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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호] 삼성 이재용과 회복적 정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18 17:59
조회
404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세계적 회사라는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권력과 유착하며 작은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장악해온 한국식 재벌의 전형을 보여주는 회사다. 이재용에게 뇌물죄 등으로 내린 징역 5년형이 턱없이 약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는 무죄이니 당장에, 적어도 집행유예로라도 석방해야 한다는 ‘삼성교’ 신자들도 있다. 한국 사회 어디나 거기서 거긴데 굳이 감옥까지 보낼 거야 뭐 있냐는 현실 타협파들도 제법 된다. 하지만 ‘삼성 이재용’이 아니었다면 형량은 더 높았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 점에서 법원도 상당 부분 현실 타협적이다.


  그러면 형량을 높여 수감하면 그것으로 모든 게 마무리되는 것일까. 물론 그렇게라도 될 수 있다면 한국 사법의 현실도 한결 정의에 가까워지는 일일 것이다.(‘정의’나 ‘사법’이나 영어로는 다 justice다.) 그럼에도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없겠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볼 것들이 있다. 불교의 ‘공업(共業)’과 기독교계의 ‘회복적 정의/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 개념이다.


  개인의 행동은 개인의 흔적과 자취를 남긴다는 ‘별업(別業)’에 비해, 연기적(緣起的) 세계관에 기반한 ‘공업’은 사람은 관계적 존재이니 누군가의 범죄에는 사회적 책임, 나아가 크든 작든 나의 책임도 얽혀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개체 중심적 사유를 넘어서는 지혜로운 통찰이다. 물론 사회 질서 및 사법 체계 자체가 전적으로 개체 혹은 개인 중심적인 마당에, 어떤 행위의 가장 주체적인 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재용을 법적 정의와 절차에 따라 훨씬 더 정당하게 심판해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공업은 같은 사건 안에 다른 원인과 책임은 없는지 좀 더 성찰하도록 이끈다. 이재용의 책임은 이재용에게 묻되, 거기에 연루된 모든 이들의 책임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메노나이트 기독교계에서 ‘회복적 정의(회복적 사법)’라는 개념을 제시한 이래 점차 확산 중이다. ‘회복적 정의’란 어떤 사건의 피해자, 지역사회, 가해자가 피해 회복 프로그램에 함께 개입해 폭력에 의한 피해를 바로잡고 범죄의 예방과 치유를 시도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이 끼친 의미를 깨닫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기존의 국가주도형 징벌적 사법체계의 한계를 직시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범죄의 사회성을 의식하는 가운데, 가해자와 피해자를 다시 지역사회에 통합시킬 수 있는 인간적 가능성을 더 확보하기 위한 시도다.


  한국에서도 청소년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자를 중심으로 회복적 정의가 점차 시도되고 있다고 한다. 법적 절차에 따라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되, 차가운 법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자기 고백이 가능한 청소년기에서부터 시도해보자는 취지에서다. 회복적 정의는 범죄의 판단을 국가의 법적 체계에만 맡기지 말고, 사건에 연루되고 관계된 이들이 서로의 책임과 상처와 아픔을 같이 나눌 때, 잘잘못에 대한 개인의 주체적 성찰이 좀 더 확보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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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물론 삼성 이재용이 양심과 법에 따라 자신의 잘못을 쉽사리 고백할 리는 없을 것이다. 이재용과도 연루된 박근혜 역시 그럴 것이다. 박근혜와 연루된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재의 법정은 이들에게 적극적인 자기변호의 장으로 보장된 공간일 테니, 법정에서는 자기중심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변명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잘못을 개인에게만 돌리고, 잘못에 대한 처분을 차가운 사법체계에만 맡기기에는 인간의 뜨거운 욕망이 전 사회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좀 더 필요하다. 인간의 주체적 성찰의 영역을 확보하고 확대하지 않고서는, 범죄마저 정치나 권력 탓이라 돌리는 변명이 계속되겠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맥락에서는 그럴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지만...


  잘못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명백히 묻되, 기왕 벌어진 모든 일에서 더 많은 이가 ‘양심적’ 책임을 느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급기야 법정도 범죄자 개인의 책임을 계량화하는 데 함몰되지 말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관계자들이 모두 토론하는 공간으로 변모해야 한다. 죄책도 판사만이 아니라, 결국은 모두가 묻고, 양심상으로는 모든 이가 책임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실제로 세상만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개인적 선이나 온전한 개인적 악은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회, 경찰, 검찰은 그런 거 못할 테니, 건강한 시민단체나 종교인들이 ‘공업’에 기반한 ‘회복적 정의’의 차원에서 그런 자리와 문화를 일부나마 마련하고 확대해갈 수 있다면 좋겠다. 어떻든 법, 정치, 권력보다는 인간이 우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재용과 박근혜, 나아가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등에 대한 법정 선고가 엄중하게 내려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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