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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호] 아이엠 그라운드 불행배틀 하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2-23 13:49
조회
325

김아현/ 인권연대 간사


 청소와 정리정돈에 쓰는 시간이 어림잡아 하루 평균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가량이다. 늘상 손에 달고 사는 핸디형 무선청소기 사용시간의 합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요리를 하거나 세탁기를 돌리는 날에는 청소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난다. 욕실과 싱크대 수전이나 거울에 생기는 물자국, 내 몸의 일부이기를 포기하고 중력에 순응한 머리카락들은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침구와 카펫은 UV 살균청소기를 이용해 먼저 먼지를 빨아들인 후 편백수를 뿌려 2차 소독을 한다. 베란다 창틀에 쌓인 먼지도 이삼일에 한 번은 털고 닦아야 한다. 주방 한 켠의 이동식 팬트리도 매일 점검한다. 햇반이나 3분 카레 같은 식료품 포장이 일정한 배열을 이루며 각이 잡혀 있어야 보기에 좋고 흐뭇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 먹고 마시는 중에도 내내 배달음식 포장용기를 정리하고 바로바로 설거지를 하느라, 제발 좀 가만 앉아있으라는 볼멘소리를 듣기도 한다. 강박을 놓으면 좋겠다는 진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 이 강박 때문에 소비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면 책을 몇 장 더 읽을 수도, 잠을 조금 더 잘 수도, 산책을 할 수도, 상대와의 대화에 더 깊이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건 다, 내가 혼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너다 빠르게 달려오는 차에 치여 중상을 입거나, 깊이 잠든 사이에 집에 불이 나거나, 그도 아니면 낮은 확률로 고독사 할 경우를 대비해서다. 물건이 될지 육신이 될지 모르는 뒤처리를 해주기 위해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낡은 집에서 지저분하게 살았네’라고 한 마디라도 한다면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다(착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은데 지저분하다는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다). 집안의 상태를 보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듣고부터였다. 전적으로 나만 통제할 수 있는 공간과 상황은 어쨌거나 정돈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게 내 존엄을 유지하고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해서다.


 고독사에 대비해 청소를 열심히 하고 살자는 캠페인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오늘은 사회가 도통 신경 쓰지 않는 어떤 존재들의 작은 불행, 혹은 불편에 대해 ‘당사자’로서 말을 하고 싶다. 보통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관찰자 또는 대변자를 (감히) 자임하며 활동을 하고 말을 해 왔지만, 어쩌다 한 번 정도는 당사자 자격으로 불평해도 좋지 않나 싶어서다.


 얼마 전 주택청약을 해지했다. 40대, (앞으로 당분간 결혼할 계획이 없는) 미혼, 무자녀, 1인 가구는 청약 가점에서 현실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우니, 차라리 그 기회비용으로 다른 것을 하라는 기사를 읽고 홧김에 저지른 일이다. 아주 작고 귀여운 목돈에 앙증맞은 이자가 붙어 통장에 들어왔다. 그날은 4캔 만 원 맥주를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뭐, 사실, 엄밀히 말하면 내 집 마련을 염두에 두고 하던 청약저축도 아니었다. 내 집을 갖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임대주택 신청 등을 고려해 막연한 마음으로 유지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집을 갖지 않고, 빚도 지지 않고, 분수에 맞게, 그러나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보려는 포부도 ‘내가 속한 집단 또는 계층’에게는 언감생심이다.


 40대, 미혼, 무자녀인 1인 가구가 중위소득보다 아주 조금 더 번다면, 한국사회가 설계한 주거 복지망을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대학생, 신혼부부, 만 19~39세의 법적 청년, 주거급여수급자, 고령자에게 입주자격이 주어지는 ‘행복주택’도, 기초생활수급자나 국가유공자(또는 그 유족), 일제 하 일본군위안부나 북한이탈주민이 신청할 수 있는 ‘영구임대주택’도 당연히 신청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 입주자격의 1인 가구 기준소득금액인 185만원보다는 더 벌기에, 내 생활반경 저 멀리멀리에 있다는 국민임대주택도 당연히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생계지원 국면에서 2만원쯤 지원해주던 통신비도 만16~34세, 만 65세 이상의 국민만 지원 대상이었다. 물론 이것은 바꿔 말해, 내가 속한 계층이, 대학생이나 19~39세의 청년보다는 확실히 더 누리고 있으며, 수급을 받아야 할 만큼 힘든 상황은 아니라고 사회가 판단한다는 거다.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할 말이 남은 이유는, 누가 더 불행하고 불편한지 겨루고 증명을 받고서야 비로소 사회 안정망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정상인가 하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사진 출처 - freepik


 202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은 1인 가구 구성원이다. 1인 가구의 한 달 평균 생활비는 156만원이지만 나이대별로 지출규모가 달라지는데, 40대 1인 가구는 평균 185만원을 생활비로 쓴다. 국민임대주택에 입주 신청이라도 하려면 중위소득에 한참 못 미치는 185만원을 벌어야하는데 그마저도 생활비로 185만원을 쓰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집을 사거나 투자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임대료를 내며 평생 무주택자로서 부동산 전쟁에 동참하지 않으려면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불행을 증명하는 배틀에서 이기거나, 저축은 포기하고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며 미래를 저당 잡히거나.


 여기까지가 1인 가구 전반의 하소연인데, 조금 더 들어가 40대 이상의 ‘여성’이 되면 이야기가 조금 더 슬퍼진다. 임금근로 소득과 관련해 통계청이 배포한 가장 최근 자료인 2017년 기준으로 보자. 우리나라 임금노동자의 평균소득은 287만원이고 중위소득은 210만원이다.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해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수준을 보이는 3~40대 가운데, 40대 남성의 평균소득은 416만원이고 여성은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251만원을 번단다. 세대 불문, 파이 불문, 남성소득 대비 여성소득 수준이 60%선인 것은 너무 익숙한 이야기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저소득 중장년 여성쯤 되면, 흡사 벌을 받는 기분이 된다. 그럼에도 차마 쉽게 징징대지 못하는 것은, 더 힘든 사람들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뿐이다.


 작고 귀여운 청약저축 해지금에 딸려온 앙증맞은 이자로 4캔 만 원 맥주를 사들고 들어와 [구해줘 홈즈]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일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티비를 끄고 분을 삭인다. 그리고 상상한다.


 홀로 늙고 병들어도 나락으로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면 어떨까. 이 나라 국민인 이상 어떤 경우에도,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촘촘하게 지켜주는 공동체를 경험해봤다면 어떨까. 자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그 자손세대의 미래를 난도질하는 부동산 전쟁이 없다면 어떨까. 열심히 번만큼 납세를 하고 부의 재분배에 기여한 사람에게, 삶의 질을 구성하는 다른 요건으로 되돌려주는 사회라면 어떨까. 그 세상에서도 ‘내가 더 불행하다’고 손을 들기 위해 옆 사람의 팔을 자르거나, ‘나도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을과 병과 정들의 배틀이 이어지고 있을까.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고 손을 들지 않으면 아무도 보아주지 않을까. 언뜻 상상하기론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글쎄, 그런 세상은 경험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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