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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호] 경계(境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10-23 15:54
조회
374

이희수/ 회원 칼럼니스트


 지난 8월, 한낮에 휴게실에서 잠들었던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숨졌다. 폭염경보가 내린 무더운 날이었다. 계단 아래 공간에 만든 한 평 남짓한 방에는 창문도 에어컨도 없었다.


 폭염은 자연재해다. 적어도 단기간 내에 치솟는 온도를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피해는 사회적이다. 그날,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었지만 쾌적한 실내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존 머터는 『재난 불평등』의 서문에서, 자연과학자인 자신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에서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 지점을 ‘파인만 경계(Feynman line)’라고 명명한다. 자연재해를 단순히 자연현상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과학적으로도 접근할 때, 예방과 복구 과정에서 야기되는 불평등을 간파하고 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지진, 홍수, 가뭄 등 엄청난 수의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영향을 끼치는 일들을 사례로 들지만, 재난 상황에서 파인만 경계에 서게 하는 일이 비단 그런 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비극으로 새삼 확인하게 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마이클 샌델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존에는 돈으로 거래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사회적 재화에까지 시장논리가 개입하며 그 영역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만큼, 가난한 사람이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일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관계없이 그가 누릴 수 있는 편익을 일률적으로 평준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가장 열악한 극단에 있는 사람들을 기본권의 경계 밖으로 내모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것은 가진 정도에 관계없이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돈이 없어서, 배운 게 없어서, 인맥이 없어서 겪는 불이익이, 그 창고 같은 공간에서만 쉴 수 있고, 쉬다가 너무 더워 숨지는 정도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해야 할 사람은 서울대학교 구성원들만이 아니다.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지만,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그것의 존재를 망각하는”, 조지 오웰이 말한 그 사람이 바로 나다. 어떤 의미에서는 역시나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당사자인 동시에, 그런 다른 많은 사람들에 대해 잊고 사는.


 그렇기에 이번 참사를 비롯한 사회적 재난과 불평등의 원인을 돌이켜 생각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반성해야 할 대상에 꼭 포함시켜야 할 것 또한 ‘나’다. “당신이 땀 흘리며 닦은 바닥을 무심히 밟고 다닌” 그 캠퍼스의 학생처럼, 나 역시 누군가의 노동에 힘입어 그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또 그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채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잊어버려 부끄럽지만, 그들은 모두 나의 경계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희수 : 저는 산책과 하얀색과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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