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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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수사 만능, 경찰 파쇼가 우려된다 (경향신문 6.2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1:39
조회
414

“치안복지를 창조하겠습니다.” 서울지역 경찰관들이 전화 받는 소리다. 경찰은 매번 이런다. 수장이 바뀔 때마다 널뛰기를 한다. 구호도 바꾸고 역점사업도 바꾼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취임한 지 달포 남짓, 서울 곳곳에 펼침막이 펄럭인다. 시장이나 대통령이 바뀐 것보다 요란하다. 보건복지부가 아닌 경찰이 나서 음주문화의 잘못과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적당히 마시라는 훈계다. 주권자인 시민을 훈계의 대상쯤으로 여기는 봉건의 잔재가 공화국의 경찰에서 부활하고 있다. 이쯤에서 멈췄다면 그저 해프닝이었을 게다. 서울경찰청장이란 경찰청장이 바로 코앞에 보이는 자리다. 나름의 블루오션을 만들어 뜨고 싶었을 수도 있다.


김용판 청장은 ‘주폭(酒暴)’이란 말을 만들고 상표권 특허등록도 했다. 이를테면 자신만의 브랜드라는 거다. 서울경찰청장 취임과 동시에 ‘주폭 척결’의 깃발을 들었다. 달포 남짓에 벌써 100명 넘게 구속했다. 교도소에선 술을 마시지 못하니 상습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재활치료보다 구속조치가 우선돼야 한단다. 가족관계가 단절되고 생계도 잃고 범죄오염의 가능성도 높은 자유형(自由刑)의 온갖 폐해를 겨우 술을 끊는 효과만으로 바꿔버리는 단순한 생각이 놀랍기만 하다. 인구 1만명당 1명의 주폭이 있으니 앞으로 900명을 더 구속해 1000명을 채우면, 세상이 확 달라질 거란다. 경찰서마다 ‘주폭수사전담팀’을 구성하고 건수를 채우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구속자 수를 미리 정해 놓은 희한한 수사다. 실적만을 위한 짜맞추기 수사가 반복되고 있다. 최후의 수단이어야 할 형사사법이 경찰을 ‘문제 해결자적 존재’로 여기는 이상한 자기 확신을 가진 청장에 의해 과감한 선제공격의 수단이 됐다. 인권보장을 위한 적법절차 원리나 실체적 진실의 발견 등 형사사법의 목적은 자취를 감췄다. 오로지 서울경찰청장의 지시에만 맹종하는 이상한 수사다. 조선일보의 부채질도 가세해 힘을 얻은 기세다. 가히 위험한 질주다.


김용판 청장이 생각하는 모델은 싱가포르란다. 태형을 치고 기초질서 위반에도 엄벌을 가하는 독재국가를 모델로 생각하다니. 엄벌을 통해 사회적 현안을 해결하겠다는 무서운 확신, 파시즘 말고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수도 서울의 치안 책임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더 심각한 것은 그의 명령에 따라 잇따라 구속되는 사람들이 죄다 사회적 약자라는 거다. 사회복지 서비스나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혹한 형사처벌의 칼을 들이대고 있다. 그러면서도 ‘치안복지’란다. 평소였다면 훈방조치나 기껏해야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입건했을 사람들이다. 구속자 중에서 자기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회의 안전이나 공동체의 평온 때문이라지만, 실제로 위험한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행시 출신으로 경찰 내부에선 소수파로 분류되는 김용판 청장 입장에선 언론의 주목을 더 받고, 더 많은 성과를 보여주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맘먹은 대로 1000명이나 되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들을 교도소에 보내면서까지 얻을 수 있는 이익, 그 자신 말고,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얻을 이익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엄벌이 무서워 경찰이 요구하는 질서에 순응하는 신민(臣民)을 만들어 낼 파쇼적 발상이 아니라면 지금의 이 푸닥거리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검찰은 오물이 고여 있는 도랑을 청소할 뿐이지 그곳에 맑은 물이 흐르게 할 수는 없다.” “수사로 세상이나 제도를 바꾸려 하면 검찰 파쇼가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에서 ‘미스터 검찰’로 불리며 일본 검사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요시나가 유스케의 말이다. 검찰을 경찰로만 바꾸면 된다. 김용판 청장이 명심해야 할 경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