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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 57호]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라 -11]러시아의 음유시인 블라디미르 브이소츠키(Vladmir Vysotsky)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09:48
조회
851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라 -11]러시아의 음유시인 블라디미르 브이소츠키(Vladmir Vysotsky)


유요비/ 시 인, 문화평론가


나는 벼랑과 아슬아슬하게 맞닿은 협곡을 지나간다.
나는 내 말에 박차를 가하고 매섭게 채찍질한다.
숨이 가빠 바람을 마신다. 안개를 삼킨다.
나는 길을 잃고 죽음의 황홀경에 빠질 것 같다.
말아, 천천히, 조금만 천천히 가자꾸나.
너는 내 채찍소리가 듣기 싫겠지.
내 운명의 말은 자기들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인다.
내겐 생명의 시간이, 일을 마칠 시간이 없다.
나는 내 말에게 물을 먹이고 내 노래를 마치리라.
그리고 잠시나마 그 강가에 머물며 숨을 돌리리라.
나는 죽어간다. 한 포기 이삭처럼 폭풍우 나를 쓰러뜨리리.
새벽에 썰매가 나를 눈 속으로 끌고 가리.
말아, 부탁하자, 조금만 그 걸음을 늦출 수 없겠니.
마지막 피난처에 도달할 때까지는 내 최후의 날을 늦춰다오.
(후렴) 신에게 초대받으면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도착해야 한다. 천사들은 왜 그토록 적의에 찬 분노를 노래하는가? 종은 왜 끝없이 오열하는가? 나는 내 말에게 울부짖는다, 속도를 좀 늦춰줄 수 없느냐고.(후렴)
- <뒷걸음 치는 말>(Koni Priveredlivie)가사 전문


 어느 거리 혹 어느 선술집에서, 가슴 속 저 깊은 곳으로부터 절규인지 분노인지 분간할 수 없는 저음의 러시아 노래가 거친 기타반주와 함께 흘러나온다면, 또 그 노래를 듣고 나도 모르게 가슴이 메어질 듯 하면, 그 노래는 바로 브이소츠키의 <뒤로 가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야생마>라는 제목으로, 영화 <백야>에서 무용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무대 위에서 춤을 출 때 배경음악으로 쓰여 익숙한 노래다.


이 노래는 다소 철학적이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소련 체제에 비판이 곳곳에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말’(사회주의 체제와 관료)이 주인인 ‘나’(러시아 인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제멋대로 달리고 있는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발견해 낼 수 있다.


브이소츠키는 러시아 인민들로부터 ‘20세기 러시아 최고의 바르드(bard, 음유시인)’ ‘기타를 든 세익스피어’ ‘침묵의 목소리’라는 칭송을 받는 구 소련 시절의 배우이자 시인이자 가수다.


브이소츠키는 사망할 때까지 햄릿을 소화할 수 있는 최고의 배우로, 또 소련체제를 비판한 700여편의 자작곡을 노래한 가수로 활동했지만, 생전 단 한권의 시집도 낸 적이 없었음에도 러시아의 인민들은 그를 러시아의 전통적인 시인, 위대한 바르드로 기억한다.


‘바르드’란 러시아의 전통민요 중 농촌민요인 차스투쉬카(chastushka)를 모태로 하는 노래형식으로, 서구의 포크음악과 유사하며, 따라서 친숙한 곡조에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가사가 그 특징이다.


브이소츠키는 차스투쉬카 중에서도 자신의 성향에 맞는 블라트나야 무지카(blatnaia muzyka)라는 떠돌이 하층민들의 민요를 바탕으로 자신의 노래를 만들었다. 때문에 브이소츠키의 노래 대부분은 노멘클라투라(‘붉은 귀족’이라는 뜻으로, 사회주의 소련의 부패한 관료와 기득권층을 의미한다)에 대한 비판과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도 소외된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브이소츠키는 죽을 때까지 소련 당국의 탄압과 감시를 받았고, 생전 단 한 장의 공식 앨범도 발표할 수 없었지만 그의 노래들은 비밀리에 복제되어 전국의 대학과 공장, 음악 클럽 등으로 퍼져나가 러시아 인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이에 대해 소련 당국은 브이소츠키의 노래는 물론, 시와 노래가사에 대한 출판도 금지했다.


그의 사후 10년이 지난 1980년대 말에서야 시와 노래가사는 금지의 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었고, 고르바초프 시절에 와서야 위대한 예술가로 인정받아 ‘브이소츠키 거리’와 기념 동상이 세워질 수 있었다.


러시아 인민들에 의해 독보적인 존재로 추앙받았던 브이소츠키는 1980년 알콜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지만, 알콜중독의 배후에는 소련 당국의 직간접적인 탄압과 그로 인한 우울증이 있었다.


“내 노래의 곡조는 음계를 단순히 합한 것보다도 더 단순하다. 그러나 내가 진실의 어조를 잃는 그 순간부터 마이크는 채찍이 되어 내 얼굴에 흉터를 남길 것이다.” 브이소츠키가 자신의 음악에 대해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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