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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호] 개와 늑대와 검찰의 시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1-23 10:54
조회
585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국 검찰의 역사는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나뉜다. 목줄을 세게 쥐는 권위주의(또는 독재) 정부에서는 충직한 개였다가, 풀어 놓아주는 리버럴 정부에서는 야생의 늑대가 된다. 개의 시간에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지만, 늑대가 되면 스스로 본능에 따라 살아간다. 생존 본능이라는 새로운 주인을 섬기는 것이다. 생명 유지와 번식을 위해 필사적으로 먹이를 사냥하고 목숨을 건 결투도 피하지 않는다.


친검이냐 반검이냐


 윤석열이 이럴 줄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윤석열을 잘못 본 것이다. 윤석열은 개의 시간에도 늑대 유전자를 숨기지 않던 인물이다. 당시 수뇌부가 개처럼 정권에 충성할 때 윤석열은 주인 없는 늑대처럼 행동했다. 그걸 현 정부 지지자들이 자기편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윤석열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윤석열은 검찰 편이다.


 개의 시간에는 늑대가 드물지만, 늑대의 시간이 되면 죄다 늑대가 된다. 늑대의 시간에 늑대가 되는 건 쉬운 일이다. 가히 합법 쿠데타라 할 만한 작금의 검찰 행태를 윤석열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시각은 그래서 근시안적이다.


 늑대가 된 검찰의 판단 기준은 여당이냐 야당이냐,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다. 친검이냐 반검이냐다.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친검이고, 검찰 개혁 의지를 꺾지 않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반검이다. 국회 패스트트랙 폭력 행사를 비롯해 자유한국당에 대한 수사를 검찰이 열심히 하지 않는 이유는 검찰이 보수여서가 아니라 자유한국당이 검찰 편이어서다. 자유한국당과 검찰의 적폐연대는 이미 작동중이다.


이기적이고 자의적인 수사


 늑대가 된 검찰에게 가장 큰 천적은 이른바 ‘검찰개혁 세력’이다. 그대로 뒀다간 검찰이 사냥을 못하게 되거나 번식이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게 조국은 호랑이 새끼 같은 존재였다. 더 크기 전에 물어 죽여야 했다. 조국 하나를 잡기 위해 청와대와 총리실, 기획재정부, 경찰청 등 가리지 않고 들이닥쳤다. 전국의 검찰 조직을 총동원해 넉 달 동안 뒤진 끝에 고작 ‘감찰 무마’ 직권 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채용 비리 혐의를 받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에게는 구속영장의 ㄱ자도 꺼내지 않은 검찰이다. 표적수사이자 문어발식 별건 수사일 뿐 아니라 친검 편파 수사로서 검찰 흑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사건의 경우 잘만 하면 ‘검찰개혁 사령부’에 해당하는 청와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다고 검찰은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경찰이라는 잠재적 경쟁자를 노린 다목적 수사다. 경찰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별건에 별건의 가지를 쳐가며 두고두고 관련자들을 괴롭힐 것이다. 각각의 유죄 여부는 검찰에게 중요하지 않다. 한국 검찰은 수사 착수만으로 유죄 심증을 갖게 하는 언론 환경을 갖고 있다. 의혹 제기만으로 목적의 절반을 이룬다. 물어뜯기도 전에 먹잇감은 만신창이가 된다.


 이렇게 탈탈 털면 먼지 하나라도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문제는 이 모든 검찰의 무리한 행위가 합법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제어할 수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검찰의 의도는 불순하지만 입증하기 어렵고, 합법적 수사를 통해 불법행위를 밝힌다는 결과만 남는다. 검찰은 이렇게 국민을 ‘합법 딜레마’에 빠뜨려 놓고 제 밥그릇 챙기는 데 국민이 위임한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나쁜 악덕은 검찰 수사가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이건 지금까지 우리가 숱하게 봐왔던 검찰의 제식구 봐주기나 내로남불과는 차원이 다른 최악의 상황이다. 검찰이 이렇게 대놓고 조직 이기적이고 자의적인 수사를 무리하게 할 수 있는 빈틈이 우리 민주주의에 존재하는 것이다.


