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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호] 저 별은 너희의 별 똥별(국립묘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0-29 16:21
조회
436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오래도 걸렸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백만 년. 그렇게 긴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빛나는 영롱한 저 별들. 그 빛을 사모하는 이들은 짙은 어둠을 만들어 놓고 고립되어 오랜 기간 빛의 속도를 감내하며 찾아온 손님들을 가슴으로 맞이한다. 헤라(Hera)의 젖줄은 인간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머나먼 우주의 공간에 한 줄기로 흘러 은하수(Milky way)를 만들었다. 빛 하나 없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에서 길 잃은 나그네는 은하수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걸었고 달빛이 숨어들어간 저녁이면 용이 꿈틀거리다 만들어낸 파도를 보기도 했으며 일 년에 한 번은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오작교를 기다리기도 했다.


별빛은 오랜 우주가 만들어낸 과거가 지구라는 작은 행성의 소년에게 전하는 안부였다. 소원을 빌라고 부추기는 여린 촛불이었고 꿈꾸라고 재촉하는 신의 음성이었다. 별빛의 끌림에 물든 소년들은 별빛이 지구에 도착하는 몇 백만 광년의 시간을 쌓아 역사가 되었다. 인류의 역사란 늘 꿈꾸는 자들의 몫이었다. 별빛이 꿈을 이끌었다면 곧 인류의 역사는 별을 바라보는 소년들의 것이었다. 별빛을 밤하늘에서 몰아낸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불빛이었다. 어둠을 밝혀내는 위대한 발견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사이 별빛이 이끄는 소년의 꿈은 점점 왜소해져 갔다. 별빛의 가치를 대신한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먼저 지구를 살았던 선조들의 이름이었다. 소년들은 이른바 위인이라는 이름의 생애를 배웠고 그들의 업적을 배웠다. 백성들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타 종족의 백성을 정복하는 이름도 더러는 있었지만 대개는 함께 사는 이들의 안위를 위해 재능과 노력과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이름들 이었다.


전 세계에는 현존하는 65억 개의 이름들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이름들이 지나온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중 꿈꾸는 별빛을 대신해 소년들에게 소원을 빌게 해주는 대표적인 이름들을 모아 특화된 추모공간을 만들었다. 그것이 각 나라마다 있는 국립묘지다. 과거 속에 묻힌 이름이 별빛이 되어 미래를 안내하는 나침반이라는 의미다.


장쟈크 루소, 볼테르,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부부, 앙드레 말로.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이들의 이름은 프랑스 국립묘지 팡테옹에서 빛나고 있다. 1791년 4월 4일 미라보 백작의 안장을 시작으로 18세기에 7명, 19세기에 빅토르 위고를 포함해 46명, 20세기에 19명, 21세기 현재 8명의 별들이 잠들어 있다. 가장 최근 안장자는 프랑스에서 낙태를 합법으로 이끈 정치인 시몬 베유와 남편 앙투안 베유(안장일 2018.7.1.)인데 레지스탕스의 조직원으로 나치로부터 고문 받다가 투신 사망한 피에르 부로솔레트(1903.6.25. - 1944.3.22.)가 안장된 2015년 5월 27일 이후 약 3년여 만이었다. 수학자 니콜라 드 콩도르세(1743.9.17. - 1794.3.28.)는 사후 200여년 만에 이곳에 안장되기도 했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 수도원 묘역은 러시아의 국립묘지라고 할 수 있다. 폐결핵 걸린 몸으로 러시아의 변방 사할린 까지 왔었던 대문호 안톤 체홉이 있고 극작가 니콜라이 고골과 그 유명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 니키타 후루시쵸프, 보리스 옐친도 그곳에 묻혀있다. 20세기 최고 발레리나 갈리아 율라노바와 혁명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희극배우 유리 블라지미로비치 니꿀린의 묘소도 거기에 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벽면묘지 132번엔 김백추란 한글이 투박한 글씨로 써져 있다. 대한 신민단 단장으로 봉오동전투의 선봉에 섰던 김규면 장군의 묘지가 있다. 공적의 내용은 “극동 소비에트 권력 투쟁에 참가”이고 그는 1967년 러시아 혁명 50주년에 적기 훈장을 받았다. 對日抗戰에 목숨을 바친 조선의 청년이 이역만리 모스크바의 별이 되어 부인 김 나제즈다 여사와 함께 잠들어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


