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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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교화 위해 가석방 활성화해야 (경향신문, 2019.03.22)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3-22 10:00
조회
706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형벌은 범죄자의 죗값을 고통으로 치르게 하는 거다. 가장 확실한 고통은 감옥에 가두는 것이다. 감옥은 자유를 제한하여 고통을 주도록 설계된 제도이니 갇힌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고통을 받는다. 신체의 자유 제한에는 가족 관계의 단절, 생계 박탈, 사회적 평판의 추락 등 따라붙는 고통 또한 만만치 않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루 평균 5만4774명이 감옥에 갇히는데, 재판을 받고 있는 미결구금자는 1만8867명으로 전체 수용자의 34.5%다. ‘불구속 재판’이라는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면 상당한 숫자를 줄일 수 있다. 예산도 줄이고, 피고인의 방어권도 보장하며 진짜 범죄자인지를 가리기 전에 형벌을 주는 왜곡도 막을 수 있다. 구속은 증거를 없애거나 도망칠 것 같은 사람을 잡아두기 위한 이례적 절차이지만, 현실에서는 유무죄 판단보다 더 중요한 표지가 되었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나쁜 범죄자, 기각되면 죄가 없거나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된다. 간편한 도식이다.


수사기관들은 구속에만 매달린다. 자기들의 수사성과를 과시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이런 욕구를 통제해야 하는 법원에는 거센 여론과 맞설 배짱 같은 것이 부족해 보인다. 구속영장을 발부하지만, 억울하면 나중에 재판받을 때 얼마든지 소명할 수 있을 거라며 스스로 부담감을 덜어내는 식이다.


형사사건의 핵심은 감옥에 가느냐 아니냐로 갈리지만, 이게 꼭 공정한지는 늘 의문이다. 재벌들에게 적용된다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법칙’이 보여주듯, 감옥행이 죄질에 따라 갈리는 것도 아니다. 당장 김학의 사건 등 여러 낯 뜨거운 사건들만 해도, 결국은 누구는 힘이 있어서 다른 누구는 어떤 배경이 있어서 감옥에 가지 않았고, 기본적인 수사조차 피해갔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특권층과의 유착에는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이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유독 흉악하거나 매우 위험해서 반드시 사회와 격리해야 하는 사람들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당장 중요 범죄의 발생 건수 자체가 줄고 있는데, 감옥은 연일 과밀수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만 해도 그렇다. 지난 10년 동안 살인, 강도, 절도 등의 범죄로 감옥에 갇힌 사람의 숫자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범죄 자체가 줄어드니 수용자도 줄어드는 당연한 결과다. 2013년 절도사건으로 갇힌 사람은 4650명이었지만, 2017년에는 3858명으로 줄었다. 놀라운 성취다. 반면, 사기, 횡령 등 경제사범으로 구금되는 사람들은 같은 기간 5024명에서 7630명으로 크게 늘었다. 결국 경제적 여건 때문에 갇히는 사람들만 잔뜩 늘어난 셈이다.


법정 구속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도 과밀수용의 원인이 되었다. 2013년에는 연간 7532명이었지만, 2017년에는 1만2378명이었다. 법의 준엄함을 보여준 것은 좋지만, 범죄 발생 건수 등에서 별다른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고 주요 범죄 발생은 큰 폭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유독 법정 구속만 늘고 있다는 것은 좀체 이해하기 힘들다. 각급심의 재판기간이 계속 늘어나는데 법원이 구속재판을 고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입구가 활짝 열린 감옥 문제, 특히 과밀수용 때문에 교정교화든 재사회화든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출구 전략에서 답을 찾아야 하지만, 그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감옥에 들어가는 건 쉽지만, 나오는 건 쉽지 않다. 감옥에서 나오는 길은 재판에서 무죄를 받거나, 정해진 형을 다 마치고 만기 출소하는 경우, 아니면 가석방을 통해 조금이라도 일찍 나오는 경우 등이 있다.


가석방은 출구 전략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만, 무엇보다 교도소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감옥생활은 더딘 시간과의 싸움이 핵심이다. 그러니 수용자 입장에서 가석방은 기대볼 만한 유일한 희망이다. 교정당국 입장에선 확실한 유인책이기도 하다. 질서를 잘 지키거나 사회에 나갈 준비를 열심히 한다는 차원에서 자격증이라도 따면,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교도소 운영에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교정당국이 수용자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당근이다. 징벌을 주거나 심한 경우 추가 범죄로 단죄하는 등의 채찍을 쓸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회도 채찍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감옥에 가두는 것은 형벌을 주는 것이지만, 세상 어떤 나라도 단순한 응보적 형벌만으로 감옥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사회로 돌아가야 하는 만큼, 다시는 범죄로 빠지지 않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할 방도를 마련하는 게 교정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가석방은 교정활동의 실질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


가석방 여부를 정하는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는 수백명의 심사자료를 한꺼번에 검토할 뿐이다. 얼굴을 맞대고 수용자의 재활의지를 직접 묻고 확인하는 일은 없다. 음주운전, 마약, 성범죄 등 가석방 제한 사범을 정해두는 식으로 일괄 처리할 수밖에 없다. 법원, 검찰, 학계와 교정관계자가 참여하는 지금의 틀을 유지하되, 각 교도소마다 가석방심사위원회를 두고 실질적인 심사를 해야 한다. 수용생활을 하면서 어떤 준비를 했는지, 사회에 나가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 믿을 만한 근거는 뭔지 묻고, 직접 답을 듣는 가석방심사가 되어야 한다.


감옥에 가는 사람들의 숫자를 대폭 줄이고, 나오는 사람들의 수는 대폭 늘려야 한다. 그저 가둬두는 것만으로 우리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석방을 활성화해서 수용자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디든 희망이 없는 곳은 그저 지옥일 뿐이다. 진짜 위험한 사람들은 그 위험이 해소될 때까지 격리하는 게 맞지만, 의지를 갖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감옥이야말로 선택과 집중이 절실한 공간이다. 보내는 일에만 집중하고, 나오는 것은 생각하지 않으면, 고이고 썩게 된다. 지금 한국의 감옥 현실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