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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호] 1987, 2017……. 그리고 2018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3-21 15:46
조회
532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연말에 동생네와 같이 부부동반으로 영화 <1987>을 봤습니다.
 관람 후 식사를 같이하면서 박종철 고문치사와 이한열 사망 사건이란 역사적 사실에 영화적 픽션을 적당히 섞은 아주 잘 만든 영화라는데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후의 일련의 과정에서 은폐, 조작하려는 국가권력과 이를 바로잡거나 폭로하려는 개인들 간의 관계는 흥미진진함을 넘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난 후에도 저를 오랫동안 상념에 빠지게 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박종철 군의 시신에 대한 화장 동의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였던 서울지검의 최 검사, 당시 전 언론사에 내려졌던 보도지침을 거부하고 고문을 받다 사망한 사실을 보도한 동아일보, 부검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거짓 보고서에 서명을 거부한 황 박사, 경찰의 고문 경찰 은폐와 조작 사실을 바깥에 알린 교도관 등 영화 ‘1987’에는 실제 사건과 인물을 그대로 가져온 대목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개봉과 함께 당시의 사건과 관계된 인물들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는데 개인의 정의로운 판단과 행동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점에서 재조명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영화를 통해 비교해 본 검찰과 언론, 의사, 공무원들의 1987년과 현재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


 먼저 검찰은 1987년에도 최 검사의 실제 모델이었던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 외에는 고문치사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노력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87년 민주화 이후 조직의 힘을 키워가면서 결과적으로 국가 권력기관 중 가장 힘이 센 조직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드문드문 검사 개인 몇몇의 올바른 외침은 있었지만, 조직 전체적으로 봤을 때 권력에 머리를 숙이고 시민의 자유권에 대해서는 억압하는 전형적인 패턴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1987>에는 동아일보가 전두환 정권이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기사를 쓰라는 보도지침을 거부하고 고문치사에 대한 진실을 기사로 게재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을 지나오면서 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5공 때의 보도지침이 되살아난 것 같은 정권 옹호와 진보 비판 내지는 탄압 기사를 쏟아내 왔습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우리 언론이 보여준 무분별한 유족 인권침해 기사와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신변잡기성 옹호 기사는 과연 87년 이후 언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에 대해 회의를 하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시위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2016년 9월 결국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는 사망원인을 ‘병사’로 발표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백남기 농민의 사망이 머리에 입은 손상이 주원인이었기 때문에 ‘외인사’가 옳다는 의견을 밝혔지만, 백선하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직사 발포한 물대포가 사인인 ‘외인사’와 심폐 정지를 이유로 한 ‘병사’는 당시 박근혜 정권이 받는 부담에서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당시 백 교수의 발표는 전문가집단의 양심과 비윤리성에 대한 비난과 함께 커다란 사회적 반발을 불러 왔습니다.


 30년 전 같은 의사였던 황적준 박사가 쇼크사로 하라는 공안정권의 엄청난 압력에도 불구하고 부검 후 박종철의 사인을 사실대로 고문에 의한 사망으로 고집한 것과 비교하면 백 교수의 ‘병사’ 발표는 절로 부끄러워지는 이 시대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신분, 어쩌면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느긋한 일상을 보낼 수도 있었던 평범한 교도관들은 한 젊은이가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한 진실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위험한 역사적 사명을 기꺼이 맡아냈습니다. 이 장면을 영화로 보면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정보기관의 댓글 사건과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저질러진 공무원들의 국정농단이 떠올랐습니다.


 거창한 사명감과 남다른 정의감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상식적인 판단과 공무원으로서의 평범한 직업적 윤리만 생각했더라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던 범죄행위였지만 30여 년이 지난 후의 일부 공무원들은 너무나 쉽게 국민을 배신하는 조직적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30년 전에는 위에서 언급한 직업군들이 모두 정의로웠고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는 식의 이분법으로 얘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나 지금이나 어느 조직에서든 정의로운 개인도 있고 부패하거나 기회주의적인 개인도 존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사의 발전이란 것은 어쩌면 과거의 잘못이 현재와 미래에 재발하지 않거나, 과거의 훌륭한 점은 현재에 더 발전된 모습으로 계승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2016년 연말과 2017년 초반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 혁명은 1987년 민주 대항쟁의 훌륭한 계승이자 역사적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전문가와 공무원조직의 3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면에서 후퇴했거나 혹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씁쓸하기만 합니다.


 1987년 이후 30년간 세상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1987>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어떤 분야는 참 변하지 않고 오히려 후퇴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것이 지난 보수 정권 9년간의 전횡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시스템 자체가 가진 한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와 경제, 교육, 인권 등 정말 매듭을 풀기 어려운 사회문제를 두고 2018년은 1987년 이후 30년 체제가 가진 모순과 한계를 극복하는 시작의 한 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1987>에는 여주인공이 가수 故 유재하의 노래 <지난날>을 듣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 노랫말처럼 지난날의 추억 속에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하루 더욱 새롭게 말입니다.


...........
그리움을 가득 안은 채
가버린 지난날
잊지 못할 그 추억 속에
난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보리
하루하루 더욱 새로웁게
그대와 나의 지난날
<유재하 ‘지난날’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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