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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호] 야스쿠니 조선인 합사와 외교적 보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6-12 09:59
조회
333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2015년 말의 한일위안부 합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정부가 외교적 보호권을 발동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낳은 파장이었다. 외교의 상대인 일본정부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 합의는 국제인권기준과 동떨어져 있고, 더구나 피해자들의 견해와 입장은 거의 반영되지 않아 대단히 부실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새로운 정부는 고심 끝에 이 합의를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무효(사실상 무효)로 만들었다. 그러나 외교적 보호책임은 인권침해에 대해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조치가 성취될 때까지 존속하는 것이므로 이 상태에서 체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 자리에서는 식민청산과 관련하여 또 다른 외교적 사안으로서 야스쿠니 신사 조선인 합사문제를 거론해야겠다. 다수의 국가들이 독립전쟁이나 해방전쟁에서 사망한 전몰자를 위한 추도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무명용사를 기리는 것은 어느 나라나 공통된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국가는 이러한 추도문제에서 원칙적으로 문화적 자율성을 가지므로 이웃나라가 감놓아라 배놓아라 할 수 없다. 야스쿠니 신사는 국립묘지처럼 유해봉안소나 묘지가 아니라 넋의 보관소에 가깝다. 그런데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를 전몰자 추도시설로 좋게 해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곳은 죽은 자를 애도하는 시설이 아니라 현창(顯彰)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즉 죽은 자에 대한 슬픔의 감정을 표하는 곳이 아니라 조국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태도를 찬양하는 공간이다. 침략전쟁의 수괴들(A급전범)을 합사하는 신사라면 침략전쟁과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시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 수상이나 일본 정치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군국주의적인 전쟁선동에 해당한다. 이러한 이유로 아시아의 주변민족은 그들의 참배에 크게 우려하며 이를 일본의 국내문제로 용인하지 않으려 한다.


 침략주의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일본인 희생자 유족들이 몇 차례 합사철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모두 패소하였다. 신사측은 신으로 영구적으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희한한 논리를 펼쳤다. 사람이 하는 일을 불가역적, 최종적, 신성한 조치라고 우기고 있다. 오로지 전쟁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모아 군국주의 일본을 위한 전쟁신을 집단적으로 창작하는 기만술이라고 생각한다.


 야스쿠니 신사는 또 다른 충격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조선인들이 2만 여명도 넘게 강제로 합사되어 있다. 일본정부가 패전 후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한 다음에 비로소 대다수 조선인 전사자를 야스쿠니에 합사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도의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사망자들의 유해는 전장터에 방치해두고 그 영혼을 탈취하여 군국주의적 국혼을 날조한 것이다. 심지어 생존한 조선인을 야스쿠니에 합사한 사례까지 발견되었다.




사진 출처 - EBS


 2007년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인 이희자 선생과 일부 유족들이 합사철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패소하였다. 유족들은 당시 합사제신명부에서 희생자 이름 말소, 원고 1인당 위자료 500만 엔 지급, 언론을 통한 무단 합사 사과문 게재 등이었다. 2018년 현재 도쿄지방재판소에서 다른 유족들이 2차로 합사철회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유족측 변호인들이 소송에서 ‘민족적 인격권’을 주장하였다. 일본정부는 야스쿠니 합사를 국내 문제나 종교문제(야스쿠니신사의 자율권)로 강변하지만 이는 희생자와 유족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안으로서 국제 문제이다. 죽음을 국가화 하는 것, 더구나 희생자와 유족의 의사에 반해서 국가화하는 조치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민족의 차원에서 심각한 권리침해이다. 전쟁법은 사망한 적에 대해서도 인도적으로 처우해줄 것을 요구한다. 1907년 제네바 협약들은 사망한 적을 그의 종교 관례에 따라 매장하고 분묘등록소를 설치하고 희망에 따라 유해의 송환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제17조 제2항 및 제3항). 1977년 제네바협약 제1추가의정서도 묘지의 보호와 유해송환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제34조 제2항). 죽은 자의 고유한 인격권과 가족의 애도의 권리가 전사자에게 중요하다. 인권피해자권리장전(2005)도 죽은 자에 대한 의례에서 유족의 문화적 전통을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제22조). 이러한 국제관례를 보더라도 민족적 정체성을 존중하는 선에서 일본정부가 합사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해방과 동시에 조선민중들이 전국각지에서 취한 최초의 정치행동은 신사소각이었다. 조선민중은 신사를 종교적인 사적 공간이 아니라 조선인의 정신과 의례를 부정하는 식민잔재로 이해한 것이다. 강제동원위원회가 B.C급 조선인 전범을 민족적 견지에서 식민지강제동원의 피해자로 규정한 사정에 비추어보면 조선인 합사문제를 한국정부가 묵인하는 것은 조화로운 태도가 아니다. 한국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문제에 대한 부실한 합의로 인해 쓰디쓴 외교적 실패와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죽은 후에도 민족적 성원성에 반해서 전쟁과 일본국가주의의 불쏘시개로 활용되는 것은 참으로 치욕스러운 일이다. 합사철회는 피해자와 그 유족의 개별적 소송을 통해서 합사 철회 문제를 해결하도록 방치하기보다는 한국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통해 시정해야 한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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