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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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 정상화 날려버린 우상호(경향신문,2016.12.2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5 12:56
조회
719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이 정작 책임은 외면한다. 황교안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딱 그 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해 이런 사태에도 국무위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며 질타한 지 꼭 한 달이 지났지만, 지금껏 책임지고 사퇴한 사람은 없었다. 아예 반성조차 없었다. 국회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도 그랬다. 뻔한 거짓말로 오로지 자기 안위만을 챙기는 사람들투성이였다. 어떻게 다들 저런 식으로 한결같은지, 소신은 고사하고 거짓말과 변명만 일삼는 사람들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다니 답답할 뿐이다.


문제는 그쪽만 한심한 게 아니라는 거다. 박근혜 정권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하는 쪽에도 한심한 인사가 적지 않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가 그중 하나다. 그는 법인세 정상화라는 절호의 기회를 그냥 날려버렸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나 윤호중 민주당 정책위의장,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도 얼마쯤 탓을 해야겠지만, 책임은 권력의 크기에 비례하는 만큼 우 원내대표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법인세 인상은 곧 정상화를 뜻한다. 25%였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이명박 정권이 22%로 깎아버렸고 실효세율도 대폭 낮췄다. 이는 줄곧 ‘부자감세’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부자감세의 결과 대기업들은 사내유보금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지만, 서민들의 삶은 더 곤궁해졌다. 이 문제를 가장 집중적으로 비판했던 게 바로 민주당이었다.


기회도 좋았다. 새누리당은 분당의 위기에 빠져 어수선한 상태이고, 청와대는 의제를 끌고 갈 최소한의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사내유보금을 잔뜩 쌓아두고도 엄살을 부리던 기업들은 뇌물사건에 연루되어 고분고분해졌다. 지난 총선으로 여소야대가 되었고, 국회의장도 야당 출신이라 안팎의 조건이 모두 갖춰진 셈이다.


세금을 더 거둬서 어디에 쓸까에 대한 고민을 따로 할 필요도 없다. 청년들의 삶이 너무 힘드니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쓰면 된다는 답도 이미 다 마련해두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달 14일 ‘청년세’를 도입하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의장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개념은 간단하다. 법인세 과세 표준 1억원이 넘는 기업에 10년 동안 한시적으로 법인세를 1%만 더 걷자는 거다. 그러면 연평균 2조9000억원쯤 추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이 돈으로 소방, 복지, 교육 등 민생과 직결되는 공공부문에 매년 2만7000개의 정규직 일자리를 새로 만들고, 학자금 대출 이자 지원 등도 가능하다는 거다. 10년 동안 27만개의 공공부문 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당장의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말고도 부수적인 이익이 많다. 일자리가 늘어나면 그만큼 세금 내는 사람이 늘어나니, 세수도 확대될 수 있고 노량진 등에서 공무원 시험합격을 위해 젊음을 소모하는 청년들의 수고도 덜 수 있다. 치열한 대학입시 경쟁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공무원이 너무 많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상은 거꾸로다. 한국의 공공부문 고용률은 심각한 상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미치려면 2.8배나 더 채용해야 하고, 선진 복지국가 수준이 되려면 6배쯤 고용을 늘려야 한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법인세와 소득세 관련법은 예산 부수법안으로 지정했다. 이젠 표대결만 남았는데, 여소야대이니 결코 질 수 없는 상황이 된 거다. 소득세는 과표 3억~10억원의 최고세율을 38%에서 41%로 늘리고 과표 10억원을 초과하면 45%로 인상하는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의 안이었다. 법인세는 500억원 초과기업의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하는 민주당 정책위의장의 안이었다. 이건 곧 야당 단일안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소득세는 5억원 세율을 38%에서 40%로 올렸지만, 법인세 인상은 전혀 없었다. 광장의 함성이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고, 구체제를 넘어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시민들의 명예혁명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재벌, 대기업이 누린 특혜, 부자감세는 요지부동이다. 무슨 혁신적인 조세정책을 새로 도입하자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노무현 정권 시기만큼이라도 세금을 걷자는 것인데 자기들의 안마저 그저 협상용 카드로 날려버렸다.


우 원내대표는 법인세 정상화를 날려버린 다음, 나중에 정권을 잡으면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면 된다고 했다. 민주당이 법인세 인상을 대선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다음에 하겠다는 거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인데도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정당이 나중에 정권을 잡으면 추진하겠다는 말을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지금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당에 미래를 맡길 정도로 시민들이 바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저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만 기대면 저절로 정권이 넘어온다는 건가. 정책의지는 예산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광장과는 달리 의회에는 의회의 방식이 따로 있다는 사람이니 우리가 모르는 무슨 깊은 뜻이 따로 있다는 건가.


조지 오웰은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가장 나쁜 욕은 적을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 욕을 법인세를 말아먹은 우 원내대표에게 해주고 싶다.


대통령은 직무정지 상태이고, 이미 해고 통보를 받은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하고 있다. 대통령이 저 지경이니, 이제 선출권력은 의회밖에 남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곧 쪼개질 판이니, 이제 실질적인 의회의 힘은 민주당, 구체적으로는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쏠려 있다. 비상시국인 만큼 국정을 끌어가야 할 무거운 책무가 우상호 원내대표에게 주어진 것이다. 실제로 가장 큰 권력이 되었다. 그 권력을 제대로 써야 하는데, 이렇게 한심하기만 하다. 도대체 정치를 왜 하냐고 따져 묻고 싶다. 그냥 직업일 뿐인가.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