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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 57호] 동철이 이야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09:47
조회
368

동철이 이야기


인권연대 편집부


 지난 일요일 늦은 밤에 만난 동철이(가명)는 고등학교 1학년생답지 않게 매우 체격이 작은 친구였습니다. 성장과정에서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고, 또 정신지체 2급의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동철이는 전자오락실에서 놀고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에 의해 수갑이 채워진 채, 오락실에서 생긴 절도사건의 피의자로 연행되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도 경찰에서의 진술을 통해 동철이는 ‘피의자’가 아니고, 단순히 범죄상황을 목격한 ‘참고인’이었다고 확인했는데도, 경찰은 동철이에게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였습니다.


경찰들은 동철이에게 다짜고짜 수갑부터 채웠고, 지구대로 연행을 해왔습니다. 동철이와 한두마디만 나누어도 누구라도 쉽게 동철이의 상태를 알 수 있었는데도 동철이의 손목에 채운 수갑은 끝내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일요일밤 비번이었던 지구대장은 절도사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구대에 나와, 수갑을 찬 동철이를 끌고 다니며 범인들을 찾아나섰습니다. 동철이가 빨리 움직이지 않자 머리를 잡아서 끌고 다니는 일은 두세시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근무시간도 아닌데, 그 지구대장은 정말이지 열심히 일했던 것입니다.


이는 경찰청에서 진행 중인 ‘민생치안 100일 작전’ ‘절도범 소탕 대작전’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절도범 검거’라는 실적을 위해서는 동철이가 어떤 아이인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 아이의 상태 같은 것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나 봅니다.


소년계에서 신원보증서를 써주고 동철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동철이에게 관심을 갖고 보살펴준 복지센터 관계자의 말로는 동철이가 경찰에 체포된 이후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지난 1년 동안 관심을 갖고 하나씩 해결해왔던 예전의 습성이 다시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말도 듣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참으로 화나는 밤이었습니다. 동철이는 미성년자이고, 정신지체 2급의 중증장애인입니다. 그리고 절도사건의 참고인이었을 뿐입니다. 친권자인 어머니의 동의도 없이 참고인에게 수갑을 채우고,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몇 시간씩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경찰의 시스템, 그렇게 하고서도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 뻔뻔함을 그냥 보고 있기는 힘들었습니다.


동철이를 어머니께 돌려보내고 문제의 지구대를 찾았습니다. 동철이가 범인도 아닌데, 수갑을 채운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도 장구(수갑도 포함됩니다.)의 사용은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처음에 오락실에 출동했을 때는 상황판단이 안되어서 현행범인줄 알고 수갑을 채웠다고 치더라고 범인이 아닌 것이 판단되면 즉시 수갑을 풀어주었어야 하는데, 왜 몇 시간씩 수갑을 채워두었냐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지구대의 경찰관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상관이냐는 것입니다.


서로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번에는 “어쭈 이것 봐라. CC-TV 카메라 돌려!”라며 저를 협박하는 것입니다. 지구대에 와서 항의하는 시민에게 ‘공무집행방해죄’라도 적용하려고 했던 모양인지, 아니면 단순한 협박인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답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동철이는 집으로 돌아갔고, 복지센터 선생님의 도움으로 차츰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동철이 일은 명백한 공권력 남용이 분명한데, 복지센터 선생님은 문제 제기 과정에서 동철이의 상처가 덧나지 않을까 걱정이었습니다.


동철이에게 번듯한 직장을 가진 아버지가 있었다면, 동철이가 자기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보통의 아이였다면, 그런 공권력 남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는 우리 경찰이 실적에 눈이 멀지만 않았더라도,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만 있었더라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나 형사절차의 가혹함은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들에게 도드라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우울한 밤이었습니다. 국가의 도움이 절실한 친구가 실적을 올리려는 경찰들에 의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받았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밤은 깊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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