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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호] 싸늘한 병원, 싸늘한 의사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6-18 16:01
조회
414

안동환/ 서울신문 기획탐사부장


 “그만 좀 해. 그만 하라고.”
 누군가 우리 가족을 향해 거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순간 당혹감을 넘어 난처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드잡이라도 벌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무엇을 잘못했기에 저러나 억하심정이 들었다.


 2018년 6월 17일 오후 5시. 가족 모두는 막 임종한 아버지의 손을 부여잡고 울부짖고 흐느끼며 깊은 슬픔에 잠겼다.
 말기 혈액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는 6개월 시한부 생명을 선고했던 주치의의 예상과 달리 2년 가까이 더 사셨다. “솔직히 힘들고 어려운 치료보다는 마음껏 드시고 여행도 하는 그런 시간을 권하고 싶다”고 말하던 의사의 권고와 달리 아버지는 항암 치료를 원하셨다. 아버지와 살갑게 말을 섞는 부자 관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품고 있던 생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당시 머물던 경기도 포천에서 서울 강남에 있던 대형병원까지 입원비가 아깝다며 매주 두 차례 통원하며 항암 치료를 받았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고 눈에 띄게 야위어 가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시리고 아팠다.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
 아버지는 임종 열흘 전 새벽 줄곧 치료를 받아온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마치 돌발진을 앓는 아이처럼 열과 경기를 일으키던 아버지는 임종 사흘 전 혼수상태에 빠졌다. 주치의가 내게 내민 연명치료중단의향서(존엄사 서약)에 서명한 게 그때였다.


 집중치료실에 있던 아버지는 1인실로 이동했다. 간호사는 하루 50만 원인 입원실 수속 절차를 안내하면서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1인실이 가족들이 편안하게 아버지를 보내드릴 수 있는 특별한 병실이라는 장점을 강조했다.


 본관 16층의 1인실은 특별했다. 낮에는 대형 창문 너머로 한강이 보였고, 밤에는 서울 남산 타워 등 스카인라인 야경이 창을 채웠다. 대형 냉장고와 소파가 있고, 간병인을 위한 보조 베드도 충분히 넓었다. 난 그 창 앞에서 기사를 쓰거나 뉴스를 체크했다. 밤이면 보조 베드에 누워 혹은 소파에 앉아 심연 속의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특별한 1인실에서의 마지막
 아버지와 이틀 넘게 그 병실에서 지냈지만 그 공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복도에 줄지어 있던 1인실 안에는 내 아버지처럼 죽음이 임박한 환자와 가족들이 머물렀다는 걸 깨닫은 순간이 아버지가 눈을 감은 시점이었다. 아버지의 몸에 달린 각종 센서들의 숫자가 0을 향해 급전직하할 때 반쯤 정신을 놓고 흐느끼던 때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병실 어디선가 깊고 낮은 흐느낌이 흘러 나오던 그 공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서늘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내가 아버지의 임종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가수 보아의 오빠인 권순욱 광고·뮤직비디오 감독 때문이다. 그가 복막전이암 투병 사실을 고백하며 쓴 ‘싸늘한 의사들’이라는 글에서 난 ‘싸늘한 병원’을 떠올렸다.


 “‘이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런저런 시도를 해서 몸에 고통을 주지 말고 그냥 편하게 갈 수 있게.’ 최근에 입원했을 때 그리고 다른 병원 외래에 갔을 때 제 가슴에 못을 박는 이야기들을 제 면전에서 저리 편하게 하시니 도대체가 제 정신으로 살 수가 없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던 권순욱씨에게 잔인했던 의사의 통보는 선의일까. 한 의사에게 물었더니 그는 (의사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고 했다. 말기 암 환자나 가족들이 진료 중인 의사의 말을 몰래 녹음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환자의 증상이 악화될 경우 거의 열에 아홉은 의료 과실를 의심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환자에 대한 공감보다는 현상 그대로만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상황은 이른바 빅5로 불리는 국내 대형 상급종합병원에서 벌어진다.


 정지태 대한의학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의사에게는 시간이 없다. 3~5분 단위로 예약을 받고 진료가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다른 환자들이 불만을 표시한다”고 했다. 환자 입장에서 보면 예약을 하고 가도 1~2시간을 대기하다 정작 진찰은 2분도 안 돼 끝난다. 상급종합병원의 진찰료는 3분이든 30분이든 다 똑같이 1만 5330원(재진 기준)이다. 환자 1인당 진찰 시간이 줄어들수록 병원 수익이 커진다. 몸집만 키운 대형 병원들의 기형적인 의료 현실이 ‘3분 진료’ 현상이다.



사진 출처 - getty images


대형병원의 싸늘한 대응
 싸늘한 병원 이면에는 매년 늘고 있는 의료분쟁이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통계를 찾아 보니 최근 5년간 국내 의료분쟁 상담 건수는 연평균 9.6%, 조정신청 건수는 연평균 11.5%나 증가했다. 중재원에 조정이 신청된 1만 2293건 중 59.0%는 조정 절차가 개시됐다. 절반 넘게 의료사고의 개연성이 상당하다고 판단된 셈이다. 국내 의료분쟁 조정 절차가 개시된 의료기관 유형에서도 상급종합병원이 67.4%로 가장 많았다.


 지난달 12일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보건의료노조 소속 간호사들이 용기있게 폭로했다. 대형병원일수록 불법 의료행위가 만연하다고 폭로했다. 병원에서 ‘PA’(진료보조 인력·Physician Assistant)가 수술실에서 의사들이 해야 할 절제나 관 삽입를 하고 있는 실태였다. 동물 가면을 쓰고 나온 간호사들은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의사 아이디(ID)로 처방 내는 법부터 가르친다”, “간호사가 의사 대신 동맥 라인을 잡다 신경을 잘못 건드려 팔을 절단한 환자도 있었다”고 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과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형병원의 99%가 오더리(비의료인의 의료 행위)를 쓴다”고 말했다.


 2016년 9월 스물 다섯살 경희대생 권대희씨가 강남의 성형외과에서 유령수술을 받다 과다출혈로 숨진 건 더 많은 수익을 거두기 위해 동시에 3개의 수술방을 오가던 집도의가 간호조무사에게 맡겨 놓고 방치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딴 ‘권대희법’은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법제화가 왜 필요한지를 일깨운 현재진행형 문제다.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은 압도적인 국민의 찬성 여론에도 지난 수년간 의료법 개정안 발의-의료계 반대-자동 폐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최근 행정직원이 허리를 수술한 것으로 드러난 인천 병원의 ‘유령수술’ 사건도 내부자가 몰래 찍은 동영상을 통해 전모가 드러났다.


수술실 CCTV, 경기의료원의 사례
 의료계는 의사와 환자의 인권 보호를 명분으로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CCTV가 허용되면 의사들이 더 싸늘하게 환자를 대하는 ‘방어적 진료’가 심해질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2019년 5월부터 산하 6개 병원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해 수술을 녹화하고 있는 경기의료원 사례를 보면 의료계의 우려와는 상당한 간극이 보인다. 지난 2년간 전체 수술의 66%인 2624건을 녹화하고 환자 가족들에게 수술 장면을 제공했는데도 의료분쟁은 ‘0건’이다.


 싸늘한 의사와 싸늘한 병원, 곳곳에서 벌어지는 의료 분쟁은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주객이 전도된 ‘환자 소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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