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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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부터 시작하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2:00
조회
519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흔히들 말한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란다. 맞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한국처럼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도 없다. 우리야 그 변화를 지켜보며 함께 했으니 실감하지 못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그것도 식민지와 전쟁을 잇달아 겪었던 나라가 이렇게 빠른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건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거다. 말 그대로 현기증 나는 변화다. 그저 잘살게 된 것만은 아니었다. 비록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장기간의 독재정권을 겪었지만, 그만큼 긴 세월 동안 민주화투쟁이 진행되었고, 1998년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을 정점으로 민주화투쟁은 현실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해서, 한국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 독립국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한 세계 유일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도 과장이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거저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진짜 열심히 노력했다. 지금도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이 월등한 수준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밤낮없이 일했고, 부모세대의 가난을 자식세대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없는 살림에도 가난을 벗겠다는 일념으로 교육열을 불태웠으며, 먹고 살기 위해 온 몸으로 발버둥을 쳤다.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의 희생과 고난은 더 말해 무엇 하랴.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웠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감옥에 갇힌 사람도 많았다. 1980년 광주에서처럼, 도무지 승산이 없는 상황, 뻔한 패배를 앞두고서도 ‘숭고한 패배’를 자청했다. 당장의 고난을 피하지 않으려했고, 역사의 심판을 기다렸다. 우리의 성취는 결코 운이 좋다거나, 지정학적 위치가 좋아서 또는 누군가의 도움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할 자격을 갖췄다. 우리는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꾸준히 노력했고, 또 부지런히 싸웠다.  


 최근 반인반신(半人半神)이라는 망측스러운 칭호를 얻은 박정희부터든, 아니면 경제개발계획을 마련한 장면부터이든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50년의 세월, 4월 혁명부터 지금까지 역시 50여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계속된 민주화투쟁의 성과 위에 우리는 서있다. 변화무쌍한 한국 사회에 살면서 뒤를 돌아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당장 며칠만 신문, 방송, 인터넷을 끊어봐라. 세상이 얼마나 급격하게 돌아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쟁점은 늘 변하고, 어제의 뉴스는 오늘의 뉴스가 아니다. 한국처럼 전체 언론보도에서 외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나라도 없다. 우리 내부의 이야기를 할 시간도 부족하기에 나라밖 상황엔 관심을 둘 겨를조차 없다. 그래도 한번쯤은 돌아봐야 한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는데, 우리 자신이 받아든 성적표가 어떤 것인지,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했다는 빛나는 성취는 어떤 의미인지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계속 어디론가 달려갈 것인지, 아니면 방향을 조금이라도 바꿀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화려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우선 가장 중요한 우리의 목숨을 두고 생각해본다. 자살률 1위 국가. 이건 너무 오래되어 다만 관성적으로 여겨진다. 나는 복지가 온통 남의 나라 이야기인줄만 알던 시절, 학교에서 복지가 얼마나 후진 건지를 배웠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같은 북유럽의 복지국가에선 국가가 너무 많은 복지를 제공해줘서, 국민들이 일하려 하지도 않고,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염세에 빠져 자살률이 높다고 했다. 선생들은 살기 위해서라도 복지를 멀리해야 할 호환마마처럼 여기게 했다. 복지가 거의 없기에 우리는 그래도 자살할 우려는 없다고 자위했다. 한때 그렇게 여길만한 통계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반인반신의 신묘한 신통력은 복지에게 자살 방조 혐의를 쉽게 씌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라도 묻고 싶다. 우리의 어떤 복지가 우리를 이토록 자살로 이끄는지.


 죽어도 너무 많이 죽는다. 다들 아는 것처럼 자살은 일종의 사회적 타살이기도 하다.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고, 노력만 하면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 한국 군대의 자살률도 그렇게 낮아졌다. 20대 젊은이들은 사회에 있는 것보다 군에 들어가면 자살률이 반으로 낮아진다. 맞다. 문장을 잘못 쓰거나 잘못 읽은 게 아니다. 군대의 자살률이 같은 연령대 젊은이들의 절반일 정도로 사회 일반은 자살률은 그저 끔찍하다. 자살률 1위 국가라는 관성적 표현은 우리의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파른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10대, 20대, 30대의 사망원인 1위는 한결같이 자살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자살이 사망원인 1위가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국의 노인 자살률 역시 세계 최고다. 세계 2등인 헝가리에 비해서 2.5배 많다. 세계 1등이 세계 2등보다 2.5%가 아니라. 2.5배 많다. 세상에 이렇게 큰 격차의 1, 2등도 있을까. 건강보험조차 없는 형편없는 나라 미국에 비해서도 한국의 자살률은 3-4배 높다. 이건 누군가가 책임있게 이야기해야 할 가장 결정적인 우리의 성적표다.


