도 칙칙하기만 했다. 신문, 유인물 따위는 아무 곳에 널브러져 있고, 흔한 화분도 하나 없었다. 사람냄새를 맡기 힘들었다. 당직자들은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지 오로지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면벽수도를 하는 사람들처럼 옆에 사람이 있든 없든, 누가 오든 말든 상관도 하지 않았다. 으씨, 나도 유권자인데.


 


사람이 찾아와도 아는 체도 하지 않는 태도는 어디서 온 것일까. 밤낮없는 일에 치인 걸까. 아니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면서 오만해진 탓일까. 아예 사람에 대한 감수성 자체가 없어 보였다.


당직자에게 당사에 왜 화분이 없냐고 물으니, 무슨 취임식 할 때마다 잔뜩 들어오기는 하는데, 그때마다 방치해서 다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답답했다.


 


대선을 앞둔 민주노동당의 포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이상하게도 집권보다는 3백만표니 5백만표니 하며,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득표에만 머무르고 있다.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정한 목표가 그렇다.


 


현실적 정치 지형에서 양자구도로 대선이 치러진다면, 3백만표는 고사하고 1백만표를 얻는 것도 선전이라는 분석도 있다. 판이 어떻게 짜여지는가에 따라 민주노동당에 대한 유권자의 선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념에 따른 계급지향적 투표보다는 여전히 지역에 묶이고, 사표방지 심리에 묶이는 조건을 생각하면 그렇게 틀린 분석이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스스로 목표를 낮춰 잡으며 움츠려들 이유는 없다. 당선이 목표가 아니라는 후보와 정당에 표를 줄만큼 유권자의 형편이 넉넉한지도 모르겠다.


 


책임있는 정당이 현실을 외면하고 ‘뻥’만 친다면, 그것이 오히려 당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것이라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집권하겠다는 포부가 다만 허풍에 그치지 않도록 구체적이고도 집요한 노력을 집중한다면 상황은 훨씬 달라지지 않을까.


문제는 앞으로 무슨 노력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있다. 주변에서 살펴본 인상이기는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대선을 위해 있는 힘을 다 쏟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당내에는 비현실적인 대선 승리보다, 현실적인 의미가 있는 총선에서의 의석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혹시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정파의 인사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까.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거듭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당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민주노동당이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일하는 자세부터 바꾸자. 자기들끼리 모여서 뻔한 이야기나 주고받는 회의는 지금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이고, 진정한 소통과 성찰을 위해 공부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말이 힘을 가지려면 말을 가다듬고, 말이 담고 있는 내용도 충실해야 한다. 회의만 하고, 누구도 읽지 않는 성명서나 내고, 운동판의 크고 작은 움직임까지 당의 이름을 내거는 지금의 관성적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관성은 진보와 짝하지 않는다.


 


일단 당사부터 바꿔보자. 당직자보다는 찾아오는 사람이 편한 공간, 수많은 화분이 싱싱하게 잘 자라는 공간으로 만들자. 자기들끼리 듣는 말, 자기들끼리 읽는 글을 준비하느라 분주할 것 없이 당 밖의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러기 위해 소통의 근거지로 당사를 다시 꾸미자. 당사 분위기부터 확 바꿔서 필승의 의지를 다져보자. 일하는 조건을 바꾸지 않으면 사람이 변하기 어렵고,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맨날 3백만표 타령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