‘상당성의 원칙’ 현저히 위배한 수사


 나는 윤석열과 검찰을 이 시대의 난신(亂臣)으로 규정한다. 윤석열 검찰은 조선시대 예송논쟁에 비견할만한 디테일을 들이대며 나라를 어지럽히고 국정을 무력화하고 있다. 유재수 전 금융위 국장 감찰 중단이 청와대 업무상 정당한 판단인지 직권남용인지가 이렇게 떠들썩하게 나라를 뒤흔들어야 할 대단한 권력형 비리인가. 검찰도 감히 그렇게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은 또 어떤가. 경찰은 지역 사회에 파다하던 비리 혐의를 수사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울산지검이 김기현 쪽 편을 들어준 것 아닌가라는 의심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제기된 의혹도 아닌 검찰발 인지수사를 남발하며, 형사소송법의 ‘상당성의 원칙’에 어긋난 무리한 수사를 통해 끊임없이 정치적 소음을 양산하고 있다. ‘수사의 수단은 추구하는 목적에 적합해야 한다’는 수사비례의 원칙에 비춰 최근 검찰의 행태는 과도하고 무리하다는 의미에서 상당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예송논쟁이 조선의 국력을 낭비하게 하고 재난을 초래했듯이, 검찰의 무리한 수사 또한 그러하다. 승냥이 같은 주변 열강들과 떼쟁이 같은 북한, 역대 최강의 갈등 증폭기라 할 자유한국당 때문에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나라의 운명은 검찰의 관심 밖이다. 오로지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만 혈안이 된 파렴치한 이기적 집단이 바로 윤석열 검찰이다. 조국 수사의 실무 책임을 진 자는 마치 조폭처럼 휘하 검사들을 떼로 몰고 법정에 나가 재판장을 겁박하는 작태를 벌이더니, 재판부를 상대로 고발장이 제출되자 정식 배당하고 수사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정경심 기소장 변경을 불허했다고 보복 수사를 예고한 것이다. 갈 데까지 간 수사권 남용 실태가 여기 있다. 선출 권력인 대통령도 무시하는데 그깟 법원이 무서울까. 오만방자하고 안하무인의 검찰 행태가 극을 달리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파탄난 검찰 중립(독립) 주장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검찰 독립’ 주장이 유행했다. 주로 검찰(지상)주의자들 입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그런데 법무부의 일개 외청에 불과한 검찰이 독립한다면, 검찰을 누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반문이 생겼다. 결국 선출 권력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는 반론이었다. 그러자 말을 바꿔 정치적 중립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유사 이래 최상급의 독립성을 누리고 있는 윤석열 검찰은 역설적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얼마나 허구적인 개념인지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중립이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검찰은 중립을 보장하는 정부를 향해 칼끝을 겨누는 일이 중립성을 지키는 것인 양 으스대지만, 이건 중립이 아니다. 중립을 보장하는 정부에서만 가능한 ‘시한부’ 중립이다. 결과적으로 중립을 보장할 생각이 없는 자유한국당 세력에게만 편파적으로 유리한 ‘반쪽’ 중립이다.


 윤석열 검찰이 최대치로 키우는 건 중립성이 아니라 편파성이다. 이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구호는 시효가 끝나 버렸다. 중립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은 스스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더구나 검찰이 검찰을 위해서 칼을 드는 친검 편파적 수사는 검찰 중립이라는 가치의 재구성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국민 통제라는 목줄


 일명 ‘개통령’으로 불리는 강형욱씨가 출연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에 주인을 위협하고 물기까지 하는 삽살개가 문제견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덩치가 워낙 크고 사나워서 개가 방문을 막고 있으면 엄마아빠도 드나들 수 없었고, 고등학생 자녀들은 으르렁거리며 몸 주위를 도는 개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강형욱씨는 이 개가 주인들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이 이 집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형욱씨가 제시한 해법은 목줄을 세게 쥐는 것이다. 주인보다 앞서서 달리려고 하거나 입마개를 벗으려고 할 때마다 강씨는 목줄을 세게 낚아채 개를 제지했다. 이 행동을 반복하니 개가 얌전해졌다. 주인의 통제가 먹히기 시작했다.


 과거 정부들처럼 검찰 출신 청와대 민정수석을 내세워 검찰을 장악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만악의 근원에 해당하는 검찰의 권력 독점을 깨고 국민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얘기다. 검찰의 수사권 박탈은 물론이고, 기소배심제(대배심) 등 여러 가능한 대안을 중층적으로 고안해야 한다.


 강형욱씨에 따르면, 주인 행세하는 개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주인의 자세가 하나 더 있다. 개가 으르렁거려도 겁먹지 않는 것이다. 검찰은 기형적으로 발전해온 우리 민주주의의 빈틈이다. 국민의 힘으로 비뚤어지고 터진 곳들을 바로 잡고 메워왔듯이 검찰이라는 빈틈도 메울 수 있다. 으르렁거려도 겁먹지 말자. 늑대는 집안에서 키울 수 없다. 검찰의 새로운 주인은 검찰 자신이 아니고 국민이어야 한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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