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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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의 치사한 돈장난 (한겨레 07.04.12)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47
조회
219

노무현 정권이 돈으로 참 치사하게 굴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하는 단체에는 정부 보조금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만 갖고는 자기들도 면구스러웠는지 불법 폭력시위 참가 경력이 있으면 안 된다는 조건도 따라붙는다.


국민의 세금이 폭력과 불법의 자금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지침은 일면 그럴듯해 보인다. 그렇지만 정부가 말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관련 폭력은 지난해 11월22일 일부 지역에서 있었던 딱 한 번의 물리적 충돌이 전부였다. 더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것만으로도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다니, 정부 말을 잘 듣는 관변단체여야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속내를 약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사실 정부 보조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와는 아무 관련도 없다. ‘한-미 에프티에이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정부 지원을 받았던 것도 아니다. 참여연대, 경실련 같은 유명 시민단체는 정부 보조금을 전혀 받지 않고 있다. 내가 일하는 단체도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한 푼도 받지 않고 자존심만으로 버텨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에 열심인 단체들 중에서 정부의 재정지원에 목을 매는 단체는 하나도 없다. 원래 받은 돈이 없기에 돈을 주지 않아도 반대운동은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돈 이야기를 자꾸 꺼내는 정부의 의도는 아무래도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운동 자체를 폭력과 불법으로 매도하고, 반대 목소리의 정당성을 왜곡하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운동에 빨간색을 덧칠하던 군사정권의 행태와 너무도 닮아 있다. 


돈 문제를 갖고 시민단체를 끊임없이 음해하던 세력은 원래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이었다. 시민단체가 정부 돈을 받고 낙선운동이나 대통령을 살리는 탄핵반대운동을 했다든지, 노사모 비슷한 단체들이 돈을 받고 시민단체의 정체성을 팔아넘겼고, 노무현 정권은 돈을 주고 홍위병을 양성했다든지 하는 등의 모략이었다. 여기에 노무현 정권까지 가세했으니, 가히 노무현식 대연정이라 부를만하다. 


정부에 돈을 달란 적도, 받아 본 적도 없는데도 이런 모략이 계속되면 괜히 위축되고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돈이 갖는 껄끄러운 위력 때문이다. 돈이나 색깔론 등은 모략만으로도 힘을 쓰게 되는 속성이 있다. 


유럽이나 미국 시민단체들의 재정규모는 한국의 시민단체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문화가 정착한 덕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힘만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시민운동의 역동성과 헌신성을 빌려 민주적인 공공성과 연대성의 원리를 실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정부 시책에 반대했다거나 반대 집회 등으로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고 하여 보조금 지급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정부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더 좋은 정책으로 이끄는 것이 시민단체의 중요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한국의 시민단체에도 제대로 된 재정지원을 해달라는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가들처럼 우리도 돈 없는 척박한 상황에서도 신명나게 일할 수 있다. 여태껏 그랬으니 앞으로도 버티지 못할 까닭이 없다. 지원은 바라지도 않으니 모욕이나 하지 말라.


시민단체의 정부 보조금이 유신정권 이래 면면히 이어져 온 우익 관변단체 지원에 대부분 쓰이는데도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시민단체 보조금을 엮는 노무현 정권의 발상이 너무 치사하다. 금도를 넘는 노무현 정권의 치졸한 행태가 한둘이 아니지만, 돈 문제로 이러는 것은 해도 너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