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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호] 소년 법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3-03 12:10
조회
667

윤동호/ 국민대 법학과 교수


 사람이 범죄로 나아가면 국가가 나선다. 범죄에 대한 국가의 대응이 범죄를 범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국가형벌권은 평등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년법은 만 10세-18세의 사람을 ‘소년’이라 부르고, 이들의 범죄는 어른의 범죄와 다르게 처리한다. 소년의 건전한 성장을 돕기 위한 것이다. 소년보호에 목적이 있다.


 소년의 범죄는 어른의 범죄와 다르지 않지만, 소년은 어른과 다르다. 소년은 어른이 설계한 정치적·사회적·문화적·교육적 환경에 종속되어있다. 소년의 범죄에 대해서 혼자 온전히 책임지도록 하는 것은 어른답지 않다. 소년에게 의미있고 합리적인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어른의 책임이 더 크다. 소년법은 어른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소년법정이 소년법의 이념에 따라 소년을 보호하고 있는지, 어른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소년재판은 소년보호재판과 소년형사재판으로 구별된다. 소년보호재판을 담당하는 소년법정에서는 보호자감호위탁,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 보호관찰, 보호시설감호위탁, 소년원송치 등의 보호처분이 선고된다. 소년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형사법정에서는 형벌이 선고되는데, 형벌의 종류에는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 9가지 밖에 없다.
2018년에 검사가 처리한 소년사건은 약 53,000건인데, 이 중 약 50%는 불기소처분(선도조건부 기소유예 포함)으로 종결했고, 약 40%는 소년법정으로 송치했으며, 나머지 10%를 형사법정에 공소제기를 했다.


 범죄로 나아간 만 10세-13세 소년은 흔히 촉법소년(觸法少年)으로 불린다. 소년법이 규정한 ‘형벌 법령에 저촉(抵觸)되는 행위를 한 소년’을 줄여서 표현한 말이다. 촉법소년은 형사미성년자이므로 형사법정의 재판을 받을 수 없다. 경찰은 촉법소년을 검사에게 송치할 수 없고, 소년법정에 송치해야만 한다.


 범죄를 범할 우려가 있는 소년을 우범소년(虞犯少年)이라고 한다. 우범소년도 경찰의 송치를 받아서 소년법정의 재판을 받는다. 2018년에 소년법정은 경찰에서 직접 송치받은 약 8,300건도 처리해야 했다.


 소년법정은 형사법정보다 대략 5배 정도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소년법정의 재판 일정은 환자가 많은 대학병원의 진료처럼 3분 단위로 잡힌다. ‘3분 재판’이란 말이 딱 맞다. 사건 처리에 부담이 너무 큰 소년법정은 소년에게 어떤 범행을 해서 여기에 서게 되었는지 충분히 설명하고 납득시킬 시간을 갖기 어렵다. 소년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고 그 말을 차분히 듣기까지 하면 그만큼 사건 처리가 더 지연된다.


 여중생 3명이 학기 초에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교실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장난을 치다 그 중 1명이 문 앞에서 넘어지면서 치아파절사고가 발생했다. 이듬해 초에 피해자의 고소와 경찰 조사 후에 그 중 1명만 ‘과실치상’의 촉법소년으로 소년법정에 송치되었고, 그 사건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경찰은 합의에만 관심을 가졌다. 심지어 피해자가 원해서 열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합의를 강요하다시피 했다.


 소년법정도 다르지 않았다. 소년보호에는 관심이 없었다. 우연한 사고인지, 과실치상죄인지 따져줄 것이라는 기대는 쓸모없었다. 소년법정은 법무부가 운영하는 청소년비행예방센터에서 3일 동안 비수용(非收容) 통학형 상담조사를 받게 했다. 말이 조사이지 대부분 교육이었고, 그것도 과실범과 무관한 폭력예방, 스마트폰사행성게임중독예방, 중독예방, 성(性) 등에 관한 것이었다. 2일 차 교육 중에 소년법정이 실수로 그 센터에는 있지도 않은 프로그램인 4일간 상담조사를 명령한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상담조사 후 곧 열릴 예정이던 소년법정의 심리기일이 갑자기 직권으로 변경되면서, 담당 판사도 변경되었다. 예정된 기일에 심리를 종결하고 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담당 판사가 해외연수를 떠난 것이다. 더 뜻밖인 것은 그 이후 열린 심리에서 변경된 판사가 피해학생의 부모와 변호인의 참여를 허용하고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면서 화해를 권고함으로써 재판은 다시 언제 열릴지 모르는 상황에 빠졌다.


 기가 막힐 정도로 더 놀라운 것은 화해권고절차에 회부한 이후에 또 새로운 해가 오고, 몇 개월이 지난 후 소년법정의 조사관조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출석요구서가 송달된 것이다. 소년법정의 조사관에게 이미 3일 동안 조사를 받았고, 이 사건에 관해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화해도 힘든 상황인데 또 조사를 받느냐고 물었더니, 그러냐고 하면서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할 테니 기다리란다.


 이후 추가적 조사 없이 한 달 후에 심리가 열렸는데, 소년법정이 또다시 피해학생의 엄마에게 진술기회를 부여했고, 이어 퇴정시킨 상태에서 보호자감호위탁처분을 결정했다. 촉법소년이 과실치상으로 소년법정에 송치되어 보호처분결정이 내려지기까지 1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위 사고에서 촉법소년의 잘못이 무엇일까, 3일간의 조사와 2번의 재판 출석 및 1년 넘게 재판에 연루되는 고통 등은 정당한 것일까. 소년법정의 실수들은 과중한 업무 때문일까.


 무리한 합의를 원하는 부모와 이에 따르지 않은 부모, 그리고 합의를 봐서 빨리 종결시켰으면 하는 경찰과 학교 및 소년법정은 소년보호를 위해 어른으로서 책임을 다한 것일까.


 당사자의 합의에 종속되는 국가형벌권은 정당한 것일까. 보호자가 없는 소년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소년법정에서 훈계는 흔한 모습이라고 한다. 야단치고 겁주고 무릎 꿇리기도 한단다. 소년법정은 형사법정과 달리 비공개라서 그런 것일까. 소년법정이 주는 보호처분은 형사법정이 주는 형벌과 달리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은 은혜와 같은 것이어서 그런 것일까.


 차라리 약식명령을 받거나 공개된 형사법정에서 적법절차원칙에 따라 엄격한 심리를 거쳐서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받는 게 더 좋겠다 싶다. 촉법소년도 검사의 불기소처분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럼 소년법정에 서야만 하는 절차적 고통과 낙인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가정에서 부모의 입장에서 훈계를 하거나 야단을 치면 아이들에게는 모두 잔소리이다. 말로는 아이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부모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아이들도 안다.


 소년법정에 서는 소년은 대부분 마음에 상처가 있다. 평소 칭찬을 들어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 소년을 설득하고 납득시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일단 시간에 쫓기지 않고 그들의 얘기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소년법정이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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