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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호] 이재용의 석방을 기다리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6-12 11:51
조회
257

서동기/ 회원 칼럼니스트


나도 모르게 내 이름으로 가입된 펀드상품이 있었다. 한참 펀드 붐이 불던 2007년, TV에선 <경제야 놀자>와 같은 금융 프로그램이 유행을 했다. 투자가 어떻고, 펀드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지방에 살던 부모님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당시 각종 언론에서는 투자를 해야 성공한다고, 남들 다하는 금융상품에 함께 하지 않으면 멍청한 것이라고 부채질을 해댔다. 그럴 듯한 말들에 혹한 어머니께서는 아들의 이름으로 펀드상품에 가입하셨다.


하지만 한 달에 5만원씩 85만원을 적립했을 때,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졌다. 반 토막이 나고 연일 깎여나가는 잔고에 깜짝 놀라 돈을 더 넣지는 못하셨지만 허탈한 나머지 쌈지에 가지고 계시던 통장을, 어머니는 10년 만에 꺼내어 등록금에 보태라고 건네셨던 것이다. 가입되어 있는 상품의 이름은 <삼성그룹적립식증권투자신탁1호>. 막연하게 투자처를 찾던 어머니는 안정적일 것이라 생각한 삼성그룹 펀드에 가입을 해두셨다.


그런데 해지 신청서를 작성한 타이밍이 참 묘했다. 지난 2월 2일, 금요일이었다. 은행 직원은 주말을 끼고 영업일을 기준으로 월요일이 지나, 2월 6일 화요일 주식시장의 종가를 기준으로 최종 환급금액을 산정해준다고 설명했다. 별 생각 없이 은행을 나왔는데 괜스레 삼성의 주가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삼일 뒤인 월요일에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진출처 - 필자


‘이재용이 월요일에 석방되면 화요일 삼성 주식이 더 오르려나?’
‘이재용이 풀려나면 주식이 좀 뛰어서 한 3만원은 더 받지 않을까?’
나는 그날 저녁부터 직원의 권유로 설치한 어플리케이션으로 금액을 들춰보면서 펀드 환급금을 많이 받는 데 도움이 되는 판결은 무엇일지를 곰곰이 따지고 있었다. 그러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김용철 씨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분노하고, ‘삼성공화국’을 비판하는 기사들과 칼럼에 공감하던 나의 모습은 어디로 간 걸까?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적극 도왔던 삼성의 행태에 분노하고,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삼성도 공범이다’를 외치던 나는 어머니가 등록금에 보태라고 10년 만에 꺼내주신 삼성펀드 통장을 손에 들고 이재용의 석방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이재용의 석방이 주가를 올려 줄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왜인지 나의 논리회로는 이재용이 석방되면 삼성에 좋은 일이고, 주식에도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고, 펀드 환급금에도 좋은 영향이 있으리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참 소박하고 후진 생각이다. 굵직한 재판이 풍년인 요즘 판결 소식을 들으면 이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대부분 피식 부끄럽고 마는데, 가끔 이 기억이 무섭고 두려울 때가 있다.


서동기 :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읽고 묻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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