우리나라 국립묘지에는 어떤 별들이 빛나고 있을까? 우선 70279기(2018년 현재)가 안장되어 있는 서울 현충원의 경우 맨 꼭대기에는 고 박정희, 육영수 여사의 묘소가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적 인물들을 발아래 깔고 1100평의 널찍한 명당에 누워 계신다. 규모로 보면 역대 어느 왕의 무덤 부럽지 않다. 2009년에 등재된 세계 문화유산 조선왕릉에 따로 편입되어도 어색하지 않은 넓이다. 한국 근현대사에 민중들이 넘어야할 질곡, 친일과 독재의 상징이다. 아마 앞으로 그 어떤 위대한 지도자도 이 정도의 묘지를 쓸 사람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아래 고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는 80평으로 소박하다. 그리고 그 아래 고 이승만 대통령의 묘는 500평이다. 이미 1100평의 묘가 있으니 소박하다고 밖에 얘기할 도리가 없다.


장군묘역에는 414기의 묘가 안장되어있다. 대한민국의 별이라고 하면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다 안다. 일반 병 생활 중 장군을 실제로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만큼 귀하신 몸이다. 군대의 신. 그런 장군 출신들은 사망 시 전원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자격요건에 안장이 불가능한 결격 사유가 있긴 있으나 다 안장된다고 보면 된다. 일제 강점기 독립군 때려 잡기로 유명한 간도 특설대 출신. 관동군 출신의 별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5.16 군사 쿠데타의 주역도 12.12 반란의 주역도 별 탈 없이 편히 쉬고 계신다.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과 애국지사 352기의 묘보다 높은 위치에서 벚꽃향기 풀풀 날리는 꽃다운 봄을 만끽하고 계신다. 살아서도 별, 죽어서도 별이다.


85987기가 모셔져 있는 대전 현충원엔 만주국 대동학원 출신 대통령이 계시고 762기의 장군묘역엔 5000만 원은 뇌물 아니고 떡값이라던 12.12 사태의 주역도 계시고, 악명 높은 서북 청년단의 리더도 계시고, 일제시대 계급이 고작 오장(하사)이라 운 좋게 반민족 친일 행위자에서는 빠졌지만 백범 암살의 배후로 보안사 기무사의 원조격인 기관을 만들었던 한국현대사의 역적 분도 계시고 계시고... 그 분들의 묘지를 갈고 닦고 기름 치기위해 100만평이 넘는 부지를 고작 10명의 청소 노동자가 ‘잠들면 죽는다’는 경계병의 심정으로 근무하고 있다.


온 국민이 애정하는 노래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작곡 하셨으나 만주국 10년을 찬양하는 만주 환상곡도 작고 지휘하셨던 에키타이 안도 계시니 그 위대한 분들의 명령에 따라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린 병사들은 고작 1평짜리 비문에 이름을 새기고 누워 계신다. 이분들이 위와 같은 사실을 미리 아셨더라면 후손들의 꿈에라도 나타나 “내 무덤을 옮겨 다오”하고 외치지 않으셨을까. 그래도 거기 못 들어가면 손해라 여기는 분들이 많아 현재 호국원을 포함한 국립묘지엔 27만기의 묘가 있고 앞으로 안장 대기자는 43만 명이 넘는다. 국가 유공자는 유족까지 포함해서 247만 명인데 우주 외계인이 쳐들어와서 지구방위 사령부가 맞서 싸운다 해도 이만큼의 숫자는 나오지 않을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나는 건국훈장 애족장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조부는 1907년 척박한 동두천 연천에서 의병으로 떨쳐 일어난 열혈 청년이셨다. 할아버지는 동두천 선산에 계신다. 다행이다. 개살구, 개자두, 개복숭아는 있어도 개별을 들어본 적이 없다. 별은 썩지도 않고 빛을 잃지도 않고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 빛날 거라는 걸 아는 것이다. 그러나 국립묘지에는 똥별들이 많다. 그들 때문에 과거로부터 찾아와 미래의 인도자가 되는 별의 안부를 거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진정으로 별의 안부를 찾고자 하는 이들이 가는 곳은 따로 있다. 제주 4.3 평화 공원, 마석 모란공원, 그리고 효창원. 나는 나의 할아버지이자 긍자, 래자의 묘.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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