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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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교황 프란치스코(경향신문, 2014. 8. 1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6:53
조회
146
어서 오세요, 교황 프란치스코 -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온다. 교황 방한은 천주교의 아시아청년대회 참석, 124위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식 참석을 위한 것이지만, 모두 이례적이다. 아시아청년대회는 추기경이나 주교들도 별로 참석하지 않던 행사였다. 하물며 교황 참석은 처음이다. 시복식도 대개 교황의 특사가 집전한다. 이 때문에 교황 방한은 한국 천주교회, 그리고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의 표현인 셈이다.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둔해졌지만,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내란음모’ 사건과 ‘간첩조작’ 사건이 반복되고 수백만명의 젊은이들이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극단적이며 소모적인 준전시상태다. 팔레스타인만큼 평화가 절실한 곳이다. 속사정은 더 복잡하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지만, 양극화는 극단적이며 돈만 좇는 천박한 풍조는 세계 제일 수준이다. 4·16 세월호처럼 국가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하는 참사가 되풀이되고 있으며, 최근의 병영 실태에서 확인하는 것처럼 치졸한 폭력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나라,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도 모자라 가장 늙은 나이까지 일해야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어린이, 청소년들은 희망 없는 불안한 내일에 공포를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은 하나의 부품처럼 경쟁력을 강요당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슬픈 일이지만, 그래서 한국은 꼭 가봐야 할 곳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교황 방문 일정도 파격적이다. 연일 파격적인 말과 행동으로 단박에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도자가 된 교황답다. 한국의 한복판, 그것도 첨예한 갈등의 복판으로 들어오려 하기 때문이다. ‘4·16 특별법’을 제정하라며 단식 농성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를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장애인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 지역 주민,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의 주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탈북자도 만날 예정이다.

유신 정권 말기,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한다던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나 인권의 보루 역할을 맡는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도 이러지는 않았다. 가능한 수준에선 최선의 동선이며, 가장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왜 교황은 저 멀찍한 로마 바티칸에서 이역만리 한국의 가장 첨예한 갈등의 현장과 피해 당사자들을 만나려 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교황이 누구보다 따르고 싶어 하는 예수의 뜻을 좇고 싶기 때문일 게다. 사실 예수는 매우 논쟁적인 분이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더없이 컸지만, 잘못된 체제와 기득권의 탐욕에 대해서는 서슬 퍼런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다. 지금 여기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교황에게는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그만인 일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를 자처하는 무거운 책임을 지닌 사람으로서는 꼭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사명일 게다.

교황이 특정 사안에 대한 심판자 역할을 하려는 건 아닐 거다. 한국이 낯선 외국인에게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답을 구할 수는 없을 게다. 답은 우리의 역량과 지혜로 찾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닷새 동안 교황은 다양한 메시지를 발표할 거다. 한국과 아시아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일관할 수 있는,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원리를 되짚어보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돈보다 생명을, 이윤보다 안전을 구해야 한다는 교훈, 무엇보다 사람이 존엄하고 가치 있다는 대한민국의 헌법 원리, 보편적인 인권 이념과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길인지에 대한 일반적인, 그래서 보편적인 답을 구할 수 있을 게다. 교황 방한이 우리 자신의 사람됨을 돌아볼 수 있는 모처럼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