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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 (경향신문, 2019.05.1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5-17 10:22
조회
15


사진출처 - 경향신문


수사권 조정안이 신속처리법안에 포함되자 검찰이 갑자기 포문을 열었다. 검찰총장은 외국 방문을 취소하고 급히 돌아왔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진행했던 사법개혁 논의를 정면에서 거부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정부 차원의 논의를 계속했고,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차원에서의 논의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부 차원이든 국회 차원이든 검찰이 의견을 개진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니 뜬금없는 반발이다.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나서서 검찰의 주장을 경청하겠다고 했지만, 반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떤 관료도 이렇게까지 오만한 적은 없었다. 


반발하는 내용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동원인지 자원인지 모르겠지만 검찰 주변 인사들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을 거론하며, 수사권 조정이 되면 이승만 정권 때처럼 경찰파쇼가 될 거라 호들갑이다. 때맞춰 정보경찰의 폐해가 검찰발로 잇따라 터져 나오고, 두 명의 전직 경찰청장 등 네 명의 전·현직 고위직 경찰관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하였다.


경찰은 짐짓 점잖게 대응하나 논리 전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이 꽤 많다는 점을 강조한다. 박종철 열사의 비극은 1987년의 일이지만, 검찰이 고문치사사건을 일으킨 것은 2002년이라며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파고든다. 검찰이야말로 국정농단의 주역이라는 점도 부각하고 있다.


양쪽의 말을 다 듣고 나면, 검찰과 경찰의 수사는 조금 낫고 못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엇비슷해서 견줘볼 필요도 없을 만큼 형편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도긴개긴이다. 시민들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둘 다 나쁘거나 둘 다 믿지 못하겠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지난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검찰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0%, 경찰을 신뢰한다는 것은 2.7%에 불과했다. 약간의 차이야 오차범위 내의 일이다. 믿음직하지도 않고 곧잘 국민을 괴롭히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던 기관들이지만, 그래도 일은 시켜야 한다. 


형사사법절차는 국가형벌권을 행사하기 위한 절차다. 형벌의 목적은 범죄자에게 고통을 주겠다는 거다. 그래서 형사사법절차는 정밀해야 하고,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인권보장에도 철저해야 한다. 자칫하면 상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히기도 한다. 비록 사회정의를 위한 일이라지만,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만들기 위한 일이니, 형사사법절차는 한마디로 무서운 절차다. 신체의 자유를 빼앗는 징역형은 물론, 돈을 빼앗는 벌금형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수사는 형사사법절차의 시작이지만, 기소와 재판의 전제다. 수사가 없으면 기소도, 재판도 없다. 그래서 수사를 잘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논쟁 중인 수사권이란 말은 그래서 부적절하다. 수사는 어떤 기관이 함부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나 권한이 아니라 책무에 가깝다. 누군가를 혼내주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일은 무거운 짐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검찰과 경찰은 이 무거운 짐을 서로 떠안겠다고 다투고 있다. 애국적 열정이 넘쳐서는 아닐 게다. 외국 순방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돌아와서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그 배짱은 바로 수사가 책무가 아니라 권한, 그것도 막강한 권한이기 때문이다. 


수사권 조정 문제는 어떻게 풀면 좋을까. 의외로 답은 검찰총장 문무일이 내놓았다. “형사사법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적 원칙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단다.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말이다. 의도와 맥락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답은 맞혔다. 바로 민주주의다. 수사권 조정을 해야 하는 까닭도, 조정하는 내용도 모두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분산시키며 상호 견제를 통해 균형을 잡자는 거다. 효율성으로만 친다면, 자기가 잡아다 자기가 재판하는 사또 재판이 최고다. 지금 검찰은 사또 역할을 하고 있다. 재판은 법원의 몫이지만, 수사도 검찰, 기소도 검찰, 공소 유지와 형 집행도 검찰이 한다. 검찰은 형사사법절차의 핵심적 대목에서 막강한 권한을 독점적으로 휘두르고 있다. 형사사법은 법원의 역할이 오히려 부차적으로 여겨질 정도로 검찰의 독무대가 되었다. 


촛불혁명 이후 시민들이 이구동성으로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로 검찰개혁을 꼽은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선거구제 개편과 함께 신속처리법안으로 지정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은 모두 검찰개혁을 위한 방편들이다. 수사권 조정은 검찰에게 집중된 권한을 일부라도 경찰에게 넘기고 상호 협력관계에서 견제와 균형을 잡아보자는 거다. 지금의 법률안으로 검찰개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첫걸음이라도 떼어보자는 거다. 


자치경찰이나 정보경찰 개혁이 전제조건이라는 사람도 있다. 그게 꼭 필요한 개혁과제라는 것에는 동의하나, 수사권 조정의 전제조건은 아니다. 수사권은 일을 잘했거나 개혁을 잘했다고 주는 보상이 아니다. 핵심은 검찰의 독점적 권한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자는 데 있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없어지면 경찰 수사의 자율성이 커진다며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한 결과는 모두 검찰에 송치하기에 검찰이 경찰 수사를 통제하는 것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는다. 수사지휘권 대신 보완수사 요구권과 시정조치권을 새롭게 얻기에 별반 달라지는 것도 없다. 게다가 검찰은 경찰의 모든 수사기록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경찰관의 비위가 의심된다면 직무배제나 징계를 요구할 수도 있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도 그대로이기에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자체적으로 들여다볼 수도 있다. 


물론 지금 법안대로 통과될지도 모를 일이다. 국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겠다. 바라건대, 입법과정에서 보다 풍부한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국회가 시민의 요구, 민주주의의 일반 원칙만 기억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없다. 수사권 조정은 무엇보다 검찰개혁 차원에서 하는 일이다. 검찰과 경찰이 때론 협조하고 때론 경쟁하면서 수사를 제대로 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