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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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를 만든 효과 보려면 (경향신문, 2019.09.06)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9-09 10:17
조회
865


교도소에는 온갖 사람들이 갇혀 있다. 개중에는 장발장 같은 억울한 사람도 있겠지만, 진짜로 죄질이 나쁜 범죄자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크고 작은 다툼이나 질서위반 행위도 곧잘 일어난다. 질서위반에는 상응하는 벌이 따른다.


교도소의 징벌은 곱징역이라고 부를 만큼 험하다. 징벌을 받으면 독방에 가두는 금치는 물론, 텔레비전 시청, 신문 열람, 집필, 서신 수수, 실외 운동, 접견 등이 금지된다. 하나같이 수용자에겐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접견 금지를 당하면 천리길을 마다하고 찾아온 늙은 어머니가 자식을 만나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한다. 하루종일 좁은 감방에만 갇혀 있다가 겨우 30분 남짓 햇빛을 볼 기회도 빼앗기게 된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징벌을 받은 수용자는 1만8319명이었다. 직원 폭행처럼 형사처벌을 받는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86건)도 있지만, 가장 많은 건수는 ‘지시불이행’으로 5670건이 발생했다. 지시불이행의 대부분은 ‘입실 거부’로 모두 4580건이 발생했다. 수용자가 자기 방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다 징벌을 당하는 경우가 제일 많은 거다. 먹고 자고 씻는 등 수용생활의 대부분은 감방에서 이뤄진다. 가장 중요한 생활공간인데, 여기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거다.


징벌을 받더라도 감방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건, 감방에서 지내는 게 징벌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징벌로 인한 제약이 많아도 좋다는 거다. 너무 좁은 감방에서 여럿이 함께 지내며 진을 빼는 것보다는 징벌을 받으면 독방에 갈 수 있기에 오히려 좋다는 사람들이 많다. 입실 거부자들은 징벌을 자청하는 사람들이다.


관련 법률은 독거 수용을 원칙으로 제시하면서도(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14조), 독거실 부족 등 시설여건이 충분하지 않으면 혼거수용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은 분명하고 일부 예외를 두었지만, 현실의 감옥에선 예외가 원칙이 되었다. 독거는 징벌이나 받아야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입실 거부 사태는 수용자의 잘못이 아니라 법무부, 나아가 대한민국의 잘못이다.


좁아터진 감방은 감옥에 너무 많은 사람을 가둔 탓이다. 박근혜 정권 때부터 수용자가 급증했다. 살인, 강도, 절도 등의 주요 범죄가 부쩍 줄었는데 수용자는 늘어나는 이상한 현상이 생긴 거다. 이런 현상은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이 넘도록 멈추지 않고 있다. 박 정권 때는 4대악 척결이니 하는 슬로건이라도 내세우며 감옥을 미어터지게 만들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렇다 할 설명조차 없이 지난 정권의 폐해를 답습하고 있다. 그저 음주운전 등의 범죄에는 가석방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는 등의 포퓰리즘만 돋보일 뿐이다. 정원보다 30% 넘게 가둬놓고도 법무부는 그저 태평하다.


곳곳의 감옥은 사람을 가두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낡았다. 안양교도소는 1963년 준공했다. 56년 된 건물에 수천명을 가두는 건 너무 위태로운 일이다. 잘 지은 아파트라도 30년만 지나면 재건축을 해야 할 텐데, 한국의 감옥은 요지부동이다. 강릉교도소는 49년 전 건물이고, 창원, 제주, 전주, 경주, 홍성, 부산, 공주, 청주, 원주교도소와 부산구치소는 모두 40년이 넘었다.


상황은 심각한데 대책은 없다. 교정기관이 기피시설이라 지역주민의 반대가 많아 신축이 어렵다는 이야기만 수십년째 반복하고 있다. 서울동부구치소처럼 법원, 검찰청과 함께하는 법조타운 방식이라면, 주민들이 오히려 반길 텐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가장 큰 책임을 진 법무부 장관이 감옥의 과밀수용 해소를 위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선 시설을 둘러보기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백범 김구 선생을 사표로 삼는다는 정치인들이 많다. <백범일지>도 필독서로 꼽히지만, 실제로 읽은 정치인들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이를테면 감옥에 대한 문제만 봐도 그렇다. 김구 선생이 105인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 그가 몸으로 겪은 감옥은 처참했다. 심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선생은 해방된 조국의 감옥은 일본제국주의와는 달라야 한다는 꿈을 꿨다. “구속을 너무 지나칠 정도로 가혹하게 할수록 반대로 수인들의 심성도 따라 악화되어서, 횡령이나 사기죄로 들어온 자라도 절도나 강도질을 연구해서 만기 출옥 후에 더 무거운 형을 받아 다시 들어오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거다. 감옥에 보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거다.


김구 선생은 “후일 우리나라가 독립한 후 감옥 간수부터 대학 교수의 자격으로 사용하고, 죄인을 죄인으로 보기보다는 국민의 일원으로 보아서 선으로 지도하기에만 주력해야 하겠고, 일반 사회에서도 감옥살이 한 자라고 멸시하지 말고 대학생의 자격으로 대우해야 감옥(을) 설치한 가치가 있겠다”고 했다. 체험을 통해 넓힌 새로운 지평이었다.


무릇 감옥은 이래야 한다. 그래야 범죄를 제대로 진압하고, 범죄꾼을 양산하는 악순환도 끊을 수 있다. 나라를 빼앗기고 자신의 몸마저 갇힌 상황이었지만, 선생의 인식은 남달랐다. 몸으로 세상을 배우고 익힌 운동가 특유의 통찰력이 빛났다. 선생이 감옥에 갇힌 건 1910년이고, <백범일지> 상권을 쓴 건 1929년이다. 109년, 또는 9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의 감옥은 여전하다. 좀 더 따뜻해졌고 교도관의 매질이 없어졌다는 것 말고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


법정구속이 늘고, 형사사건에서 자유형을 선고하는 비율도 늘어났지만, 가석방의 문턱은 더욱 높아졌다. 입구는 넓어졌으나 출구는 더욱 좁아졌다. 그래서 과밀수용은 더욱 심각해졌는데, 실효성 있는 대책은커녕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지난 2년4개월 동안 감옥과 관련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갇힌 사람들은 정권교체의 의미를 실감할 수 없었다.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을 하고 형사법 학자가 법무부 장관을 하는 데도 감옥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장관이 바뀌면 어떨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