 거꾸로 출산율은 세계 꼴찌다. 꼴찌가 싫은 공무원이나 교수들은 저출산 1위 국가라며 말장난을 한다. 4대강을 살리든 녹색성장을 하겠다는 것이든 국가를 개인과 한 집안의 수익 창출을 위한 수단쯤으로 여기는 호전적(好錢的)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 심지어 청년들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열심히 많은 시간을 공부한다. 노동을 천시하는 이 나라에서는 그걸 ‘학습노동’이라고 부른다. 학습노동의 시간 역시 세계 최장이다. 중학생이 학원에 갔다가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고, 그 늦은 밤의 귀가도 비극이지만, 숙제를 마치고 새벽 한두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드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일상이기에 비극으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매일처럼 급한 환자를 받아야 하는 대형병원 응급실의 인턴처럼 비극의 반복은 그저 무덤덤한 일상일 뿐이다. 그렇게 공부하고도 어린이, 청소년, 젊은이들은 제대로 꿈조차 꾸지 못한다. 지금 당장 주변의 청소년들을 붙잡고 말을 걸어봐라. 네 꿈이 뭐냐고 물어봐라. 답은 뻔하다. “없어요.” 아니면 “몰라요.”다. 좀 친절한 친구들이라고 해봐야 “잘 모르겠는데요.”일 뿐이다. 꿈은 욕망의 미래다. 지금 내가 욕망하는 것을 이루려고 꿈을 꾼다. 어찌 지금의 친구들이라고 욕망하는 것이 없을까. 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욕망을 거세해버렸다. 아무런 의학적 효용도 없이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포경수술을 감행하는 까닭없는 습성처럼 학교와 경쟁 시스템은 가장 꿈 많아야 할 세대를 집단적으로 거세시켜버렸다. 중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때였다. 네 꿈이 뭐냐 물으니, 예의 그 답변, 몰라요, 없어요가 반복되다가 어떤 친구가 ‘교사’라고 말했다. 동시였다. 뒤에 있는 친구가 그의 등짝을 내려쳤다. “야, 인마! 너 공부 못하잖아.” 교사가 꿈이라는 친구의 얼굴은 아마 얻어맞은 등짝보다 더 붉어졌던 것 같다. 욕망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프로이트처럼 어미에게 성적 욕망을 구한다는 해석이 얼마나 맞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주변을 보며 욕망하기 시작한다. 매일처럼 만나는 교사를 욕망하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어린 중학생, 앞으로 살아갈 날이 새털처럼 많이 남은, 어른의 눈으로 보면 온통 가능성 투성이인 그 어린 중학생의 욕망을 간단히 거세해버렸다. 보통의 중학교에서 교사가 될 수 있는 학생은 전교 1,2등을 다투는 최우등생밖엔 없다. 임용고시 시스템이, 안정적 고용 없는 한국의 고용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가난했던 시절, 힘들었지만 버틸 수 있었다. 바로 희망 때문이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궁핍한 시절, 사람을 똥값처럼 매길 때도 버틸 수 있는 힘은 오로지 희망이었다. 1980년대가 되면 자기 집이 생긴다는 희망, 어쩌면 자가용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희망. 아니 밥은 굶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이 그 모욕의 시절을 버틴 힘의 근거였다. 힘들어도 희망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희망이 거세된 지금, 살 길은 막막해졌다. 자살이 늘어나는 건 그래서 자연스러운 순리(順理)다. 우리가 받아든 성적표는 겨우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순리로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으며 여태껏 운동을 했지만, 나는 솔직히 우리 아이들처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역사는 정말 진보하는가란 질문에 대한 내 답은 “몰라요.”다. 그건 단지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고, 제 아비를 따라 역사의 수레바퀴를 온통 과거로 돌리려 한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까짓 5년의 푸닥거리는 참을 수 있다. 지역공동체를 파괴하고 농심(農心)을 온통 돈독으로 오르게 만든 새마을 깃발을 다시 휘날리고, 그것도 부족하면 뉴(new) 자를 붙여 휘날려도 까짓 5년이다. 대충 1년이 지나고 있으니, 이제 4년 남았다. 통합진보당, 전교조, 공무원노조를 탄압하고, 한복(韓服)만큼 보복(報復)도 좋아해도 이제 겨우 4년만 참으면 된다. 문제는 독재자의 딸만이 아니다. 


 희망은 그 전에도 없었다. 어쩌면 1997년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위기 때부터였을 거다. 아기들 돌반지까지 빼다 외화를 모았다. 외환보유고만 늘어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최근(11월 5일) 한국은행은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사상 최대치인 3,432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달에 비해 63억 달러가 늘어난 액수다. 외환보유고가 연일 사상 최대치를 갱신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엉뚱한 답을 붙잡고 있으니, 문제를 풀 까닭이 없다.  


