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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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세요, 수녀님(평화신문, 2014. 6. 2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6:50
조회
156
[시사진단] 울지 마세요, 수녀님/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2014. 06. 29발행 [1271호] 

평화신문 지난호(제1270호, 6월 22일자) 6면에 실린 한 장의 사진. 한참을 봤다. 가슴이 먹먹했다. “밀양, 공권력 앞에 끝내 울었다”는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이다. “한 수녀가 11일 주민들과 함께 행정대집행에 항의하다 얼굴을 감싼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에 대한 짧은 설명이다. 사진 속 수녀는 경찰의 방패 앞에서 울고 있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저렇게 울고 있을까. 힘없이 끌려난 사람의 서러운 울음이었다. 

6월 11일, 한전과 경찰, 곧 정부는 끝내 힘으로 밀어붙였다. 바로 전날 “불상사가 예견되는 집행을 당장 멈춰 달라” “지금이라도 대화로 사태를 해결해 달라”며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호소했지만, 정부는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말이 행정대집행이지, 실상은 경찰을 앞세운 무력진압이었다. 농성장의 노인들과 수녀들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수천 명의 한전 직원들과 경찰관들은 군사작전을 펼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힘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고작해야 소리 지르고, 울부짖는 게 전부였다.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고 꾸짖어보았지만, 그건 하늘을 두려워하는 염치를 아는 사람들에게만 통할 뿐이다. 돈이 되면, 또는 상부의 명령이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는 몰염치한 사람들은 막무가내였다. 흡사 전쟁터 같았다. 

수녀들이 당한 고초도 적지 않았다. 머릿수건이 벗겨지는 치욕을 당했고, 팔이 부러진 수녀도 있었다. 20여 명의 수녀가 다쳤다. 심지어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폭거를 당하기도 했다.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도 저들은 개의치 않고 끌어냈다. 서러운 울음만 터져 나왔다. 사진 속의 수녀도 그렇게 울었다. 

밀양 송전탑 반대 활동에 대해 한국 천주교회는 늘 고마워했다. 이 활동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또 미처 깨닫지 못한 소중한 것들”이 드러났고, “이 시대가 탐욕으로 잃어버린 참 인간을 복원하게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게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평가다. 밀양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친 싸움을 겪게 된 노인들 덕분에 “전기가 어떻게 생산되고 어디를 거치고,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동과 눈물이 젖어 있는지” 알게 되었단다. 수녀들의 연대는 이런 고마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연대의 뜻은 높고 귀했지만, 현실은 비참이었다. 예정된 패배였지만, 패배는 아프기만 했다.

하지만 이 패배가 놀라운 반전을 일으키고 있다. 인터넷 공간이 들썩이기도 했다. 한 목사는 수녀들을 통해 “사랑을 봤다”고 했다. 맞다. 이게 바로 사랑이다. 힘없는 사람과의 연대가 바로 사랑이다. 수녀들은 스스로 힘없이 쫓겨나면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줬다. 사람들은 이날의 패배를 아름다운 패배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제 몫만 챙기는 각박한 세상, 이웃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힘없이 밀려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거나 함께 울어주는 사람은 드물다. 그게 사랑이지만, 사랑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목숨을 내놓고 사랑을 증거한 분,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사실 말뿐이었다. 말과 실행은 달랐다. 하지만 수녀들은 행동했고, 함께 울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씀하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지는 교회”의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수녀들은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해, 또는 대신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줬다. 덕분에 우리 한국 천주교회 구성원들은 그나마 덜 부끄러울 수 있게 되었다. 곧 오시는 교황께도 순교자의 후손들이 어떻게 사랑을 증거하고 있는지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사진 속의 수녀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다. “울지 마세요, 수녀님! 수녀님께서 저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일깨워주셨어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