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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호] 무자비한 사회, 죽음을 방치하는 한국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8-30 11:45
조회
312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전에도 알고는 있었다. 용산에서 화마에 쓰러져 가는 철거민들에 대해서도, 잊을 만 하면 생기는 작업현장의 사고로 희생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사실은 우리 모두가 철저하게 무관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건이 되고나면 그나마 여기저기서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도 얘기해 보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아니, 이 나라는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 살기에 너무 바쁜 세상이므로.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하는 것 같다. 매일 30도를 훌쩍 넘는 혹서가 계속되는 와중에, 서울에서 가장 번잡하다는 강남역 사거리 전봇대 위에 한 사람이 단식농성 중에 있다. 그는 이미 25년째 삼성과 투쟁 중이다. 그의 나이가 이제 60이 되었다 하므로 35세 때부터 지금까지, 말하자면 오롯이 한평생을 싸워온 셈이다.


 그의 주장은 단순하다. 지난 날 자신이 부당해고를 당했으므로 삼성은 이에 대해 사과하고 자신을 복직시켜 달라는 것이다. (이제는 그의 정년이 지났으므로 사실 복직은 불가능하다. 남은 것은 삼성의 책임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벌어진 삼성의 각종 불법행위 – 그 자신에 대한 감금과 협박, 그의 아내에 대한 성폭행 미수 및 그의 가족에 대한 협박 등 – 의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를 처벌해 달라는 생각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런 요구까지는 지나치다고 생각해서 벌써 포기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절박하고 한 서린 그의 외침을 우리 모두는 듣지 못한다. 매일, 매시간 수만 명의 사람이 오가는 강남 사거리에는, 붉은 글씨 선명하게 내걸린 현수막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매달린 그의 존재를 깨닫는 사람이 별로 없다. 투신에 대비해 에어매트가 깔려있고 한편에는 경찰차량이 항시 대기 중이지만, 누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저 평소대로 한쪽에서는 즐기고 한쪽에서는 일을 하며 바쁘게 오갈 뿐이다.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사람이 먼저’라는 현 정부가 가져야 할 태도인가. 청와대는 물론 노동부의 어떤 관료가 현장에 와 보았다거나 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한일 갈등으로 북핵문제로 바쁘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풀기 어려운 현안들이 늘 산적해 있음을 잘 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한 사람이 목숨을 내걸고 주장하는 이 상황이 이렇게 무시 되어도 되는 것인가. 혹 어쩌면 그 이유가 이 사람이 싸우고 있는 상대가 ‘삼성’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것인가.



서울 강남역 사거리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기둥 위 김용희씨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21


 언론도 마찬가지다. 농성이 시작된 지 40일이 지나도록 주요 일간지와 방송들은 이 뉴스를 전하지 않는다. ‘민중의 소리’나 ‘매일노동뉴스’ 같은 조금은 특수한 매체에 몇 번 언급된 것이 고작이다. 그의 주장이 들을 만한 가치가 없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이 없다고 생각해서인가.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잘못 되었다고, 자신은 노조를 조직하려다가 해고당했다고, 그래서 명예회복과 복직을 원한다고 말하는 그의 절규는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만일 언론이 조금만 도와준다면 그의 외로운 싸움은 성공할런지도 모른다. 아무리 삼성이라도 다수의 비난을 견디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은 이렇게 전개되지 않는다. 모두가 침묵한다. 못 본 척 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보지 않는다. 다시, 무엇 때문인가. 솔직히, 한국 최고의 기업이자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은 아닌가. 대한민국 주요 언론사의 최대 광고주로서 그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삼성의 경제력 때문 아닌가. 심지어 ‘그래, 삼성이 조금 잘못했다 한들 어떡하겠어.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삼성은 잘 돼야지. 이렇게 어려운 경제상황에’ 라고 생각하는 우리 모두의 현실주의 때문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그의 생명은 타들어간다. 평소 79kg이었던 그의 몸무게는 이제 50kg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온몸의 지방과 근육은 이미 다 소실되었으며 이제 최소한의 생명유지가 쉽지 않은 상태라고 의사들은 경고한다. 이런 사람을 방치하는 사회, 정부와 언론, 나아가 우리 모두는 죽음의 (어쩌면 살인의) 방관자이다. 아니, 공모자라고 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삼성에게 호소한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삼성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 추상적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인권경영’을 운위하기 전에, 뜨거운 폭염에 숨조차 내쉬기 어려운 한 노동자의 생명을 건 외침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떤가. 백번 양보하여, 삼성의 주장대로 그가 예전에 일하던 회사가 이제는 더 이상 삼성에 속해 있지 않으므로 삼성으로서는 어떤 법적 책임도 지기 어렵다는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지난 날 그에게 가했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은 남는 것이 아닌가. 세계적인 기업으로서, 힘없는 한 노동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절대강자로서 최소한의 사과와 위로를 할 생각은 없는가. 이나마 가능한 시간은 이제 얼마 되지 않는데 말이다. 도대체 이미 공룡처럼 커져 버린 이 거대기업은 누구의 것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제 삼성이,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답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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