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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호] 덕질러여 일어나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7-22 17:49
조회
426

최유라/ 지구의 방랑자


 함성이 울려 퍼진다. 그들의 후광에 눈을 뜨지 못한다. 심지어는 꿈에 나타나 어찌할 바를 몰라 소리만 지르는 경험도 하게 된다. 인생의 팔 할이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를 이르는 말)인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다. 최근에는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SLEEQ)에 빠져있다. Mnet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인 “GOOD GIRL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에 래퍼 슬릭이 나온다.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이 되면 벌써 목요일만 기다리게 된다. 방송이 목요일에 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 떠돌던 포스터에서 슬릭을 발견했을 때는 당혹감이 먼저 방문했다. Mnet이라니. 과연 괜찮을까 하는 염려였기 때문이다. 우려의 시선으로 TV 화면을 바라보았었다. 첫 화에서 ‘크루 탐색전’을 했다. 크루 탐색전이란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음악을 선정하여 무대 위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음악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음악적 색깔을 지녔는지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이다. 아티스트 슬릭은 이날 자신의 TITLE 곡 중 하나인 “HERE I GO”를 무대 위에서 선보였다. 이 음악을 Mnet에서 보게 될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LGBTAIQ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는 무대의 장면을 보며 많은 이들이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나 또한 무대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더 주목할 것은 가사다. “고민하지 / 어떤 게 예술가의 삶 / 누구 위에 있기 위해선 존재하지 않아 / 고민하지 아무도 죽이지 않는 노랫말 / 그 앞에선 어떤 게임도 / 시작 버튼 눌리지 않아 / Here I go Here I go here I” 여성 혐오 가사로 음악을 발매하기까지 한 몇몇 음악인들을 향한 일침일 것이다. 많은 예술인이 이 공연을 보고 심장이 덜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생각이 든 이유에는 국립창극단에서 올린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가 그 문제의 중심에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덕질의 반경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그중에는 국립창극단 소속의 국악인도 있다. 팬클럽 회원인 나는 팬클럽 사이트에 들어가 종종 공연 스케줄을 확인한다. 그렇게 국립창극단과의 인연을 몇 년째 맺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큰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2018년도에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를 처음으로 봤었다. 극 중에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장면이 꽤 오래 나왔었다. 불편함과 내 연예인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었다. 스스로 길티플레져(guilty pleasure,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행동, 떳떳하지 못한 쾌락)가 되고 말았다. 2019년 또 올려진다는 소식에 덕질 주인공을 보러 간다는 생각만으로 마지막 공연을 약 두 달 전에 예매를 해두었다. 망각의 존재인 나는 그 1년 새 그 장면은 떠올리지도 못한 채 공연 당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2019년 12월의 어느 날 한 작가님의 극 중 페미니스트 비하 장면에 대한 문제 제기로 다시 이 문제가 불거졌다. 언론에 보도되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사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심지어 공연은 성황리에 끝난 것으로 기억한다. 극 중 문제 장면은 이렇다. 페미니스트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을 갈라 싸움을 유도하는 존재로 그려졌고 이에 “민족이 힘을 합쳐”라는 대사로 페미니스트를 모독한다. 문제 제기에 국립극장에는 이와 같은 답변을 보내왔었다.


 “마당놀이는 풍자와 해학, 비틀기를 중심으로 시대정신을 담아내며 지난 40년간 사랑받아왔습니다.” 그 뒤로는 “그중 ‘춘풍이 온다’는 조선 후기의 소설 ‘이춘풍전’을 현대에 맞게 각색한 작품으로 가부장적 사회를 전복시키는 여성 주인공의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라는 답변이었다. 그 후 2차 답변으로 “극적 과장과 비틀기를 중심으로 마당놀이에서 자주 사용되는 연출 문법”, “여성 주인공의 활약을 통해 양성평등의 가치를 담고자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받았다고 작가님이 글을 공유해주셨다.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어 자신이 ‘평등’의 가치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가로 정서적 포만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심지어는 ‘성평등’이 이야기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양성’에 갇힌 답변에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답변에 화가 나 예매를 취소해버렸다. 결국 국립창극단의 사과는 없었다. 아마도 또 똑같은 내용으로 극이 올려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예술의 이름으로 휘둘려지는 폭력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더라면 연출진은 분명히 처벌받았을 것이다. 차별과 혐오가 예술로 포장되는 현실 앞에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용기로 맞서는 아티스트 슬릭의 행보를 응원한다. 누구도 죽지 않는, 누구도 다치지 않는 예술의 힘을 믿으면서 나는 오늘도 덕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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