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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경찰제 도입·교정교육 원점부터”(위클리경향 868호 10.03.30)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42
조회
267

[사회]“자치경찰제 도입·교정교육 원점부터”





ㆍ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김길태 사건’ 재발 방지대책 제안

김길태의 범행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합해서 11년을 교도소에 갇혀 지내는 동안 제대로 된 교정교화가 이뤄졌다면 그가 ‘괴물’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성인이 된 사람을 교정·교화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게다가 그저 가둬 두는 것 말고는 교도소에서 진행되는 교육이 거의 없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의 교정 현실이 근본부터 변하지 않는다면 작은 범죄자를 얼마 동안 가둬 두었다가 오히려 더 큰 범죄자로 만들어 사회로 돌려보내는 김길태 식의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범죄자를 단지 가둬 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오로지 말뿐이다.




김길태의 범행은 막을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성폭행을 하기 위해 초등학교 화장실에 침입했을 때, 지난 1월 20대 여성이 성폭행 당했을 때라도 경찰이 제대로 대응했다면 여중생 이 모양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사형제·경찰직무평가 논의 한계
이양 실종신고가 접수됐을 때도 그렇다. 대대적인 언론보도 이전, 대통령까지 나서 범인 검거를 추궁하기 이전에도 경찰이 열심이었다면 초동에 범죄를 진압하고 이양의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을 거다.

강호순 사건도 비슷했다. 경찰이 군포 여대생 실종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언론보도를 통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난 다음이었다. 강호순에 의해 희생된 다른 여성들도 비슷했다. 실종신고가 있었지만 경찰은 기다리라고만 했고, 결과는 끔찍하기만 했다.

왜 경찰은 딸이, 아내가 실종됐다는 애타는 호소에 이토록 둔감할까. 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도 굼뜨기만 한 걸까. 왜 언론의 질타와 대통령의 꾸중이 있어야만 긴장감을 갖고 사건을 다루는 것일까. 모든 사건이 언론에 나올 수도, 대통령의 관심사가 될 수도 없기에 시민들은 너무 불안하다.

사람들은 성폭행 사건의 직무평가 배점이 낮아서,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서 그렇단다. 얼굴 공개를 하지 안하서 그렇다고도 하고,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생뚱맞게 10년 동안의 좌파교육 탓이란다. 법무부 장관은 보호감호제와 사형 집행을 대책이라고 내놓았다.

좌파교육 탓이라는 안씨의 말이야 대꾸할 가치도 없지만 다른 대책이란 것들도 그 수준은 비슷하다. 평가 배점이 높은 사건에서도 경찰의 무능은 마찬가지니 배점 조정만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 사형 집행은 단순한 보복 말고는 범죄 예방 효과나 다른 형사정책적 실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미 확인된 가운데 이를 주장하는 것은 그저 대중의 분노에 기대려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작은 범죄자가 큰 범죄자가 되는 교정 현실에서 형을 마친 다음 보호감호제를 통해 7년을 더 살게 하면 과연 문제가 해결될까? 오히려 김길태 같은 ‘괴물’만 더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대책은 쏟아져 나오지만 대개는 지난해 강호순 사건 때도 쓴 재탕, 삼탕일 뿐이다.

실종된 가족이 범죄에 희생됐는지도 몰라 애타는 시민의 호소에 둔감한 경찰을 근본부터 제대로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리 대책이 쏟아져 나와도 이런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제대로 된 치안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자치경찰제를 외면한 탓이다. 한국만 유독 국가경찰제다. 모든 공무원 조직은 권한, 인사, 예산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다. 국가경찰제는 이 모든 것을 대통령 한사람이 틀어쥐고 있는 제도다. 명실상부 대통령만이 경찰의 주인인 가운데 경찰이 대통령만 의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자치경찰제가 도입돼 지방경찰청장·경찰서장을 지역 주민이 직접 뽑거나 최소한 지역 주민이 경찰 인사와 예산을 통제해도 경찰이 지역주민의 애끓는 호소를 외면할 수 있을까? 경찰은 시국치안에만 열심이지 민생치안에 대해서는 언제나 뒷전이다. 권한도, 비용도 시민에게서 나왔지만 경찰의 서비스는 대통령에게만 집중돼 있다. 자치경찰제는 권력에게 빼앗긴 경찰을 찾아오는 작업이다.

길거리에서 교통위반을 했다고 시민들의 호주머니를 갈취하던 경찰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경찰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기보다 휴대전화 보급 등으로 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든 경찰의 부패와 비위를 녹음·녹화할 수 있게 된 사실이 크다. 모든 권력에는 반드시 감시가 필요한 까닭이다. 경찰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기관이지만 정작 아무런 감시도 받지 않고 있다. 부패와 비위, 무능과 구태의연한 무감각의 원인은 자질 부족이 아니라 감시 부족 때문이다. 영국의 IPCC(Independent Police Complaints Commission, 독립적 경찰비리민원조사위원회) 같은 기구가 있어서 밤낮없이 경찰을 감시했더라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수백명의 전문가들이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있으면 우리 시민들이 경찰에게서 받는 대접이 이렇게 푸대접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독립 경찰감시기구 검토해야”
사건이 터지면 언론은 중계방송식 보도를 통해 피의자의 시시콜콜한 신변잡기까지 쫓거나 기껏해야 흉악범의 얼굴 사진이나 보여 주면서 마치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자사 광고를 내보낸다. 어린이의 비참한 죽음마저 자사 매출과 연관 짓는 그 장삿속이 끔찍하다. 언론의 선동이 앞서고 정부의 매번 같은 대책이 뒤따른다. 시민들은 언제나 흥분하고 안타까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모든 것을 잊는다. 한판 푸닥거리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지면 남는 것은 오로지 피해자와 그 가족의 깊은 상처뿐이고, 앞으로 다시 범죄의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뿐이다.

범죄자를 ‘괴물’로 만드는 것도, 그를 응징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중요한 건 다시는 이런 비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지, 왜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데도 우리 아이들의 안전조차 제대로 지켜 주지 않는지에 대한 성찰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이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자치경찰제를 시행하고, 정치 권력과는 독립된 전문 경찰감시기구를 설립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더 이상 언론 장사꾼과 무책임한 공직자들의 언술에 속지 말자.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억울하게 희생된 이양을 위해서라도, 우리 딸들을 위해서라도 이번만은 우리의 분노를 제대로 모아 보자.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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