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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호] 촛불이 이겼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9-26 15:23
조회
319

서동기/ 회원 칼럼니스트


  촛불의 파도를 떠올린다. 청각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해 함께 손으로 이야기 나누던 광장. 나이, 성별, 지역 등 우리를 가르던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어둠에 대항하던 작은 불빛들.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각자의 꿈을 나누던 광장. 하지만 과연 촛불이 이겼나? 지난 대선의 장면들을 복기해본다. 대선기간 한 신문사에서 비극적 죽음이 있었다. 우리시대의 상식파를 자처하는 ‘합리적’ 시민들이 죽음을 비웃고 신문사를 증오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의 지지후보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들의 광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죽음에 익숙해진 탓일까. 비극 앞에 내뱉어진 그들의 발언들은 끔찍했다.


  ‘동성애가 싫다,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1등 후보의 실언에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복잡다단한 정치의 현실을 알지 못하는 공상적인 ‘입진보’가 되었다. 시민들의 사과 요구는 지지후보를 흠집 내고 자기 몸집을 키우려는 어떤 세력의 정치 음모가 되었다. 우리시대의 합리적 시민들은 당사자들에게 ‘적폐 혁파의 대의’ 앞에 함부로 끼어든 ‘얼치기’들에게 현실정치의 냉혹함을 가르치고 증오를 퍼부었다.


  잠시 상상을 해보자. 성주에서 진행 중인 굴욕에 작은 소설을 하나 더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경찰이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시민의 차량 창문을 깨트리고 미군에게 길을 터준다. 그 모습을 트럭에서 비웃으며 촬영하던 미군이 ‘젠틀’하게 대화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하하, 동양인들은 참 싫지만, 우리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은 반대한다고. 동양인 차별은 반대하지만 동양인과 혼인 합법화는 좀 더 생각해봐야지.” 당시 문제의 발언에 동양인을 대입하여 생각해보면 당사자들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그들은 분노의 항의에 대꾸하지 않는다.


20170519web01.jpg


  사진 출처 - 필자


  촛불의 핵심 정신은 단순히 박근혜 따위의 탄핵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광장의 함성은 누군가 눈앞의 문제들을 대신 해결해줄 것을 요청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광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요구를 말했고 시민들은 서로 귀 기울였다. 하지만 광장의 목소리는 인물들의 정치와 선거에 지워졌다. 촛불의 목소리는 구세주에 과도하게 몰입한 광신도들의 부흥회 소리에 가려졌다. 지난 10년의 적폐에 대항해 ‘대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데 실없는 소리를 던지고 있다고? 그렇다면 감히 말한다. 당신들의 대의 때문에 촛불혁명이 망한 것은 아닐까. 다시 시작이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제 다른 차원의 어둠에 다시 새로운 촛불을 들어야 한다.


서동기 :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읽고 묻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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