 나는 한국 사람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모두 한국 사람이다. 현대 국가의 구성원, 흔히 국민이라는 모욕적인 언사(‘황국신민(皇國臣民)’을 줄인 ‘국민(國民)’이니 어찌 모욕이 아닌가.)로 불리는 우리들은 거의 대부분의 삶을 국가 단위에서 살아가야 한다. 한국사람은 한국어로 세상을 배우고, 자신을 표현하며 심지어 꿈도 한국어로 꾼다. 교분을 나누는 사람들도 죄다 한국 사람이다. 가끔의 예외적인 해외여행도 있지만, 그 여행도 같은 한국사람들과 함께 한국사람들이 자주 가는 관광명소를 훝어보거나 현지 한국식당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한국의 상황은 그래서 한국 사람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또 한국은 어떤 나라여야 할까? 그 답은 한국의 ‘국민’들 만큼 많을 지도 모르지만, 공통의 답이 필요한 건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현대국가는 그 공통의 답을 모두 갖고 있다. 바로 헌법이다. 최고위법, 국가의 기본을 정해 둔 가장 중요한 법이다. 우리는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여러 차례의 개헌을 거쳐 지금의 제6공화국 헌법까지 왔지만, 그동안의 헌법은 그저 국가의 통치 조직과 통치 작용을 규정한 법에 지나지 않았다. 대통령의 임기를 몇 년으로 할까, 몇 번이나 할까가 핵심 쟁점이었다. 박근혜의 아비는 1972년 헌법 개정에서 아예 대통령의 연임 조항을 없애버렸다. 결국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헌법의 오용(誤用)이고 오독(誤讀)이었다. 헌법의 핵심은 인권이다. 국가가 ‘모든 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한 의무를 지고 있고, 국민은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원칙이 바로 핵심이다. 국민은 권리 주체이고, 국가는 의무 주체라는 것을 확인하고,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의 권력을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나누는 등의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한 게 바로 헌법이다. 그래서 헌법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제1장 ‘총강’ 바로 뒤에 나오는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있고, 핵심 중의 핵심은 제2장의 첫 번째 조문인 제10조에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계몽주의, 근대시민혁명의 정신, 공화주의의 원리, 그리고 인권의 이념이 함께 담겨 있는 이 조문은 우리의 발명품은 아니었다. 그래서 가깝게는 세계인권선언이나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 헌법, 멀리는 미국의 버지니아 독립선언이나 프랑스의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에 관한 권리 선언)을 빌려왔다. 우리에게 다른 나라에서 왕의 목을 쳤던 것 같은 헌법 제정의 역사가 없었다 해도, 온통 남의 것을 빌려왔다해도, 헌법의 지위는 최고의 지위에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이게 한국의 원리, 원칙, 이념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온전한 의미에서의 한국이다. 그런데 한국 국민 누구도 헌법의 원리, 원칙, 이념을 배우지 않는다. 혹자는 말하겠지, 그런 것이야 학교에서 도덕, 사회, 윤리 시간에 다 배운다고.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헌법, 곧 인권은 온통 박제화 되어 있다. 중학교 도덕 교과서는 차별에 대해 가르치는 분량만큼 역차별에 대해 가르친다. 교과서의 저자들은 한결같은 태도도 일관한다. “인권이 싫다.” 싫은데 가르치니, 왜곡이 심하고, 얼이 빠져 있다.  


 한국의 인권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궁지에 빠져 있다. 인권은 곧 사람답게 산다는 거다. 하지만 사람답게 살기 위한 거의 모든 것은 돈을 주고 사야 한다. 돈이 많으면 사람다울 가능성이 높아지고, 돈이 없거나 적으면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의 돈독은 이해할만하다. 돈이 없으면, 미래가 없는 것은 물론, 당장의 삶도 곤란하다. 지금처럼 사람의 값이 무엇을 소비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일종의 ‘자본의 총공세’가 펼쳐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2009년부터 시판된 스마트폰이 불과 3년 만에 전국민의 70%의 손에 쥐어지게 된 것은 자본의 총공세와 더불어 무언가를 갖지 못할 때 느끼는 박탈감 때문이다. 10대, 20대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이미 99%다. 내년에는 85%의 국민이 스마트폰을 갖게 될 거란다. 무서운 속도다. 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다. 


