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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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공제회의 경우 (경향신문, 2020.03.2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3-27 09:57
조회
732


많은 젊은이가 공무원을 꿈꾼다. 코로나19 때문에 학교 문은 닫았지만, 공무원 고시학원은 여전하다. 수험생들 열기는 늘 뜨겁다. 다들 열심이다. 공무원의 높은 인기는 신분 보장 때문이다. 공무원의 신분 보장은 헌법 사항이다. 최고위 규범이 가장 높은 수준에서 고용 안전을 보장한다. 게다가 급여도 안정적이다. 연금도 꽤 쏠쏠하다. 사회복지 분야처럼 힘든 업무를 반복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직사회가 업무 효율을 주로 따지는 곳은 아니어서 노동조건은 대개 안정적이다. ‘격무와 박봉’은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공무원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고 먹고살 만한 급여에다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연금까지 두루 보장하는 건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헌법 제7조의 규정처럼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하며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거다. 지금 당장의 사태가 그렇다. 공무원들이 없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진료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가야 했을 거다. 해외가 주목하고 칭찬할 정도로 한국의 공무원들은 제대로 대응하고 있다. 이게 바로 공무원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가끔은 대한민국의 주인이 국민이기보다는 공무원들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이용해 오로지 자신의 잇속만 챙길 때는 특히 그렇다.


국가보훈처 공무원들은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독립기념관, 88관광개발(골프장) 등 보훈처 관할 기관 종사자들과 함께 ‘나라사랑공제회’를 만들었다. 2012년, 보훈처 설립 50주년을 기념했단다. 정관에 밝힌 설립 목적이다. “국가보훈 업무에 헌신하는 소속 회원들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도모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일깨우는 사회공헌과 보훈행정에 기여함.” 얼핏 보면 나라 사랑, 곧 국가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된 분들을 위한 조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독립, 호국, 민주화 분야의 국가유공자들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 그냥 보훈처와 공단 직원들의 잇속을 챙기는 게 전부다.


설립 과정도 부적절했다. 행사 기획사, 여행사, 인쇄업체 등 보훈처 납품업체들에서 재단 출연금을 거뒀다. 출연금을 낸 업체들은 그만큼 혜택을 받았다. 2011년 보훈처 관련 매출이 전혀 없던 여행사는 2012년에만 2억2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출연금만이 아니다. 보훈처는 업체들과 사업을 하면서 얻은 수익의 일정 비율을 공제회에 납부하게 했다. 이렇게 거둬들인 돈은 모두 3억5000만원이었다.


나라사랑공제회가 집중한 사업은 부동산 투자였다. 2015년 11월엔 경기도 성남, 다음해 3월엔 강원도 춘천에 있는 빌딩을 샀다. 각각 86억원, 128억원짜리였다. 공제회의 투자, 곧 보훈처 공무원들의 욕망은 촛불에도 정권교체에도 굴하지 않았다. 2017년 9월에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으로 진출해 170억원짜리 빌딩을 샀다. 건물 매입비용은 모두 은행 대출을 통해 조달했다. 땅을 담보로 빚을 내어 건물을 사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런 투자를 바탕으로 회원들에게는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 사실상 제로금리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퇴직급여 이자율은 4.25%다. 2016년 12월까지는 연 5.75%의 확정금리를 적용했다. 회원 자격이 없는 퇴직자에게도 자금 예탁을 통한 재산 증식의 기회를 준다. 5000만원까지 연복리 2.75%의 이자를 준다.


2018년 ‘국민중심보훈혁신위원회’는 보훈처장에게 나라사랑공제회 해산을 권고했다. 보훈처장이 설립 허가를 취소하라는 거다. 보훈처 공무원과 공단 직원들은 사영기업 노동자나 자영업자에 비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보훈섬김이 같은 무기계약직은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지만 회원 자격도 주지 않았다. 정작 복지가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정규직끼리만 혜택을 누리겠다는 폐쇄적 운영이다. 수익의 일부라도 국가유공자를 위해 내놓거나 국가의 기억사업이나 돌봄사업에 보태는 일도 전혀 없었다. 기부활동도 공적인 역할도 지금껏 전혀 없었다.


나라사랑공제회는 정부의 설립 허가권을 악용한 대표적 사례다. 이익을 내겠다며 부동산 투자만 반복하는 것도 이상하다.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을 매입하는 게 이익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무원들의 조직이라면 달랐어야 했다.


보훈처장은 권고를 수용했지만, 공무원들은 재산 처리를 위해 말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말미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공제회 해산은 유야무야된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는 이사장도 새로 뽑고 전국의 보훈청을 돌면서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해산은커녕 몸집을 더 키우고 있다. 부동산 투자도 잘해서 이윤을 크게 내고 있으니 회원으로 참여해달라고 독려하고 있다.


사실 부동산 투자는 보훈처 직원들만 벌인 일은 아니다. 법무부 직원들인 교정공무원들의 교정공제회는 아예 ‘부동산투자부’란 부서를 신설하고 매년 1000억원 안팎의 매물을 사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빌딩을 798억8000만원에 사들였다. 교정공제회는 교도관들의 회비만이 아니라 교도소 물품 납품을 독점해 수익을 올리는데, 역시 귀결은 부동산이었다. 경찰공제회, 군인공제회, 행정공제회 등도 마찬가지였다. 콘도나 호텔, 또는 골프장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각광받는 투자처는 역시 부동산이었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공직사회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나 관련 장관들이 부동산을 안정시키겠다고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공무원 이익단체들은 수익용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시민들에게만 자제를 호소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공무원이라고 희생만 강요당할 수는 없다. 그들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무원이 가진 권한을 이용해 오로지 제 잇속만 차린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민주적 통제가 절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