 두 번째 궁지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가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거다. 헌법은 색깔론을 들먹이며 정적을 공격할 때나 나오는 레토릭의 전형이 되어 버렸다. 헌법은 국민을 권리주체로 규정하지만, 현실에서의 국민은 그저 의무주체일 뿐이다. 초등학교 2학년생이 극단적인 이념대결, 분단의 결과 살해되었는데도 그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믿기 힘든 말을 했다며, ‘반공 소년’이란 닉네임을 붙여줬다. 그리곤 전국의 초등학교에 동상을 세워 기리고 본받으란다. 1973년부터 1996년까지 그때는 국민학교라 불리던 초등학교의 도덕교과서에는 그 반공 소년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 동상을 세운 사람들은 정말 자기 자식을 그렇게 키웠을까. 9살의 어린 나이에도 국가를 위해, 국가도 아닌 정권의 이념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던지라고 가르쳤을까. 하지만, 유력 인사들의 아들들이 유독 군 면제를 많이 받는 현실은 우리에게 웃기지 말라고 일러준다. 권리의 행사는 아는 것부터 시작된다. 알아야 요구할 수 있고, 알아야 누릴 수 있다.  


 가끔 이런 나라가 어떻게 지금도 망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을까 싶을 때가 있다. 막강한 카르타고가 로마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진 것도 사실 까닭이 있는 일이었다. 카르타고의 용병들과 달리 로마의 시민병들에게는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었다. 지켜야 할 것이 전혀 없는, 그 나라에 사는 것이 전혀 자랑스럽지 않은, 그 정도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그 나라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든, 게다가 희망도 없는 상황이라면, 카르타고만큼 강성하지 못한 한국의 미래는 그야말로 암담할 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라가 망하더라도 사람들은 살아야 한다. 왕조시대라면 국가의 멸망이 백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으리라. 허나 현대국가는 다르다. 나라가 망하면 인민도 망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사는 인민들의 삶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조선의 인민은 단지 조선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의 국민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길을 찾아야 한다. 희망을 되찾아야 한다. 지금 여기서 사람답게 살아갈 궁리를 해야 한다. 이제는 궁지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답이 없을까? 


 답은 국가를 재구성하는 거다. 그렇다고 혁명이 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지금의 헌정질서, 지금의 헌법체계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취직을 못하는 젊은이들이 자신이 게으른 탓, 경쟁에서 뒤쳐진 탓, 자신이 무능한 탓만 하며 한탄하는 게 아니라, 헌법 제32조에 규정된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노력을 하지 않은 국가의 잘못된 태도를 따질 수 있어야 한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 어쩌면 전교 1등만 내달리던 어떤 친구는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겠지만, 나머지는 개천에서 용만 쓰다 패자부활전도 없는 경쟁의 패배자로 잊히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라. 저 높은 연봉을 자랑하는 은행원도 예전에는 고졸의 일자리였다. 상고나 여상을 나온 사람들이 가장 많이 취직하는 곳이 은행이었다. 9급이나 7급 공무원도 순경계급의 경찰관도 군대의 부사관도 모두 고졸의 일자리였다. 일반 회사에도 그런 일자리는 많았다. 1997년 아이엠에프 이후의 변화가 극심한 경쟁을 낳았다. 우리끼리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우리는 그토록 자랑해마지 않는 눈부신 경쟁성장도 이뤄냈다. 노무현은 국가의 힘이 모두 시장으로 넘어갔다지만, 그건 그저 직무유기성 푸념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기업의 생살여탈권은 국가의 손에 있다. 국가가 직접 고용을 창출하고, 국가가 기업을 견인하면 상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극단적인 경쟁에 대해 전두환처럼 ‘과외금지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소모적인 경쟁, 자기파괴적인 경쟁을 줄여나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길이 없다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다는 거다. 


 채무자가 채무 변제를 위해 강철 같은 의지를 불태우는 일은 별로 없다. 채무 변제는 아무래도 채권자의 몫이다. 돈을 꿔줄 때는 자기 집에 앉아서 꿔줘도 빌려준 돈을 받을 때는 품을 팔아야 한다. 권리와 의무도 마찬가지다. 권리주체가 부지런히 자기 권리를 의식하고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의무주체가 발 빠르게 움직이며 권리의 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일은 결코 없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요구만큼 확대된다. 


 인권교육은 그래서 망국(亡國)을 막는 유일한 방책이다. 지금 여기서 인권교육을 위한 작은 몸부림들이 있다.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방정부나 교육청 등이 조금씩이라도 인권교육을 확대해나가는 바람직한 일도 가끔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업자들이 인권교육을 하겠다고 뛰어드는 볼썽사나운 일도 있고, 오로지 인권교육 프로젝트의 수주를 위해 급조된 단체들도 여럿 생겼지만, 그래도 총량이 조금이라도 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사람다운 삶을 원한다면, 바로 지금, 인권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망국도 막을 수 있다.   


(이 원고는 수원시평생학습관(수원시가 희망제작소에 위탁한 기관)에 기고했으나, 이 기관의 매체에는 실리지 않았던 원고입니다. 이 원고가 '노말'하지 않다고 수정하지 않으면, 게재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